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선 "주식매수청구권 부담스러울 수 있어"
과거 사업구조 개편안 내놨던 기업들...현대차는 '철회', 동원은 '조정'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중단됐다. 사업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한 지 61일 만이다. 금융당국의 압박과 주주들의 거센 반발 등이 표면적인 중단의 이유지만, 일각에서는 주가가 떨어진 탓에 주식매수청구권이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 두산 "모든 일정은 미정"...주매청도, 합병기일도 불투명
10일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회사 합병과 관련해 오는 25일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를 연기하겠다고 공시했다. 다만 일정은 미정이다. 아울러 이날 마감기일이었던 금융감독원의 3차 정정신고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두산은 이번 주요사항보고서 정정에 대해 "일정 변경에 따른 정정이나, 주요사항보고서 정정일(9월10일) 기준 변경될 일정이 미확정"이라며 "향후 변경 일정이 확정될 경우 이사회 결의 및 주요사항보고서 추가 정정으로 재공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주총 때 예정됐던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이 사라졌다. 합병기일 역시 불투명해졌다.
지난 7월 11일 첫 발표 이후 두산의 설득은 이어졌지만 주주들의 반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두산 측이 박정원 회장 등 대주주 일가에 유리한 분할과 합병비율을 산출했다는 의심이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금융당국까지 나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번 사태를 "주주 또는 시장과 소통이 부족해 오해를 초래한 사례 중 하나"라고 명명했다.
◆ '현대차' 혹은 '동원'의 길...두산의 선택은
일각에서는 이번 주총 연기가 단순히 일정 연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등 부담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두산이 한 발 물러서서 다른 방식의 개편을 모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질적으로는 낮아진 주가로 인한 주식매수청구권이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며 "그밖에 분할 가치 논란 등도 있어 이번 합병 방식을 접고, 다음 판을 준비하지 않을까"라고 분석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를 살펴보면 개편 발표 이후 7월18일 2만5000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합병비율 불만 등이 터져나오면서 지난달 5일 1만5150원으로 최저치를 찍은 뒤 회복세를 보이며 1만6000원에서 1만7000원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두산에너빌리티의 소액주주 비중이 63.6%(지난 1분기 말 기준)에 달한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이미 플랫폼을 통해 철회를 요구하면서 단체 행동에 나섰다. 이들을 비롯해 2대 주주인 국민연금(6.9%)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회사가 제시한 한도 6000억원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두산과 비슷한 상황은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2018년 현대차그룹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지배구조 개편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모비스의 지배회사 전환을 위한 개편안을 발표했다. 회사의 모듈-애프터서비스(A/S) 사업을 글로비스로 넘기고, 존속법인은 자율주행차 등 핵심부품사업과 투자사업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개편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다른 주주들에게도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이후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와 국민연금 등이 추가로 개편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부담을 느낀 현대차그룹은 결국 두 달여 만에 개편안을 전격 철회했다.
반면 동원그룹은 주주들과 조정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에 성공했다. 동원그룹 상장사인 동원산업이 비상장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의 개편안을 2022년 발표했다. 당시 동원산업은 자산가치보다 낮은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설정, 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검토하고, 국회까지 관련 개정법률안이 발의되자 동원그룹은 한발 물러섰다.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합병가액 책정 기준을 주가에서 순자산가액으로 변경했다. 이후 동원산업 주주들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규모는 총 443억원(21만4694주)으로 집계, 당시 주가도 청구가격과 유사한 수준에 머물렀다. 조정에 성공한 셈이다.
다만 두산 측은 어느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관련 일정은 확정된 것이 없다"며 "주주들과 소통하면서 추후 일정을 다시 공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라진 기자 jiny341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