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쓰레기·관광선박·해상풍력 등아 서식지 파괴 멸종위기 원인
제주도, 돌고래에 생태법인격 부여 추진..."여야 제1호 합의법안으로"
12시에 가까울수록 심각하다는 우리나라의 '환경위기 시각'은 현재 9시 28분이다. 0∼3시까지는 '좋음', 3∼6시는 '보통', 6∼9시는 '나쁨', 9∼12시는 '위험'을 의미한다. 이런 환경위기는 생태계 위기와 맞닿아 있다. 지구촌 어느 나라도 환경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최근 멕시코에 사는 원숭이들은 폭염 탓에 집단 폐사했고, 지구온난화로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황제펭귄은 떼죽음을 당했다. 한반도 역시 멸종위기종이 속출하면서 생태계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현재 국내 생태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대비책 마련은 어디까지인지 멸종위기종을 통해 살펴봤다. <편집자주>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국제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는 국내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해양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이들의 개체수 변화는 생태계 파악의 척도로 여겨진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중요성과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해 지난 2012년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다.
이후 2019년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 직전 상태인 적색목록상 '준위협종'으로 분류했다. 이는 남방큰돌고래가 멸종위기 직전 상태 또는 보호조치가 중단될 경우 멸종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 인간이 만든 환경오염에 고통 받는 남방큰돌고래
과거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앞바다에서 1000마리 이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서식 환경이 악화되면서 남방큰돌고래의 개체수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 따르면 발견 개체수는 2008년 124마리에서 2010년 105마리까지 점점 줄다가, 2017년 117마리로 소폭 늘기 시작하면서 2024년 120여마리 수준으로 회복됐다.
개체수가 줄어드는 까닭은 다양하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인간이 만든 환경 오염이다. 주로 △해양쓰레기 △무분별한 관광선박 △대규모 해상풍력발전사업 등을 위기 원인으로 꼽는다.
먼저 폐플라스틱, 폐어구 등 해양쓰레기의 경우 돌고래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먹이 활동과 휴식 등을 방해한다. 특히 폐어구 등에 지느러미나 꼬리가 잘리는 경우도 발생했으며, 낚시바늘이 돌고래 몸통에 깊이 박히는 경우도 포착됐다. 이로 인해 피부병 발병도 심심찮게 보인다.
더구나 지난 2019년에는 구강암에 걸린 돌고래 '턱이'가 제주 해안에서 발견됐다. 입 안에 종양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턱까지 구부러진 모습으로 안타까움을 샀다.
또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돌고래 관광객이 늘어난 점도 서식지 파괴에 한몫했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 관광선을 비롯해 제트스키, 모터보터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선박과 밀접 접촉은 돌고래의 상해 위험이나 스트레스 유발을 높인다. 지난해 4월에는 관광 선박에 지느러미와 주뭉이가 잘린 돌고래들이 발견된 바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해양보호생물에 5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해양생태계법이 시행 중이다. 위반 시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해상에서 돌고래와 선박 간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등의 문제로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단체 등에서 신고를 해도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환경단체는 입지 조건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지어지는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와 연안 난개발 등이 돌고래를 위협한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탐라해상풍력발전의 확장 사업이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측은 탐라해상풍력 확장사업 내 발전기 설치 공사시 발생하는 항타 소음은 50km 이내의 큰돌고래들에게 거부반응을 일으킨다고 추정했다. 특히 공사 소음과 선박 운항 등으로 인해 음파로 의사소통을 하고 지형을 파악하는 돌고래에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제주 연안 가까운 바다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해상풍력사업은 연안 생태계 보호를 위해 철회하고, 해안선에서 10km 이상 이격해 연안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죽은 새끼 업고다니는 어미 포착..."1년새 일곱번째 새끼 돌고래 죽음"
이러한 원인들로 고통받는 돌고래의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달에도 폐사된 새끼 남방큰돌고래가 발견됐다. 다큐제주와 제주대 돌고래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 1일 낮 12시 28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양어장 인근 앞바다에서 죽은 새끼를 업고 다니는 남방큰돌고래가 포착됐다.
발견 당시 이미 부패가 시작됐지만, 어미 돌고래는 업은 새끼를 들어 올리면서 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오승목 다큐제주 감독은 "일 년 새 벌써 일곱번째의 새끼 돌고래가 죽었다"며 "태어난 지 몇 달도 안된 어린 새끼 돌고래 죽음이 두드러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이어 "제주 바다 환경이 나날이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기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관련 기관이 빨바른 대응을 통해 멸종위기에 놓인 제주 남방큰돌고래의 안전한 서식지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끼 돌고래의 죽음이 늦겨울에서 봄에 집중됐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죽은 개체수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발견 지역도 대정읍 노을해안로 7km(일과리, 영락리, 무릉리, 신도리) 구간에 집중됐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종달이' 역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낚시줄에 걸린 채 발견된 종달이는 생후 1년 안팎으로 추정되는 새끼 남방큰돌고래다. 환경단체들로 구성된 제주돌고래긴급구조단은 지난 1월 꼬리에 달린 낚싯줄 일부를 제거하는 구조 작업을 벌였다. 이후 반년 넘게 구조와 모니터링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돌고래긴급구조단은 지난달 해양수산부 등에 종달이의 포획 허가를 받았다. 구조해 치료한 뒤 다시 바다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이후 지난달 24일 구조에 나섰지만 종달이가 외부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다만 종달이 상태가 점차 악화되고 있는 만큼 이달 중으로 다시 포획에 나설 방침이다.
◆ "돌고래에도 법인격 부여하자"...여야 합의 제1호 법안 추진
이런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제주도는 생태법인이라는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생태법인(Eco Legal Person)은 사람 외에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비인간 존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국내 사례는 아직 없으며, 해외에서는 뉴질랜드가 환가누이강에, 스페인이 석호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법인격 부여가 구체화됐다. 당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 제주특별법 개정' 기자회견에서 "제도 도입은 법 제도 변화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인류 공통과제를 해결하고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문명으로 대전환하기 위한 혁신"이라고 말했다.
도는 지난해 3월부터 학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을 운영했다. 워킹그룹은 모두 4차례 회의를 거친 결과 제주특별법에 제주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직접 부여하는 안과 생태법인 창설 특례를 포함해 개정하는 2가지 안을 구체화했다.
이를 토대로 이번 제22대 정기국회에 법률안을 상정해 여야 합의 제1호 법안으로 발의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여기에 2025년에는 제주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 제1호로 지정할 방침이다.
최재천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 위원장은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생태법인 제도가 제주에 도입돼 대한민국이 환경선진국으로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정라진 기자 jiny341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