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건중 3건이 위헌 소지...사적 이익이 거부권 행사의 실질배경일 경우 문제돼"
[한스경제=박시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두고 범야권에서는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야권에선 윤 대통령이 임기 2년 동안 9건의 거부권을 행사한 결과 현행 헌법하에서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정권에 올랐고, 이 중 상당수가 사적 이익으로 인한 거부권 행사였다는 점에서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권한 남용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헌법상 대통령의 공직원리를 위반하는 행위로 이를 멈추지 않으면 탄핵사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1일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채해병 특검법 등 거부권행사 위헌성을 논하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위헌성에 대해 진단했다.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과 이유에 대해 짚어보고, 채해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2년의 임기 동안 총 9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거부권 행사 이유에 따라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정책적 입장 차이가 거부권 행사의 주된 배경이 된 법안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방송3법 개정안’ 등이 있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 본인이나 가족, 측근을 보호하려는 사적 이익이 거부권 행사의 배경이 된 법안으로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안’, ‘대장동 50억 클럽 특별검사법안’,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 등이 있다. 이 경우 대통령의 공직원리에 반하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남용하고 있고, 위법과 위헌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대통령 거부권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전에 45건의 거부권을 썼던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하고, 박정희 정부는 19년 동안 5건, 노태우 정부는 7건, 노무현 정부는 6건, 이명박 정부는 1건, 박근혜 정부는 2건의 거부권을 사용했고,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정부는 한 건의 거부권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특히 채해병 특검법은 왜 채상병이 무고하게 숨져야 했는지, 책임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수사가 엉망이 됐는지, 누가 수사를 막았는지 진상을 알자는 것으로 촌각을 다누는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국회가 통과시킨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해야 하는데 채해병 특검법은 국민 전체 이익을 해치지 않는 사안인 동시에 대통령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윤 대통령이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제시한 사유가 헌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주희 변호사는 대장동 특검법 거부권을 한 예로 들며 “대장동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한 사유를 보면 수사 인력과 기간이 과도해 사건 관련자들의 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고, 국민 혈세를 거대 야당 대표의 방탄과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데 낭비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며 “거부권 행사 사유로 야당을 비난하며 향후 치러질 선거의 공정성 든 것은 전례가 없고, 헌법상 허용되는 사유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에선 ‘채상병 특검법’에 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큰 파장을 야기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은 지난 2일 ‘순직 해방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재적 의원 168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채해병 특검법은 지난해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채수근 해병 사망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동시에 해당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실·국방부의 사건 은폐·무마·회유 등의 의혹을 파헤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김규현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채해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학계에서는 거부권 행사의 조건으로 ‘명백히 위헌인 경우’,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대통령의 책무 수행에 현저한 어려움을 야기하는 경우’, ‘정책적으로 대통령 입장과 배치되는 경우’ 등을 들고 있는데 채해병 특검법은 이러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채해병 특검법은 과거 특검법들과 비교할 때 내용과 형식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추계 결과 특검법 시행에 따른 재정소요는 올해 약 80억 원으로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 사회정의를 바로잡고 채해병 등 억울하게 희생되거나 불이익을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대통령의 책무 수행에 어려움을 야기한다고 보기에도 어렵다”며 “정책적으로도 대통령의 입장과 배치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채해병 특검법은 내용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21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여야 합의 없는 특검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거부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 대표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이 일방적 독주를 하고 입법 권한을 남용하고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할 경우 최소한의 방언권이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으로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며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권력분립의 기반하에 견제와 균형을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도 거부권을 11번 행사한 바 있고, 최근 이스라엘 무기 지원 강행 법안이 이스라엘 안보 원조지지 법안 역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며 “미국 대통령제에서도 역사상 총 2595건의 대통령 거부권이 발동된 바 있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임기 중 63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탄핵이 거론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채상병 특검법 역시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우선으로 왜 수사 중인 사건을 가지고 정쟁에 몰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민생보다는 정쟁만을 위하고, 여야 합의도 없는 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헌법상 방어권은 행사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부의 입법권을 전면적으로 무력화시킬 정도로 대통령 거부권이 무제한적으로 행사되는 극단적인 경우나 대통령이 본인이나 가족 등의 사익 추구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예외적인 경우는 대통령 탄핵을 통해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인사권을 통해 검찰과 경찰을 이미 장악했고, 향후 공수처까지 장악하게 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중대한 사법방해야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탄핵청구가 인용될 수 있을 만큼 그 위법성의 정도도 매우 크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시하 기자 seeha@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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