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입증책임 제조사 조항 신설…"운전자 발 찍는 영상장치 설치만으로도 해결"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사망 9명을 포함해 15명의 사상자를 낳은 서울시청역 교통사고를 계기로 급발진에 대한 관심이 다시 환기되고 있다. 특히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사에게 입증책임을 지게 하는 내용의 국민동의청원이 6월 28일 5만명대에서 7월 3일 6만7226명(오후 2시 기준)의 동의를 얻으며 ‘제조사 입증책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청원은 2022년 12월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로 숨진 이도현(당시 12세)군의 아버지 이상훈씨가 6월 14일 국회 국민동의 게시판에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시 입증책임 전환을 위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에 관한 청원’이란 제목으로 올린 것이다. 6월 28일 기준 5만명 이상이 동의해 청원 성립 요건을 충족한 이번 청원은 향후 국회 소관위원회와 관련위원회에 회부돼 법안 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다시 청원에 나선 이씨는 청원글에서 “제조사도 증명하지 못하는 전자기기 소프트웨어 결함 원인을 소비자에게 증명하라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안은 국가폭력”이라고 지적하며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 상태인 급발진은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증명하라는 대한민국의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법안이 방치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올해 3월 유럽연합(EU)에서는 소비자인 원고가 기술적, 과학적 복잡성으로 인해 제품의 결함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과도하게 어려운 경우 결함과 인과관계를 추정해 입증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넘기는 조항이 신설됐다”며 “이제 대한민국도 EU의 제조물책임법 지침을 반영한 제조물책임법, 자동차 제조사에서 결함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개정을 올해 안에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하면 입증책임은 소비자가 해야 한다. 이에 지금까지 자동차 결함에 의한 급발진으로 인정받은 교통사고 사례가 없는 상황이다. 이 문제에 대해 21대 국회에서도 공감하고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가 함께 도현이법을 발의했지만,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 영향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이후 여야 정쟁이 이어지면서 법안은 폐기됐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5월 대표발의한 도현이법은 제조업자가 영업비밀이라 하더라도 결함과 손해의 증명, 손해액 산정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또한 당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법원은 자료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결함과 손해의 입증책임을 자동차 제조업자가 지도록 했다.
다만 급발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기적인 방향에서는 도현이법 입법이 맞는 방향이지만, 올해 안으로 입법화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필수 자동차급발진연구회장(대림대 교수)은 “자동차에 부착돼 있는 자동차사고기록장치 EDR은 운전자의 행태 정보가 한정돼 있고 자동차 상태만 일부 알 수 있는 등 신뢰하기 힘든 장치”라며 “영상블랙박스와 EDR 자료가 상이한 것에만 제조사도 공동 참여해 원인을 밝히는 데 일조한다는 내용을 건의했지만 이 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고착화된 급발진 입증책임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으니 하나씩 틈을 만들어 현재의 소비자 중심에서 제조사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며 “페달과 브레이크를 밟는 운전자의 발을 찍는 영상장치만 달아도 100% 운전자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이 장치를 도입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권선형 기자 peter@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