지구 평균 기온 높아지고 있지만, 국제사회 대응은 ‘거북이걸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기후 행동 시급”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2024년이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해는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를 웃돌아 파리협약의 마지노선이 붕괴된 첫해가 되리란 분석도 나왔다. 이런 이상 기후에 국제사회의 대응은 여전히 더디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기후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디언·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9일(현지시간) 올해 지구 평균 기온이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섭씨 1.5도 이상 더 높아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1~11월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62도 높았다. 이는 이전까지 가장 더운 해였던 2023년의 1.48도를 넘어선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이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설정한 한계선인 섭씨 1.5도가 처음으로 붕괴한 것이기도 하다.
세계기상기구(WMO)도 지난 6월 향후 5년(2024~2028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를 넘을 가능성을 47%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2023~2027년에 대해 내놨던 예측치인 32%보다 15%p 더 높다.
또 향후 5년간 적어도 한 해의 평균 기온이 이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2017~2021년 20%, 2023~2027년 66%에서 급증해 이번에는 80%가 됐다.
과학자들은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크게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지난 2015년 파리협정에 따라 이 기준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파리협정은 전 세계 196개국이 서명한 기후 협약으로, 기후 재난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지구 평균 기온은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이 목표는 단일 해가 아닌 10~20년간의 평균으로 측정된다.
그러나 C3S에 따르면 지난 17개월 가운데 16개월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전보다 섭씨 1.5도 이상 높았다. 특히 지난해 중반부터 이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온난화가 관찰되고 있어 과학자들이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여름까지 이어진 것이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엘니뇨와 반대 현상인 라니냐가 내년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내년에는 지구촌의 더위가 다소 꺾일 수도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온난화의 추세 자체가 멈추지 않고 있어 특단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기후학자 프리데리케 오토는 “만약 라니냐 현상이 나타나 내년 기온이 올해보다 다소 떨어지더라도 기후가 정상적이거나 안전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계속 폭염과 가뭄, 산불, 열대성 폭풍을 부르는 기후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의 결과로 해석되는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스페인과 케냐에서는 대홍수로 수백 명이 사망했고, 미국과 필리핀에서는 대형 사이클론과 태풍이 발생했다. 남미 여러 지역은 가뭄과 산불로 고통을 겪었다.
EU 코페르니쿠스 대기모니터링서비스(CAMS)는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4년 북미와 남미에서 특히 강력한 산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미국 서부·캐나다·아마존 열대우림과 판타날 습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마크 패링턴 CAMS 선임 과학자는 “올해 북미와 남미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사적으로도 전례 없는 규모였으며, 특히 볼리비아·판타날·아마존 일부 지역에서 두드러졌다”며 “캐나다의 산불도 극심했지만 다행히 지난해의 기록적인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러한 산불이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몇 주간에 걸쳐 대륙 전역에 심각한 대기 오염을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규모 재보험사인 스위스 리(Swiss Re)는 올해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200억달러(약 45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헬렌과 밀턴으로 인해, EU와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홍수가 보험 손실을 키운 주요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손실의 절반 이상은 저소득층이 높은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보험으로 보장받지 못했다.
스위스 리는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 날씨가 더욱 빈번해지고 강도가 세지는 가운데, 도시 확장으로 고위험 지역의 자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피해 규모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후변화 적응이 필수적이며, ▲방파제 ▲댐 ▲수문 같은 보호 조치가 경제적으로 도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여전히 더디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 각국은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탄소 배출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섭씨 1.5도 목표선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배출량은 2030년 45%까지 줄여야 한다. 이에 유엔은 지난 10월 지금 수준의 기후 행동을 이어간다면 재앙적인 섭씨 3.1도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달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폐막일을 넘기는 진통 끝에 선진국이 2035년까지 연간 3000억달러(약 428조원)의 공공 재정을 부담하는 신규 기후 재정 조성목표(NCQG)에 합의했다.
선진국 부담액을 2009년 설정된 목표 1000억달러(약 142조원)에서 3배 늘렸지만, 기후변화 위협에 노출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이 여전히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기후 위기를 부정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재입성하면서 파리협정의 미래에도 암운이 드리운 상태다.
사먼다 버지스 C3S 부국장은 “2024년은 확실히 역대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며,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를 초과한 첫해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는 파리협정을 위반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기후 행동이 시급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