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항소심 법원, 양측 망 이용료 감정 기관 선정
“ISP-CP 간의 계약문제” vs “통행료 강요”
‘망 무임승차’ 방지 법안 국회서 표류 중... 발 빼는 정치권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소송전이 이용료 지불 여부에서 이용료 감정과 그 방식으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다. / 조나리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소송전이 이용료 지불 여부에서 이용료 감정과 그 방식으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다. / 조나리 기자

[한스경제=조나리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의 ‘망 이용료’ 법적 공방이 새 국면을 맞았다. 최근 법원은 넷플릭스가 지불해야 할 망 이용료의 산정을 위해 전문 기관을 감정인으로 지정했다. 양 측의 소송전이 이용료 지불 여부에서 이용료 감정과 그 방식으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1심에 이어 항소심도 SK브로드밴드에 유리한 상황으로 보이지만,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법정 밖’ 분위기도 사뭇 달라지고 있다.

◆ ‘지불 여부 → 사용료 감정’ 쟁점 바뀐 소송

서울고법 민사19-1부는 지난 7월 12일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 항소심의 10차 변론기일을 진행하며, 망 이용료 감정 기관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을 선정했다. 앞서 SK브로드밴드 측은 감정 기관으로 ETRI, KISDI, 삼도 회계법인을, 넷플릭스 측은 “감정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우지숙 서울대 교수, 강병민 경희대 교수, 전응준 변호사를 추천했다.

재판부는 개인 감정인이 아닌 국책기관인 ETRI, KISDI에 감정을 맡기는 것이 공정하다고 판단하며 “원피고 양측 감정을 동일한 감정인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기관 감정이 어렵다면 추후 개인 감정인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고 덧붙였다.

양측의 소송전은 2019년 11월,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 이용료 협상을 중재해달라는 재정신청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중재를 거부하며 다음해인 2020년 4월 ‘채무(망 이용료)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 6월 1심 법원은 SK브로드밴드의 손을 들어줬다.

1심 법원은 “넷플릭스가 인터넷 연결과 관련해 유상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으로 간주해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넷플릭스는 항소했고, SK브로드밴드 역시 넷플릭스가 정산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며 망 이용료를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법정 공방은 통신업체인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와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 간의 다툼이나 마찬가지다. 유튜브를 비롯한 CP로 대표되는 넷플릭스는 ‘무정산 방식 망’을 사용하는 만큼, 이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SK브로드밴드는 ‘무정산 방식 망’이란 통신사업자(ISP) 간의 정산 방식이라고 맞서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무정산 방식 망이란 통신사 간에 트래픽 차이가 크지 않으면 쉽게 말해 ‘퉁치자’는 개념”이라며 “초창기에는 망을 깔기도 바쁜데 정산 업무까지 한다는 게 업계에게 큰 부담이었다. 어느 정도 가입자 유치가 끝나고 정산 협의를 할 시점에 ‘비슷한 트래픽을 주고받는 통신업자 간에는 효율성을 위해 정산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글로벌 CP들은 “ISP가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인터넷 가입자에게 요금을 받고 있는 것에 더해 CP들에게까지 ‘통행료’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주장 때문에 ISP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통신업체가 망을 깔면 고객들이 망을 사용하는 것이다. 인터넷 가입자도 사용자고, CP도 사용자다. 실제로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CP는 망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라며 “넷플릭스는 망을 사용함으로써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고 수익도 얻고 있다. 또한 유료 콘텐츠로서 가입자에게 요금을 받고 있는데, 유료 콘텐츠 사업자의 품질 유지는 콘텐츠 사업자에게 있는 것이지 통신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 커지는 글로벌 CP 영향력에 발 빼는 정치권

양측의 소송전이 길어지면서 정치권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사건 초기만 해도 글로벌 CP의 ‘망 무임승차’를 막겠다며 법안을 개정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입법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현재 국회에는 CP들의 망 사용료 지불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7건이나 발의돼 있다. 그러나 최근 “망 이용료 지불은 창작자와 인터넷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글로벌 CP들 반발에 밀려 관련 법안들은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18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이동관 후보자는 CP의 ‘망 이용료’ 부과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향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국빈 방문에서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4년간 K-콘텐츠에 25억 달러(약 3조3000억권) 규모의 투자를 약속받기도 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망 이용료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구글이나 넷플릭스가 빅테크 기업이다 보니, 정치권에서 뭔가를 하기 보다는 당사자 간에 알아서 해결하길 바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한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와 유럽의 통신사업자협회(ETNO)는 글로벌 빅테크의 망 무임승차 방지를 위한 정책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지난 8월 31일 발표했다.

두 협회는 “공공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네트워크의 유지와 진화를 위해 빅테크 기업이 공정하고 비례적인 분담에 나서야 한다”면서 “유럽에서도 빅테크가 대규모 트래픽을 유발하면서도 망 투자는 회피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세계최고 수준의 한국의 인터넷 생태계도 망 무임승차로 붕괴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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