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시장 변화도 한몫, 中내수 악화에 여행 트렌드도 바뀌어
유동성, 점차 악화...비율은 52% 수준
롯데는 자타공인 알짜, 부자 그룹이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도 롯데는 비껴갔다. 그런 롯데가 주력 사업인 유통·화학이 흔들리고 신사업은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부채의 우려까지 드러내고 있다. 사드 사태로 일찌감치 포스트 차이나 행보에 힘을 실어왔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해소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호텔롯데가 캐시카우인 면세사업 부진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사실상 지주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의 하락세는 롯데그룹의 위기와도 직결된다. 호텔롯데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보유 지분을 매각하고 부동산을 정리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다.
◆ 물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 호텔롯데 영향력 아래
호텔롯데는 롯데지주와 함께 국내 롯데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지주가 출범하면서 쇼핑과 제과 등 주요 계열사를 한데 아우르게 됐지만, 물산과 건설, 알미늄, 상사, 롯데캐피탈 등 일부 계열사는 여전히 호텔롯데의 영향력 밑에 있다.
2015년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를 상장하겠다고 선언했다. 호텔롯데 상장 후 롯데지주를 합병해 일본 롯데와 연결고리를 끊어낼 계획이었다. 호텔롯데의 최대주주가 일본 롯데홀딩스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 롯데홀딩스(19.07%)를 비롯해 특수관계인 광윤사와 일본 주식회사L 투자회사 등의 지분율은 99.28%다. 사실상 일본 국적 기업이 주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엔 상장이 답이긴 하다"면서도 "현재는 상장보다 매출 개선에 신경써야 할 때"라고 우려했다.
지난 3분기 기준 호텔롯데는 연결 자회사 이외에도 ▲롯데물산(32.83%)▲롯데지알에스(18.77%) ▲롯데쇼핑(8.86%) ▲롯데알미늄(38.23%) ▲롯데건설(43.3%) ▲롯데상사(32.57%) ▲롯데글로벌로지스(10.87%) ▲롯데렌탈(37.8%) ▲롯데자산개발(10.62%) ▲롯데캐피탈(32.59%) ▲롯데벤처스(39.97%)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상장과 멀어진 호텔롯데, 원인은 면세사업 부진
상장 이야기가 나온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상장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면세사업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가면서다. 상장 이야기가 나왔을 2016년, 면세사업은 호텔롯데 매출 6조4941억원의 84%에 달했다. 면세사업이 매출을 도맡으면서 상장은 일사천리인듯했다.
그러나 2016년 중국 사드 배치를 시작으로 한일관계 악화, 코로나 19까지 겪으면서 3연타를 맞았다. 엔데믹 전환 이후 반등하는듯 했지만 다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조75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6.8% 줄었다. 면세사업 부문의 감소가 컸던 탓이다. 면세사업의 지난해 매출은 3조796억원으로, 전년보다 38.8% 감소했다.
우선 롯데면세점이 지난해 6월 인천공항에서 방을 뺐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경쟁사 대비 낮은 입찰가를 제시하면서 사업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공항 매출은 면세사업의 3~5%안팎으로, 연간 5000억원의 매출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업계에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다이궁(보따리상)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낮추고, 중국 소비 경기가 부진했던 영향이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해외 면세사업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난 곳은 중국 베이징(3100만원)이 유일하다. 코로나19 시절인 2021년에도 당기순이익(35억원)을 내던 미국 괌에서도 지난해에는 9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재수 끝에 2020년 입성한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지난해 42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호텔롯데는 2012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첫 해외 매장 오픈을 기점으로 해외에 공격적 투자를 시작했다. 2014년 일본 간사이 국제공항점, 2015년 일본 도쿄 시내면세점 특허를 취득하면서 해외 시장 확대에 본격적으로 투자했다. 이때부터 순차입금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베트남과 태국,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발을 넓혀갔다. 그중 타이완과 태국법인 등 부진한 해외사업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신규 매장을 늘려갔다. 그 결과 2024년 9월 말 차입금은 9조6316억원에 이르렀고, 지난해 이자비용만 3884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해외 매장마저 부진의 늪에 빠진 것이다. 올해 3분기 호텔롯데 영업이익은 242억원으로, 1년새 64%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조2844억원으로, 전년 대비 8.2% 증가했다. 3분기까지 누적 실적은 하락폭이 더 크다. 매출은 3조7421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275억원 급감한 285억원 손실로 적자를 기록했다.
사업부별로 보면 호텔사업부 3분기 매출은 10% 증가한 3729억원, 영업이익은 13% 감소한 385억 원이다. 월드사업부 3분기 매출은 1120억 원, 영업이익은 315억 원으로 각각 3.2% 증가, 3.4% 감소했다. 면세사업부 3분기 매출은 해외사업 매출 증가로 8% 늘어난 7994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영업손실 460억원으로, 전년 동기(98억원 손실)보다 적자 폭은 확대됐다.
◆ 더 이상 찾지 않는 면세점...고환율에 中 내수 악화까지 '이중고'
면세시장의 변화 역시 호텔롯데에는 좋지 않다. 여행 트렌드가 바뀌면서 면세점을 잘 찾지 않고 있다. 국내 면세점을 방문하는 인원들부터 줄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2019년까지 매년 4500만명 이상이 국내 면세점을 찾았다. 그러면서 매출 역시 급격히 늘었고, 2019년(213억1800만달러) 처음으로 200억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뒤덮었던 2020년은 4분의 1수준인 1067만명을, 2021년에는 677만명까지 떨어졌다.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지난해 방문객은 2208만명에 불과했다. 매출 역시 급감했다. 지난해(109억7300만달러)에는 100만달러를 겨우 넘겼다. 이해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방한 여행객수 대비 면세점 객수 증가 속도는 느리다"고 분석했다.
방문객수도 감소했지만, 여행객의 씀씀이도 줄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2021년 면세점에서 1인당 2300달러를 쓴 이후 점차 줄면서 올해는 1인당 382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달러가 강세인 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환율로 국내인은 물론 국외 여행객들 모두 예전만큼 면세점을 찾지 않으면서 매출에 타격을 주고 있다. 더구나 환율 상승은 상품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영업이익에도 부담을 준다.
특히 중국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부분이 현재는 악재로 작용한다. 중국의 경기 침체 수준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도 지속되는 상황 속에 심각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들의 여행성향이 크게 바뀌었다. 과거엔 그룹 패키지를 애용했다면 최근에는 소규모 여행을 즐기고 있다. 실제 지난 2일 오후 기자가 방문해본 서울 송파구 롯데면세점에는 5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을 찾기 힘들었다. 관광객 대부분은 1~2명씩 어울려 매장을 방문했다.
수요는 지속 감소하지만 내야할 비용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우선 면세점의 특허수수료. 앞서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는 면세점 업계를 위해 특허수수료를 50% 낮춰줬다.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감경 조치가 끝났어야 하지만, 업황 회복이 더딘 점을 고려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연장키로 했다.
내년부터 기존 수수료가 적용된다면 부담도 두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수수료는 매출에 비례해 0.1~1.0% 적용된다. 면세점을 찾는 손님이 적었던 코로나19 이후인 2020~2023년 '세금과공과'의 평균이 608억원 수준인 것을 미뤄봤을 때 내년에는 1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매장 임차료 역시 부담이다. 이번 3분기 영업손실을 이끈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3분기 누적 지급임차료는 31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3%(952억원) 늘어났다. 시내 면세점에서 수요가 부진한 만큼 임차료 증가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면세점도 코로나19 당시 임차료를 할인했다. 이후 할인이 종료되면서 정상화돼 임차료가 늘어났다"며 "지점을 그대로 유지하면 임차료 부담은 내년에도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계 내 모든 기업들이 마찬가지지만 호텔 사업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좋아졌다. 그러나 면세는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며 "면세 시장 자체가 2019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고 전망했다.
◆ 유동비율 50% 간신히 넘겨...당좌비율은 동종기업 절반 수준
유동성 측면을 수치로 살펴보면 유동비율은 3분기 기준 52.4%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100% 이상을 안전한 수준으로 본다. 수치상으로는 유동성에 노란불이 들어온 것이다.
사드배치가 있던 2016년 유동비율은 56.4%까지 떨어졌지만 이듬해 2017년 106.6%로 회복했다. 그러나 점차 비율이 떨어지면서 지난해에는 50% 아래인 47.2%를 기록했다.
조금 더 보수적으로 보면 수치는 더욱 심각해진다. 기업의 단기 유동성을 알 수 있는 지표인 당좌비율은 35.6%다. 적어도 50%는 돼야 단기적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는데, 수치상으로는 중장기는 물론 단기적 안정성도 부족한 편이다. 당좌비율은 재고자산을 제외한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값으로 보다 엄격한 유동성 지표이다.
동종업계와 단순 비교해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텔신라의 3분기 유동비율은 129.7%, 당좌비율은 74%다.
유동부채를 구체적으로 보면 1년 내 상환해야 할 차입금은 3조661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빠르게 유동할 수 있는 자산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7109억원과 단기금융상품 3747억원에 불과하다. 투자부동산(1조2154억원) 등을 동원해도 유동성 확보는 어렵다. 관계기업투자지분(4조2042억원)과 유형자산(6조8018억원) 일부를 유동화한다면 유동성 대응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호텔롯데는 자금 조달을 위해 올해 공모채를 두 차례 발행했다. 지난 1월(3000억원)과 지난 4월(2000억원)에 총 5000억원 규모의 공모채를 발행했다.
상황이 점차 나빠지자 호텔롯데는 부실 기업 정리를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면세시장 자체가 좋지 않다보니, 현재 호텔롯데가 실적 개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지금 호텔롯데가 면세점을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봤다.
지난달 28일 기업 설명회(IR)를 열고 일부 사업장 정리를 공식화했다. 업황 회복이 더딘 면세 부문 중 해외 부실 면세점 철수를 검토한다. 현재 일본과 베트남 등 해외에서는 시내(4곳) 및 공항(8곳) 면세점 총 12곳을 운영하고 있다.
고정비 절감 차원에서 서울 송파구 소재 월드타워 내 호텔영업 면적을 줄이고, 구조조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그밖에 L7과 시티호텔 등 호텔 2~3곳을 대상으로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매각 규모는 6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롯데렌탈의 매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롯데렌탈은 호텔롯데가 37.8%의 지분을 보유, 최대 주주다. 매각 대상은 부산롯데호텔 지분(22.83%)까지 합한 지분 60.67%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부가는 4882억원이지만 시장에서는 최대 2조원까지 내다보고 있다.
이에 롯데렌탈은 조회공시 요구(풍문 또는 보도) 공시를 통해 "당사의 최대주주 등은 외부로부터 롯데렌탈 지분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았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라진 기자 jiny341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