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M&A·펀드조성·기술수출 바닥
“거품 빠지고 본격 옥석 가리기”

[한스경제=변동진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 유치가 신통치 않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고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정부 정책과 글로벌 시장을 리딩할 아이템 부재 등으로 자금조달 난항에 빠진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5일까지 1500억원 규모의 K-바이오백신 펀드 조성을 위해 한국벤처투자를 통해 신규 운용사 선정 공고를 진행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5000억원, 2025년까지 1조원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래에셋벤처투자가 자금 모집에 실패, 운용사 자격을 반납하는 암초를 만났다.

미래에셋과 유안타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9월 각각 2500억원씩을 조성할 운용사로 선정된 바 있다.

복지부는 우선 미래에셋이 반납한 펀드 결성분 2500억원 중 1500억원을 조성할 운용사를 이번에 선정하고, 나머지 1000억원도 추가로 운용사를 선정해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펀드 조성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다. 투자사들이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미약품그룹은 오너 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추진한 지분 매각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시장에선 딜 클로징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PEF)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11.8%를 최대주주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사장으로부터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라데팡스는 총 32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해 지분 매수를 계획했다. 이중 61%를 출자할 예정이던 핵심 출자자(LP) MG새마을금고중앙회가 뱅크런 사태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입장을 번복했다.

일각에선 운용사(GP) 변경 가능성까지 전망한다. 이미 일부 PEF들이 오너 일가와 라데팡스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수출 등 눈에 띄는 호재도 없다.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총 기술수출 계약은 18건에 불과했고, 규모는 6조 6326억원으로 전년 대비 54% 급감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술수출 금액은 17억 650만달러(약 2조 2185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18만 1325만달러(약 2조 3572억원)에 못 미쳤다.

굵직한 M&A(인수합병)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례로 보령그룹은 백신 사업 계열사 보령바이오파마 매각에 난항을 겪고 있다. 몸값을 둘러싸고 원매자와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다.

보령은 애초 동원산업에 보령바이오파마 지분 100%를 매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양사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지난 3월 무산됐다. 이후 3개월 만인 6월 화인자산운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매각가는 5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시장은 추정했만, 양사는 4주간의 실사가 끝난 지난달 SPA(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보령그룹 측이 금액을 과도하게 설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 측은 현재 프리미엄까지 더한 6000억원 이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팬데믹 당시 매각했어야 할 매물을 현재 시점에 내놓은 것 자체가 경영진 판단 미스라고 입을 모은다. 

김현욱 현앤파트너스코리아 대표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옥석 가리리’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 관련 백신이나 치료제를 긴 모멘텀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했다”면서 “이같은 상황에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팬데믹 시절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노무현·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줄기세포, 일괄 약가인하, 신약개발, 미용성형 등0 보텀업(Bottom-up) 방식의 육성 전략이었다”며 “문재인 정부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및 백신 등 각종 펀드 조성을 비롯한 톱다운(Top-down) 방식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1~2개 기업이 수혜를 받아 ‘낙수효과’가 발생해야 하는데, AI(인공지능)와 디바이스 등 엉뚱한 기업들이 혜택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김 대표는 “글로벌 시장을 리딩을 할 수 있는 아이템 부재도 투자자의 시선을 바꿨다”면서 “코로나 당시 치료제와 백신 개발하겠다는 업체 중 실제 성공한 회사는 SK바이오사이언스 뿐으로 국내 제약바이오의 R&D 경쟁력 민낯이 드러났고, 그 결과 AI(인공지능)와 2차전지, 반도체 등에 포커스를 빼앗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코로나 호황기 시절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주가가 대폭 상승하자 기업들은 전환사채를 찍어냈다”며 “하지만 거품이 빠지고 보니 이렇다 할 성과나 결과물은 없었다. 결국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빅딜이나 펀드의 경우 자금 조달 난항에 빠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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