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출생아 수가 1만8000명대까지 떨어졌다는 보도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통계청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5월 출생아는 1만8988명으로 지난해 5월보다 –5.3%(1069명) 줄었다. 4월에 이어 2개월 연속 2만 명 아래다. 출생아 수는 2015년 12월 이후 90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출산율 하락은 일상화된 이슈다. 세계에서 합계 출산율 1미만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것도 5년 연속이다. 2019년 0.91명을 시작으로 2020년 0.84명, 2021년 0.81, 2022년 0.78명으로 하락했다.
올해 추이를 감안하면 2023년 0.78명 이하는 시간문제다. 출산율이 얼마나 심각한지 출생아로 표기하면 실감난다. 1987년 한해 87만 명이 태어났으나 지난해는 25만 명으로 무려 3.5배 급감했다. 정부 차원에서 출산율 정책에 관심을 쏟은 건 2005년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시작이다. 지금까지 대략 280조원을 투입했다. 천문학적인 세금을 투입한 결과는 OECD국가 출산율 꼴찌다. 전쟁도 아닌 평시에 출산율 0.78명은 비정상이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저출산으로 소멸할 최초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미국 워싱턴대 보건역량분석연구소(IHME) 또한 2100년 한국 인구를 지금보다 절반 줄어든 2,678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 경우 국가총생산(GDP) 기준 국력은 20위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원점에서 저출산 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회의적이다. 27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은 이 같은 일환으로 보인다. 정부는 신혼부부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비과세 한도를 1인당 5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늘렸다. 부부합산 3억 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또 자녀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소득 상한 기준도 기존 가구당 4000만원에서 7000만원, 지급액은 자녀 1인당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렸다. 출산과 보육수당 비과세 한도도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확대했다. 이것으로 결혼과 출산율이 오를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올해 발표한 저출산 인식조사 결과 ‘결혼 의향 없음(49%)’과 ‘출산 의향 없음(56.3%)’은 만만치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저출산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이유다. 인쿠르트가 올해 3월 ‘저출산 문제의 근본 원인과 결혼인식’을 조사한 결과 자녀계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경제적 부담(66.3%)’을 꼽은 응답이 1순위였다. 지난해 CNN은 한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높은 부동산 가격과 교육비, 경제 불안을 들었다. 특히 높은 주택가격은 결혼과 출산 의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5년 동안 집값은 80% 올랐다. 평균 주택가격은 소득의 8.9배에 달하는데 일본과 미국, 유럽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건 빈곤을 자처하는 길이다.
경제적 불안감 해소 못지않게 결혼과 출산을 유인할 수 있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 OECD 경제 보고서는 한국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황금 티켓 증후군’을 꼽았다. 경쟁사회를 집약한 용어다. 명문대학과 대기업, 공기업 등 안정된 선택지를 향해 온 나라가 달려드는 현상을 비유한 말이다. ‘황금 티켓 증후군’은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에 영향을 미쳤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결혼이나 출산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저출산 극복은 긴 호흡에서 접근해야 한다. 경제적 불안감을 덜어주는 정책과 함께 사회 분위기 조성은 절실하다.
경쟁교육을 바꾸고 신뢰자산을 늘려야 한다. 영국 레가툼연구소는 구성원 간 신뢰도 평가에서 한국을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로 평가했다.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없는 사회라는 뜻이다. 몇몇 지원책만으로 출산율을 높이는 건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가 출산을 장려하고,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신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프랑스와 독일 출산율은 1.8, 1.5로 우리보다 두 배 높은데 사회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다. 촘촘한 육아정책을 통해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는 스웨덴 사례도 눈여겨봐야 한다. 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부모 육아휴직제에 이어 1990년부터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육아휴직 기간은 총 480일에 달하며 아빠도 3개월간 육아휴직을 반드시 써야 한다. 평일 낮 공원에서 유모차를 끄는 스웨덴 아빠들 모습은 흔하다. 또 카페라떼를 마시며 아이를 돌보는 ‘라떼파파(lattepappa)’라는 신조어까지 있다.
세밀한 육아정책은 입법을 책임진 의원들에게 나온다. 스웨덴 의회에서는 육아휴직 동안 ‘대체 의원’이 휴직 의원의 업무를 대신한다. 정당마다 현역 국회의원이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웠을 경우, 대신하는 대체 의원 리스트가 있다. 21대 국회 임기 중 출산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역대 3번째 현역의원 출산)이 육아휴직은 물론, 출산휴가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것과 비교할 때 대비된다. 스웨덴의 2022년 출산율 1.52명은 이런 결과다. 저출산은 국가 존망과 결부된 현안이다. 피부에 닿는 육아 정책과 함께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yb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