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전격 중단, 위탁개발생산 올인
전기차 충전 1위 등극, 수익성은 빨간불
친환경 투자, 단기 실적 악화로 이어져
롯데는 자타공인 알짜, 부자 그룹이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도 롯데는 비껴갔다. 그런 롯데가 주력 사업인 유통·화학이 흔들리고 신사업은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부채의 우려까지 드러내고 있다. 사드 사태로 일찌감치 포스트 차이나 행보에 힘을 실어왔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해소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재계 6위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전략이 위기에 봉착했다. 2022년 신동빈 회장이 '제2의 도약'을 외치며 선포한 4대 신성장동력 전략이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헬스앤웰니스(의약품 위탁개발생산)·모빌리티(전기차 충전 인프라)·뉴라이프 플랫폼(메타버스 '칼리버스')·지속가능성(2차전지 소재)'을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 2030년까지 37조원을 투자, '글로벌 톱 10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던 청사진이 흔들리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 위주로 재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헬스케어 사업 전격 중단...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올인
지난 11월, 롯데그룹이 바이오 사업의 대수술을 단행했다. 2022년 야심차게 출범한 헬스케어 사업을 전격 중단하고,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동빈 회장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했던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의 투트랙 전략이 2년 만에 대폭 수정된 셈이다.
롯데헬스케어는 지난 2년간 약 1천억원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2023년 매출 8억원에 영업손실 229억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롯데지주가 대주주(지분100%) 인 롯데헬스케어는 신동빈 회장이 만든 바이오 분야 신생 계열사로, 롯데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설립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롯데헬스케어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첫 사업 아이템은 국내 스타트업의 기술을 도용했다는 의혹으로 엎어졌고, 이후 주력 사업으로 내세운 유전자 검사 서비스도 아직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헬스케어가 사업 철수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장악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네이버헬스케어와 카카오헬스케어는 각자의 플랫폼 파워를 앞세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이미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상태였다.
네이버헬스케어는 국내 최대 포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의료 정보 검색, 병원 예약, 건강 관리 서비스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으며, 카카오헬스케어는 메신저를 활용해 의료 상담과 예약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며 시장을 선도해왔다.
후발주자였던 롯데헬스케어는 이러한 플랫폼 기업들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네이버헬스케어와 카카오헬스케어가 보유한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와 AI 기술력, 그리고 이미 구축된 의료기관 네트워크는 롯데헬스케어가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였다.
여기에 의료법상 각종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 원격진료 금지, 의료광고 제한 등 까다로운 규제는 신규 사업자의 혁신적인 서비스 도입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유통과 제조업이 주력인 롯데그룹의 사업 구조상 디지털 헬스케어와의 시너지 창출에도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결국 롯데헬스케어는 시장 경쟁력 확보에 실패하며 사업 철수라는 쓰라린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플랫폼 기업의 강력한 시장 지배력과 규제 장벽, 그리고 그룹 차원의 시너지 부족이 겹쳐 결국 사업 실패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롯데그룹이 바이오 산업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12월,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 주 시라큐스시에 위치한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을 2200억원에 인수하며 CDMO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 전략은 명확하다. 시라큐스 생산공장과 송도 메가플랜트를 양대 축으로 삼아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시라큐스 공장은 4만 리터급 항체 의약품 원액 생산이 가능한 첨단 시설로, 항체 의약품 생산부터 화학 의약품 접합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북미 핵심 거점으로 육성될 예정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바이오 클러스터로의 확장도 구상 중이다.
국내에서는 더욱 과감한 투자가 진행된다. 인천 송도에 2030년까지 총 30억 달러(4조2천억원)를 투자해 36만 리터 규모의 생산시설 3개를 건설한다. 지난 7월 착공한 제1공장은 12만 리터 규모로, 2027년 1월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제1공장에는 1만5천 리터급과 3천 리터급 바이오리액터를 결합한 '타이터플렉스 쿼드 시스템'을 도입해 고역가 의약품 생산에 특화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30년까지 송도와 시라큐스를 합쳐 총 40만 리터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두 거점은 각각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한다. 시라큐스는 중소규모 임상·상업용 의약품과 ADC 제품을, 송도는 고역가 제품과 대규모 항체의약품을 전담한다.
하지만 당면 과제도 있다. 현재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위탁생산 물량은 전적으로 BMS 계열사인 E.R 스큅앤드손즈로부터 이전받은 것이다. 3년 한정의 계약 기간을 감안할 때 기존 계약 연장이나 신규 고객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는 향후 매출 유지와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바이오 산업 후발주자로서 롯데바이오로직스가 직면한 최대 과제는 인재 확보다. 특히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입성과 함께 전문 인력 보강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이 과정에서 업계 선도기업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의 법적 분쟁이다. 2022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자사에서 롯데바이오로직스로 이직한 3명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인천지법은 지난 2022년 7월 이를 일부 인용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같은 해 8~9월 롯데바이오로직스로 이직한 직원 4명을 형사 고발했다. 인천지방검찰정은 지난해 3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상 영업비밀누설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이중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여기에 인력 유인 활동 중지 요청 내용증명까지 여러 차례나 발송되며 양사의 갈등이 고조된 상태다.
이에 롯데바이오로직스는 투트랙 전략으로 돌파구를 모색 중이다. 국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 생산기지를 통한 글로벌 인재 영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인재 확보 전략의 성공 여부가 롯데바이오로직스의 미래 성장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8%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롯데의 제조 노하우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업계 관계자들은 "롯데그룹의 선택과 집중 전략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특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은 높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선발주자들과의 격차를 얼마나 빨리 줄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이라고 지적했다.
◆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 선도 노력
롯데그룹이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는 전기차 충전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업계 선두권으로 도약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이노베이트(옛 롯데정보통신) 자회사인 이브이시스(옛 중앙제어)는 2024년 3분기 기준 전국에 7,500기의 충전기를 설치하며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충전기는 전국에 24만기 이상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브이시스는 2022년 1월 롯데그룹이 69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이후, 단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월간 충전 거래액이 50억원을 돌파하며 수익성 면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전국 네트워크 구축 전략이다. 수도권에 4,500기(60%), 영남권에 1,500기(20%), 충청·호남권에 1,500기(20%)를 설치해 전국 단위의 균형 잡힌 인프라를 구축했다. 특히 롯데그룹의 유통 인프라를 활용한 '프리미엄 입지'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청주 신공장 준공과 함께 미국 현지법인 설립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큐와이리서치 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전기차 충전기 내수 시장 규모는 3,37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 성장했다. 현재 SK시스넷, 채비와 함께 상위 3사에 포함된 이브이시스는 특히 충전기 부품 및 시스템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브이시스가 단기간에 이룬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면서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통 인프라를 활용한 차별화 전략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시장의 성장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캐즘 현상과 안전성 이슈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 칼리버스 月 사용자 30만명 확보, 이익보다는 얼마나 빨리 키우느냐가 관건
롯데이노베이트가 전기차 충전 사업에 이어 메타버스 사업 '칼리버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2021년 가상현실·메타버스 전문기업 칼리버스(옛 비전VR)를 120억원에 인수한 이후 총 64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으며, 최근 200억원의 추가 투자를 결정하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 정식 출시한 칼리버스 플랫폼은 월간 활성 사용자 30만명을 확보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현재 월 3억원의 광고수익과 분기당 10억원의 가상 쇼핑몰 거래액을 달성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메타버스 시장의 불확실성이 주요 리스크 요인"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유통 명가인 롯데그룹이 AI와 메타버스를 통해 디지털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면서도 "단기 실적 부진을 극복하고 장기적 성장 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수익 모델 다각화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 지속가능성, 친환경 신성장동력 전환... 성과와 과제
글로벌 친환경 트렌드가 가속화되면서 롯데그룹이 2차전지 소재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조준했다. 특히 롯데케미칼과 롯데알미늄을 중심으로 한 화학계열사들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 중 롯데케미칼의 자회사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도전이 눈에 띈다. 2022년 국내 동박 생산 1위 기업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로 시장 입지를 다진 이 회사는 2030년까지 4조 원을 투자해 연매출 5조 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다만 최근의 실적은 녹록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31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가 직격탄이 됐다.
하지만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다. 내년부터 기존 전기차용 동박보다 수익성이 높은 AI 반도체용 고급 동박 제품 납품을 시작한다. 특히 자체 개발한 초저조도 동박(HVLP4)은 고급 인쇄회로기판(PCB)까지 용도를 확장할 수 있어 시장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배터리 분야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내년 4월부터 테슬라의 차세대 배터리(4680)용 동박 공급을 시작으로, 2026년 초에는 고수익 프리미엄 제품 라인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증권사 관계자에 따르면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익산공장의 수익성 저하는 우려되나 AI 반도체용 신제품이 실적 반등의 발판이 될 것"이라며 "2025년 상반기부터는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친환경 사업 전환에 따른 실적 부담은 만만치 않다. 롯데케미칼의 3년 연속 적자는 그룹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한 만큼 투자는 불가피하지만, 수소사업 등에서 예상을 웃도는 초기 투자비용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친환경 소재 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충분하나, 대규모 투자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며 "단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 전문가 진단 ‘2026년이 고비...선택과 집중 필요’
ESG 평가기관들은 롯데그룹의 친환경 사업 확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구체적인 탄소감축 로드맵과 실행계획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투자 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환경 개선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지표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롯데그룹의 신성장 동력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까지 최소 2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바이오 사업의 경우 2026년 이후에나 의미 있는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의 투자 규모로 볼 때 향후 2년이 롯데그룹 미래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특히 바이오 사업의 성공 여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롯데그룹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한다. 특히 바이오 사업의 경우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관련 전문가들은 "메타버스와 같은 신기술 투자는 필요하지만, 롯데그룹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룹의 강점인 유통과 서비스 역량을 디지털 플랫폼과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롯데그룹의 4대 신성장 동력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의 신뢰 확보'가 선결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과제 해결이 시급하다.
첫째, 투자자금 조달을 위한 시장 신뢰 확보가 핵심이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필수적인데, 이는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성에 기반한다"며 "롯데그룹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명확한 수익 모델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전문인력 확보와 조직문화 혁신이 시급하다. 경영컨설팅 전문가는 "신사업 성공을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 영입과 더불어, 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혁신적인 조직문화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보상체계와 자율적인 근무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현재의 조직문화를 되짚어 볼 때다.
셋째, 기술격차 해소를 위한 전략적 제휴와 투자가 필요하다. 산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현재의 기술격차를 단기간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선도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나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 인수가 효과적"이라며 "이 과정에서도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적정한 인수가격 책정과 투명한 거래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롯데그룹의 신성장 동력 전략 성공 여부는 시장의 신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는 단순한 자금조달의 문제를 넘어 인재확보, 기술력 제고 등 모든 과제 해결의 근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