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투자자들...'주주 가치 훼손' 지적에 유증 무효화 가능성도
[한스경제=박영선 기자] 경영권 분쟁중인 고려아연이 대규모 공개매수 후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시장에선 이번 유상증자가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점과, 공개매수 전 유상증자를 준비하는 부정한 거래를 진행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30일 고려아연은 소각 예정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의 20%에 달하는 보통주 373만 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신규 발행하겠다고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유상증자 조달규모는 2조5000억원으로 이 중 2조3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의 목적으로 쓴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려아연은 우리사주조합 20%를 우선 배정하며,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모든 청약자에게 특별관계자 합산 기준 총 모집기준의 최대 3%까지 배정할 계획이다.
차입금 상환액인 2조3000억원은 하나은행·SC은행·메리츠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에서 고려아연이 공개매수를 목적으로 확보한 금액이다. 이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고금리 대출을 주주 자본으로 ‘돌려막기’한다는 비난도 일고 있다. 이 금액으로 고려아연은 이달 MBK·영풍 연합의 공개매수에 대응해 총 주식의 11.26%인 233만1302주를 역대 최고가인 주당 89만원에 매입했다.
유상증자 소식 이후 고려아연의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29일 장 중 154 3000원까지 치솟았던 고려아연은 30일에는 전일 대비 29.94%나 하락한 108만1000원, 31일에는 7.68%가 하락한 99만8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고려아연, “공개매수 이후 유증 계획”...주관 증권사도 ‘빨간불’
유상증자를 진행할 경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전체 지분 중 36.06%를 확보할 수 있게 돼, MBK·영풍 연합이 보유한 35.56%에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의 공개매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유상증자가 진행돼, 주주 지분이 희석되면서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고려아연의 공시가 심각한 주주가치 훼손이란 지적이 일고 있 다.
특히 고려아연이 앞서 제출한 공개매수 신고서에 재무 상태 변화가 없을 것임을 남겨두었고, 유상증자 계획을 별도로 공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은 가중된다.
투자자들은 고려아연이 자본시장법에 위배되는 행위를 일으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142조 ‘공개매수자 등의 배상책임’에 따르면, 공개매수신고서에 중요사항이 기재되지 않거나 허위 사항을 기재 혹은 공모주주가 손해를 입은 경우, 해당 손해에 관해 배상의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이에 영향은 고려아연 유상증자를 주관한 미래에셋증권에도 미치고 있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기간(4일~23일)과 미래에셋증권의 기업실사 기간이 겹친다는 점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공개매수 이후 차선책으로 유상증자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닌, 공개매수 이전부터 유상증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다.
기업실사 과정에서 증권사는 기업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고 투자자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변동사항이 있을 시, 이를 추가로 파악해 알릴 필요가 있다. 법령에 따른 처벌이 미미한 상황이지만, 증권사의 부실 기업실사 사례가 급증하면서 지난 5월 금융당국은 해당 문제에 관해 실사 준수사항을 규정화하고 법정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고 빍한 바 있다.
이에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고려아연과 관련해 밝힐 입장문은 없다"며, "금융당국이 자사에 현장조사를 착수했고, 추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고려아연은 1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유상증자를 공개매수 종료 이후에 검토했으며, 신고서 기재에 착오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진행과 관련해 당시 시장에서 공개매수 종료 이후 주가가 공개매수 이전으로 정상화 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22일부터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유동물량 부족으로 시장 불안정성이 확대됐다"며, "이후 거래량감소로 인한 상장폐지 가능성이 가중돼 MSCI 지수 편출 가능성까지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커졌다"면서 해당 사안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짚었다.
이어 "회사채 발행 등 부채조달 실사 결과를 유상증자 실사에도 거의 동일하게 활용할 수 있어 증권사가 기존 실사 결과를 사후적으로 증자에 활용해 14일부터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으로 신고서에 착오 기재했다"면서, "적대적 M&A과정에서 주식시장에 여러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상장기업으로서 여러 리스크 요인이 커져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일환이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 투자자 지분 희석...주주 가치 훼손에 경고장 날린 금감원
소액투자자뿐 아니라, 최윤범 회장의 손을 들어줄 기업들의 지분도 희석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이번 유상증자에 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한화(전체 지분의 7.75%)·현대차(5.05%)·LG화학(1.89%) 등, 고려아연의 지분을 대량 들고 있는 기업들의 입장도 난처해진 모양새다.
투자 목적으로 고려아연을 매입해온 국민연금도 30일 공시에서 고려아연 주식 154만 8609주(고려아연 전체 지분의 7.48%)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3분기 내 7만1766주 가량을 매도해 차익실현한 것으로 추정되나, 아직 4분기 매도량은 공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타 기관 대비 이번 공시로 인한 손실이 적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7.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유상증자 계획 이후 최 회장의 편에 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상증자 공시 이후 금감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3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기간 유상증자를 추진한 경위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보고 부정한 수단 또는 위계를 사용하는부정거래 등, 위법 행위가 확인될 시 회사와 관련 증권사에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함 원장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차입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한 후 소각할 계획을 세우고 그 후 유상증자로 상환할 계획을 모두 알고 해당 절차를 순차적으로 진행했다면 기존 공개매수 신고서에서는 중대한 사항이 빠진 것으로, 부정거래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불공정거래가 확정될 경우 법령상 권한을 총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다만 금감원의 강력한 경고에도 최 회장이 예정대로 유상증자를 진행할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유상증자 성공 시 공개매수 이후 지분 편차를 0.5%p 정도 가져가면서 유리한 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매수 당시 금감원의 경고에도 고려아연은 매수 가격을 기존 83만원에서 역대 최고가인 89만원으로 인상했다. 금감원이 31일 구성한 TF 조사 결과에서 불공정거래 의심 행위가 확정되지 않는 이상 최 회장은 유상증자를 예정대로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를 불문하고 이번 유상증자가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MBK와 영풍 연합이 고려아연을 제424조(유지청구권) 법령에 따라 가처분 신청할 경우, 금융당국이 아닌 법원의 선에서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
관련 법에 따라 무효가 된 선례도 다수 존재하지만, 시장은 고려아연의 사례가 자본시장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해석돼 판결을 예측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는 해외 기관투자자의 공격으로 인한 경우가 많았으나,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적대적 M&A(인수합병)중 대규모 사모펀드 등이 합세해 발생했기 때문에 결론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영권 분쟁 장기화로 주가 하락 전망...사라진 ‘밸류업’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적으로 정부 안팎에서 주주 가치 제고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 증시가 부진한 와중에 잡음이 속출하면서 기업을 향한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다. 회사 내부 사정을 알 리 없는 주주들의 자본이 회장의 경영권 방어용으로 전락해 불이익을 손 놓고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편입, 지수 ETF에도 포함돼 있어 이번 고려아연의 의심 행위는 정부 사업 기조에도 반하는 동향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고려아연이 밸류업 지수에서 편출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고려아연을 향한 외국인의 투심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과 MBK·영풍 연합 중 누가 승리하던, 외국인의 입장에서 경영권 경쟁은 종목 변동성으로 인식될 뿐이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향후 고려아연의 주가에 대해 "투자의견이나 방향성을 예상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수급에 한정해 분석해보면 외국인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취득·매입 과정에서 발생한 지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에 고려아연이 실질적인 유동 시가총액을 줄이는 공시를 내면서 외국인 매도세가 커졌고, 이는 수급 방면에서 마지막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의 승리가 결정되면 외국인의 매도세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나, 대주주 갈등이 계속 격화될 경우 이를 변동성으로 취급해 추가 주가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영선 기자 pys710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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