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냐로 인해 주요 농작물 작황 큰 차이 날 수 있어
밥상 물가, 에너지·식량 안보에 ‘빨간불’ 켜질 가능성 커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8~10월 사이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최근 엘니뇨가 농업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을 일부 회복할 수도 있지만, 라니냐에 따른 피해도 커서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8월에서 10월 사이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이 70%라고 보도했다.
라니냐는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으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하인 상황이 5개월 이상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적도 무역풍이 강해져 동태평양의 따뜻한 해수가 서태평양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한다.
기상현상 역시 엘니뇨와 반대여서 호주, 인도네시아 등 서태평양 지역에 폭우가 퍼붓고, 북미에는 강추위, 남미에는 심한 가뭄이 닥칠 수 있다. 국내에는 겨울 기온이 평년보다 낮고 강수량이 적어진다. 남부 지역 강수량이 줄어들며, 밥상 물가와 식량, 에너지 안보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엘니뇨와 라니냐 자체는 지구 열순환에 의한 ‘자연적’ 현장으로 이상기후는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빨라지면서 발생 주기와 강수·기온 유형이 달라지고 있다.
상품 중개업체 마렉스 그룹의 농업 판매 책임자인 조나단 파크먼은 “엘니뇨, 라니냐와 농작물 사이에는 꽤 강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카카오는 현재 서아프리카의 주요 생산국들이 극심한 가뭄과 변동하는 강수량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부닥쳐 있다.
파크먼은 “라니냐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며 “8월이나 9월에 라니냐가 발효하면 증가한 강수량이 수확 전 각국 농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은 이미 더 나은 수확량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뉴욕의 카카오 선물 가격은 4월에 설정된 기록적인 고점보다 약 40%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마렉스 그룹도 카카오 시장이 3년 연속 적자에서 올해 시즌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도 파크먼은 타이밍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라니냐 시작 시기가 수확 시기 이후라면, 겨울철에 시작될 비가 수확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기온이 예상보다 온화할 경우 농작물에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카카오 생산국인 에콰도르 일부 지역에는 라니냐로 인한 가뭄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에콰도르는 서아프리카보다 더 나은 접근성을 갖고 있어 이로 인한 영향을 제한할 수 있다”고 에콰도르 국가 연구소 INIAP 제임스 키로즈 농학자가 설명했다.
커피 생산량에도 위협이다.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에 강수량이 줄어들면 스타벅스 등이 선호하는 고급 아라비카 원두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는 최근 2년 동안 이어진 가격 상승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두 번째로 큰 커피 생산국인 베트남에서는 라니냐가 발생하면 강수량이 늘어난다. 강수량이 늘어나면 인스턴트 커피에 많이 사용되는 로부스타 품종 수확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로부스타 원두 가격은 공급 차질로 인해 197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타이밍이 중요하다. 라니냐가 너무 늦게 시작하면, 카카오 열매 수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파크먼은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8월에 라니냐가 발생해 농작물에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세계 최대 설탕 수출국인 브라질의 주요 사탕수수 재배 지역이 가뭄에 시달리면서 중남부 지역의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라니냐가 발생하면 사탕수수 생산량이 지금보다 더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농촌 기상학자인 마르코 안토니오 도스 산토스는 “라니냐가 발생하면 9월과 10월 초에 내리는 비가 내리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로 인해 남미의 강수량이 감소하면 파종이 지연되고, 다음 시즌의 수확량에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트리시 매드센 그린 풀 상품 전문 수석 농학자가 덧붙였다.
실제로 라니냐 발생 시 브라질은 강우량이 감소하고 건조한 날씨가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데, 하반기부터 라니냐가 강하게 나타나면 브라질에선 봄까지 건조한 기후가 이어지거나, 서리·산불 등이 잦을 수 있어 사탕수수 생산이 많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그리고 브라질의 사탕수수 생산 감소는 글로벌 원당 공급망 불안으로 이어진다. 글로벌 원당 수출 중 브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53%로, 2년 전에 비해 13%p 확대됐다. 브라질에서 폭염 등 기상악화로 생산이 부진하거나 물류 지연 등이 발생하면 국제 원당 수급이 악화할 수 있단 뜻이다.
반대로 인도에서는 몬순 강수량을 증가시켜 설탕 생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홍수로 인해 주요 재배 지역 면적이 감소하고 있다고 매드센이 지적했다. 인도는 또 설탕 대신 에탄올용으로 사탕수수를 사용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단기적으로 인도 정부가 설탕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
설탕 선물 가격은 지난해 11월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적절한 강수량과 브라질에서 에탄올 대신 설탕을 만들기 위해 사탕수수를 더 많이 사용하면서 하락했다.
이 외에도 라니냐가 발생하는 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농산물 공급국인 미국과 브라질의 날씨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미국에서는 라니냐가 발생하면 일부 남부 주에서는 가뭄과 겨울 더위가 발생하고,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는 많은 비가 내린다.
또한 카리브해와 걸프 코스트에서는 허리케인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으며, 서부 옥수수 벨트의 일부 지역은 가뭄에 직면할 수 있다. 이전에 미국에서 라니냐가 발생했을 때 많은 남부 면화 재배 지역에서 수확량이 낮아졌고, 주요 대두 생산 지역, 특히 북쪽 지역에서는 평소보다 덜 덥고 습할 가능성이 있다.
브라질에서는 9월부터 중서부의 주요 옥수수 및 대두 생산 지역 대부분에 더 건조하고 더운 날씨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상품 중개업체 차르니코프의 레티시아 피조 분석가가 말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이 때문에 “생산성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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