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말을 직업으로 삼는다. 말 못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라는 말도 정치권에서는 예외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리가 오직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로 대공황을 극복했다. 처칠 영국 수상은 유머로 상대를 품었다. 언젠가 처칠이 연단에 오르다 넘어지자 청중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제가 넘어져 국민들이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다시 한 번 넘어지겠습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링컨은 “적을 파괴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라며 정적조차 끌어안았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흑백갈등을 녹였다. 외환위기(IMF) 직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잘못은 지도층이 저질러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아픔과 울분을 금할 수 없다”는 취임사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정치인의 말은 이렇듯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고 상대 외투를 벗기는 힘이 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자신과 조직의 명운을 뒤바꾸기도 한다. 한데 여의도 정치는 막말이 춤춘다. 말하는 사람이나 그 말에 환호하는 자들이나 모두 천박하다. 그들에게는 품격을 찾아보기 어렵다.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품(品)’은 ‘입(口)’이 세 개 모여 이룬 글자다. 상대를 존중하며 절제하는 말이 쌓일 때 품격을 이룬다는 뜻이다. 정치인은 일반인보다 파급력이 크다. 지금 여의도에서는 자신을 경계하는 ‘죽비’보다 상대를 찌르는 ‘죽창’같은 말이 난무하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을 향한 ‘북한에서 온 쓰레기’ ‘부역자’ ‘빨갱이’라는 망언은 용납하기 어렵다. 아무리 상대가 미워도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부역자’ ‘빨갱이’ ‘쓰레기’는 수많은 탈북민들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이는 북한 당국이 탈북민들을 비난할 때 쓰는 말이다. 탈북민들은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 왔다. 또 북에 두고 온 가족들 걱정으로 죄의식에 시달린다. 탈북민들 처지는 고단하고 남한사회에서 소수 약자다. 이런 이들을 향해 쏟아낸 막말이야말로 쓰레기다. 나아가 민주당은 약자를 대변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 의원들의 경박한 언행은 호칭 논란에서도 확인된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5년짜리 정권이 겁도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윤석열씨”라고 불렀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질의 응답 중 “이동관씨를 도저히 (방통위원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와 정부를 책임진 부처 수장을 “씨”라고 낮춰 부르는 공동체는 품위를 잃었다. 대통령과 장관을 “씨”라고 호칭함으로써 자신의 격이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건지 의문이다. 상대를 비하하는 건 스스로 품위를 낮추는 행태다. 나아가 지지층을 향한 얄팍한 선동에 불과하다.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언행은 윤 대통령 취임 전부터 계속됐다. 최강욱 의원은 지난해 대선 직후 페이스북에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을, 윤석열씨의 몸과 마음에 확실히 새겨줄 수 있도록 하겠다. 진정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썼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 진영에서는 의도적으로 대통령 부부를 비하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 스피커를 자처하는 김어준은 TBS라디오에서 김건희씨라고 호칭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항상 여사로 불렀다. 그는 “씨는 높이는 말”이라며 상스런 궤변을 늘어놓았다. 국어대사전은 씨를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청년위원회는 지난 3월 “윤석열씨는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조선 총독인가”라는 국회 기자회견을 가졌다. 새로운 정치를 지향한다는 청년 정치인들마저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 또한 “윤석열 밑에서 임기를 마치는 게 치욕스러웠다”며 사임 배경을 밝혔다. 그렇게 말해야만 폼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안쓰럽다.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국민의힘은 문재인 대통령을 “씨”로 호칭했다. 주호영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는 “문재인” “문재인 씨”라며 현직 대통령을 폄하했다. 성경에 ‘혀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장 21절)’는 구절이 있다. 현직 대통령이 예우 받지 못하는 악습은 이렇듯 물고 물리는 전과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정권에서 집권하더라도 대통령은 존중받지 못한 채 ‘씨’로 불릴게 빤하다. 아무리 상대 편 대통령이라지만 국민이 선출한 국가 지도자를 욕하는 건 얼굴에 침 뱉기다. 어쩌다 한국 정치가 이렇게까지 곤두박질쳤는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국민들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해도 상대를 존중하는 품격 있는 정치를 기대한다. 공자는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상대에게도 하지 말라(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했다. 상대를 존중함으로써 존중받는 건 상식 아닌가.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yb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