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정치권이 역사 논쟁으로 시끄럽다. 광주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과 육군사관학교 흉상 철거 논란은 정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E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움직일 수 없는, 박제된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역사는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재해석되며 재규정되기 마련이다. 한데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역사 논쟁은 패싸움에 가깝다. 자신이 속한 진영 입맛에 맞게 윤색하고 비틀고 있다. 한쪽은 고무줄 잣대, 다른 한쪽은 과잉이념으로 갈등을 촉발하고 있다.

첫 번째 논란은 음악가 정율성이다. 정율성은 1930년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공산당에 몸담았다.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팔로군 행진곡’를, 해방 후에는 북한 인민군 협주단장을 지내며 ‘조선 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6·25 때는 중공군으로 참전했다. 1956년 중국으로 귀화한 그는 중국 혁명열사 능에 묻혔다. 그는 ‘신중국 수립 영웅 100인’에 선정되는 등 중국과 북한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사실 광주에서 태어났을 뿐 일생을 중국과 북한에서 보냈다. 그의 존재는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이 한중관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론하면서 알려졌다.

광주시는 정율성을 기린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정율성로를 명명하고 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다. 강기정 시장은 48억 원을 들여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광주시민들 반응은 엇갈린다. 광주 출신 예술인이 ‘신중국 수립 영웅 100인’에 선정됐다는 사실을 들어 중국 관광 특수를 기대하는 이들은 긍정적이다. 반면 6.25때 북한을 도와 남한을 침략한 중공군 편에 선 그를 기념하는 건 안 된다는 목소리가 있다. 남북 대치상황에서 국민 정서는 부정적이다. 북한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광주 출신 고 서정우 하사 어머니 김오복씨도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이 작곡한 ‘조선인민군 행진가’는 6.25전쟁 내내 북한군 사기를 북돋웠고,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다”면서 “그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며 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정부는 감사원 감사와 함께 사업 추진을 막기 위한 실무 검토에 착수했다. 중앙정부가 자치단체 사무에 관해 조언 또는 권고, 지도할 수 있다는 지방자치법 184조와 주무장관은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는 188조를 근거로 들고 있다.

정치권도 가세하면서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율성은 공산당 응원단장”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정율성은 6·25 전범이자 부역자다. 어떻게 6·25 부역자를 추앙할 수 있냐”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수년 전부터 추진된 사업을 낙인찍고 혐오 감정을 부추기는 건 다른 의도가 의심된다”며 맞서고 있다. 이병훈 민주당 의원은 “항일운동가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불온시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 행태”라고 반박했다. 강기정 시장 또한 “정율성 선생은 시진핑 주석이 꼽은 한중우호에 기여한 인물이다. 적대 정치는 그만하라”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두 번째 논란은 육사교정에 설치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다. 국방부는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이전 배경을 설명했다. 홍범도 장군은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5인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했다. 국방부 이전 계획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상황에서 공산당 가입은 독립운동을 위한 방편이며,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독립운동가도 적지 않다. 더구나 홍범도 장군은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됐고,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거나 북한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 활동한 흔적도 없다.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이 고무줄 잣대라면 홍범도 흉상 이전은 이념과잉이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이념 대립을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의도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율성은 남한을 침략한 중국 인민해방군 편에 섰고 북한에서는 영웅으로 부른다.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 진보진영은 “이념을 떠나 음악적 업적만큼은 어떻든 평가해야 한다”고 옹호한다. 일부 행적만 부각시켜 친일로 낙인찍은 인촌 김성수나 미당 서정주에게 들이댄 잣대와 비교하면 고무줄 평가다. 이와 달리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는 과잉 대응이다. 홍범도 장군은 보수진보 진영을 떠나 기렸다.

캐나다 토론토 라이어슨 대학은 지난해 토론토 메트로폴리탄 대학으로 개명했다. 캐나다 공립학교 시스템 창립자인 라이어슨이 원주민 어린이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기숙학교 설립을 주도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사회는 원주민 학살 책임을 물어 콜럼버스 동상 철거로 떠들썩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재평가는 어디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목적이나 진영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고무줄 잣대나 이념과잉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