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1, 2차전 패배 이후 배유나 "자존심 한번 지켜보자"
3차전부터 펄펄… 임명옥 "1승 이후 '편하게 하자'는 분위기 덕분에 좋은 경기 펼쳐"
배유나 "새로운 시즌 목표 향해 나아갈 것"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 배유나와 임명옥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KOVO 제공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 배유나와 임명옥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KOVO 제공

[인천=한스경제 강상헌 기자]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는 ‘리버스 스윕’의 기적을 써내며 찬란하게 시즌을 마쳤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주역 배유나(34)와 임명옥(37)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6일 흥국생명을 꺾고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기적’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결과였다. 1, 2차전 패배 이후 3, 4, 5차전을 내리 승리하며 V리그 최초의 리버스 스윕을 일궈냈다. 아울러 2007-2008시즌 GS칼텍스, 2008-2009시즌 흥국생명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을 작성했다.

24일 V리그 남녀부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선 대한항공과 한국도로공사의 우승 합동 축승회가 열렸다. 그랜드하얏트 인천에서 한국도로공사 기적의 주인공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행사에 참석한 배유나는 장내 스크린에서 나오는 챔피언결정전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상을 지긋이 바라보던 그는 “다들 저희가 우승할 거라고 예상 못 하셨죠”라며 운을 뗐다. 다시 영상에 눈을 돌린 그는 “평소에 경기 끝나고 하이라이트 영상을 다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챔피언결정전은 볼 때마다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5차전 5세트 경기를 제일 많이 본 것 같다”고 웃었다.

배유나는 선수들에게 '자존심을 한번 지켜보자'고 이야기했다. /KOVO 제공
배유나는 선수들에게 '자존심을 한번 지켜보자'고 이야기했다. /KOVO 제공

한국도로공사는 원정에서 펼쳐진 1, 2차전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당시 선수단 전체의 몸 상태가 안 좋았다. 감기를 앓고 있던 배유나는 2차전 경기 도중 잠시 코트 밖으로 나왔다. 열을 낮추기 위해 얼음찜질을 했다. 당시를 떠올린 그는 “2차전 때까지만 해도 몸이 아프니까 정신 집중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루아침에 몸이 나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한두 세트라도 일단 이기면 한 경기는 이기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차전을 앞두고 미팅에서 제가 ‘이대로 끝내기에는 우리 자존심이 너무 상하지 않느냐. 자존심을 한번 지켜보자’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자존심을 지키자’는 배유나의 이야기는 한국도로공사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웠다. 24일 축승연 현장에서 본지와 만난 임명옥은 “2차전 끝나고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웠다. ‘경기력이 부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다”며 “3차전을 준비하는데 ‘이게 마지막이겠구나. 그냥 편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배)유나가 한 이야기를 들었다. 딱 뭔가 번쩍했다. ‘우리 이름이 있고, 자존심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는 2패를 안은 채 홈구장 김천체육관으로 입성했다. 감기로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선수들은 온데간데없었다.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이며 펄펄 날았다. 3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1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시를 설명한 임명옥은 “3차전에 몸이 정말 가벼웠다. 사뿐사뿐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시리즈 첫 승을 안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우리 이제 자존심은 지켰다’고 이야기했다”고 떠올렸다.

임명옥은 한국도로공사 기적의 주역이 됐다. /KOVO 제공
임명옥은 한국도로공사 기적의 주역이 됐다. /KOVO 제공

4차전을 앞둔 한국도로공사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긴장감을 털어낸 듯 보였다. 실제로도 선수들은 긴장감을 내려놓고 경기에 임했다. 임명옥은 “다들 한 경기 이겼으니까 ‘편하게 하자’는 분위기였다. 모두 우승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경기가 더 잘 됐다”며 “4차전을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에 (정)대영(42·GS칼텍스) 언니가 저한테 ‘이렇게 된 거 우승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제가 ‘언니 욕심부리지 마. 될 것도 안 된다. 하던 대로 편하게 하자’고 이야기했다”고 웃었다.

5차전은 흥국생명의 홈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우승이 목전까지 다가오자 한국도로공사 선수들의 분위기도 앞선 경기들과 달랐다. 선수들은 우승에 대한 열망과 함께 무거운 긴장감을 안았다. 당시를 떠올린 임명옥은 “분명 즐기자고 했다. 그런데 오롯이 즐길 수가 없었다. 저희가 우승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긴장이 됐다”고 전했다.

배유나도 5차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배유나는 “5차전을 앞두고 저희는 ‘우승하면 좋겠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할 몫은 다했다. 다들 너무 고생했고 잘했다. 이제 재밌게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다 같이 코트에 들어서니 선수들의 눈이 반짝반짝한 것을 봤다. 우승에 대한 열망이 보였다. ‘이거 잘하면 진짜 우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분명히 즐기자고 했는데 서로가 약간 짜증을 냈다. 즐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서로 알았던 것 같다. 마지막에 우승에 대한 욕심이 나다 보니 표정도 안 좋아지고, 웃음기도 사라졌다. 그래서 다들 ‘웃어야지~ 스마일~ 파이팅~’하면서 했다. 그 덕분에 5차전 5세트까지 간 승부 끝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미소 지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기적을 썼다. /KOVO 제공
한국도로공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기적을 썼다. /KOVO 제공

이제 한국도로공사는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새 시즌을 준비한다. 배유나는 다가올 새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이번 우승은 모든 분들이 예상 못 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다음 시즌에도 많은 분들이 저희에게 기대를 안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지만 또 비시즌에 (임)명옥 언니와 함께 다른 선수들을 잘 이끌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 비시즌에 잘 준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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