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류승협 기자] 법적으로 문제없는 분할, 합병 과정이라는 것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상장된 회사의 주식가치는 주가로 표현되는 것이고, 이를 근거로 합병 비율을 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합병을 해야만 기업이 추구하는 기업가치 제고, 사업적 시너지, 밸류업 등이 달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대기업 집단들도 수많은 계열사들이 각자 경영하고 있으며, 계열사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합병만이 시너지의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달 11일 사업구조 재편을 발표한 두산그룹의 이야기이다. 발표 이후, 관련된 4개 회사(두산,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가는 모두 폭락했다. 8월23일까지 증발한 시가총액만도 6.6조원에 달한다.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아질 만하다. 초법적 권력기관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금융감독원은 두산의 계획을 막아섰다.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 두산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합병하려고 하는가?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매지 말라'는 속담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을 30%, 두산로보틱스를 68%, 두산테스나를 39% 소유한 지주회사이다. 그런데 ㈜두산 매출 중 92%가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나오고 나머지는 미미하다. 다수의 계열사를 거느렸다고 보기에는 면이 서지 않는다.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로 넘기면 적어도 2개의 핵심 자회사를 갖게 된다. ㈜두산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가 개선되는 모양새다.
㈜두산이 68%나 갖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자본가치보다 매우 높게 평가(7월11일 기준 PBR 12.8배)되고 있기 때문에 두산밥캣과의 합병 후에도 42%의 지배력을 갖게 된다. 현재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 13.8%에 비하면 지배력이 대폭 확대된다. 만약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PBR 1배 수준으로 평이하게 평가됐다면, 지배력을 대폭 상실하면서도 사업 시너지를 이유로 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을까?
그룹 차원에서 미래 투자자금 확보라는 명분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분할합병의 배경으로 가장 먼저 내세운 이유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성장을 위한 자금 확보이다. 인적분할에 따른 효과만 보면, 차입금 감소는 약 7천억원에 불과한데 배당수익 상실 약 837억원(최근 2년 평균)과 보유지분의 가치 이전 약 2조4천억원을 감내해야 한다. 게다가 주식매수청구권 최대치인 6천억원을 감안하면 자금확보가 이루어진다는 말에 의문이 든다. 심지어 그룹 차원에서 3개사 주식매수청구권 부담은 최대 2조6천억원에 달한다.
각 사의 소액주주 입장에서 보면, 주주들은 그룹에 투자한 것이 아니다. 로봇 사업을 좋게 보는 투자자와 밥캣 사업을 좋게 보는 투자자는 원치않게 다른 사업에 투자하게 된다. 주가만 오른다면 이들의 불만은 눈 녹듯이 사라지겠지만, 주가는 미래에 가봐야 하는 것이고 당장은 하고 싶지 않은 사업에 끌려 들어가야 한다. 이런 불만이 최근 주가에도 크게 반영되어 있다. 관련된 4개사(두산,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의 주가는 회사의 발표 이후 모두 하락했고, 주주의 손실은 각각 1.6조원, 2.5조원, 1.2조원, 1.3조원으로 총 6.6조원에 달한다(8월23일 종가 기준). 3개사의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보다도 낮게 형성돼 있다는 점도 합병의 가능성과 효과를 재고해야하는 이유이다.
이번 분할합병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팀코리아, 밸류업, 기업가치 제고, 사업적 시너지 등 미사여구가 오히려 투자자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류승협 기자 rewsh@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