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물” 과학적인 설명보다 일방적 전달에 그쳐
[한스경제=김호진 기자]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방한 일정을 마치고 출국한 지 시간이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로시 사무총장이 일부 매체와 비공개 인터뷰 에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해 ‘오염수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이 국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시켜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북핵이 걱정’이라며 국면을 호도하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IAEA는 지난 4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한 최종 보고서를 일본에 전달한 뒤 반대 여론이 심한 한국을 방문했다. 이는 최종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입국부터 순탄치 않았다. 7일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지만 시위대에 막혀 이동이 쉽지 않았다. 정의당과 진보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입국장 일대에서 ‘IAEA 보고서를 폐기하라’, ‘오염수 해양 방류를 반대한다’ 등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입국한 지 2시간께 지나서야 화물 운반용 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하루 뒤인 8일 오후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과 박진 외교부 장관을 차례로 만났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박 장관과 면담에서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안전성 검증과 국민적 안심을 위한 대화를 진행했다.
외교부는 “’오염수 방류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안전성이 검증돼야 하며, 국제법·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그로시 사무총장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그로시 총장은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국제사회가 우려해야 하는 것은 후쿠시마(오염수 해양 방류)가 아니라 북핵이다”라고 말했다. 오염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는 보충하거나 추가 설명 없이 ‘물(Water)’라고 표현하며 “오염수를 나도 마실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다. 오염수를 안전하게 처리해 방류한다면 수산물 오염도 없다. 후쿠시마 해역 수산물에 대한 점검은 실질적이고 포괄적으로 진행돼 왔다”고 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외교관 출신이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주재 대사, 핵공급그룹(NSG) 의장 등으로 활동한 핵 비확산 분야의 전문가다. 북한으로 건너가 핵 시설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로시 총장은 “(후쿠시마 오염수보다) 그 어떤 검증도 받지 않은 북한의 핵 개발 시설이야말로 국제사회에 매우 큰 위협이다”라며 “한국인들은 북핵이라는 ‘나쁜 현실’에 익숙해져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우리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로시 총장이 언급한 내용이 과학적 설명보다 정치적 플레이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로시 총장은 9일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원전오염수해양투기저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소속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정성 평가에 대한 거센 비판도 받았다.
우원식 민주당 대책위 고문은 "IAEA 입장은 일관되게 오염수 해양 방류 지지였다. 주변국 영향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미리 결론 내린 것은 셀프 검증이자 일본 맞춤형 조사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오염수 수영' 발언에 대해선 "안전하다고 확신하면 물 부족 국가인 일본이 그 물을 국내 음용수로 마시든지 공업·농업 용수로 쓰라고 요구할 의사가 없는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은 오염수를 마실 생각도, 오염수에서 수영할 생각도 없다"고 비판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과학적 진정성은 없고 정치적 오만만 가득한 그야말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우리 국민의 인식 수준을 폄하한 대단히 부적절한 말이다"라며 "북핵 문제가 한반도의 핵심적 과제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안 계신다"고 강조했다.
2박 3일간 일정을 마친 그로시 총장은 입국 때와 마찬가지로 시위대의 거센 반발을 뚫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당초 안정성 검증을 설명하기 위해 왔던 그는 국민 설득은커녕 북핵 걱정이나 하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IAEA가 주장한 '과학적 검증'은 실체 없는 말에 지나지 않게 됐다.
김호진 기자 hoo1006@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