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종북 논란 앞세워 대응…김문수 위원장은 “김일성주의자” 발언
철 지난 색깔론에 민생의 뒷전,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로
[한스경제=최용재 기자] 국회 국정감사(국감)의 2주차 일정이 마무리됐다. 그동안 국감이 남긴 건 민생은 뒷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이어진 여야의 주도권 정쟁뿐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 책임론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 사법 리스크에 초점을 맞췄고,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논란 등에 공을 들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11일 ‘게임체인저’가 등장했다. 바로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이 대표가 한미일 3국 합동 군사 훈련을 비판하며 “욱일기가 한반도 걸리는 날이 실제 생길 수도 있다”고 언급하자 정 위원장이 이에 반박하기 위해 한마디를 던졌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이 한마디가 국감의 판도를 바꿔버렸다. 후폭풍이 엄청났다. 정 위원장의 ‘식민사관’ 논란은 단숨에 여야 정쟁의 최대 화두로 올라섰다. 윤 대통령, 김 여사 논란도, 전 정권 책임론도 식민사관 논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야당은 이때다 싶어 ‘친일 프레임’을 앞세워 총공세를 펼쳤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 위원장이 전형적인 식민사관을 드러냈다”며 “귀를 의심케 하는 천박한 친일 역사 인식이며, 집권여당 인사의 역대급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완용 같은 친일 앞잡이들이 설파했던 주장들을 여당 대표 입으로 듣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고 성토했고, 이 대표 역시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했던 행태와 다를 바 없다”고 질타했다. 임선숙 민주당 최고의원은 “정 위원장의 조부가 창씨개명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 위원장은 “진의를 호도하고 왜곡하면 안 된다. 제발 역사 공부 좀 해야 한다. 그건 식민사관이 아니고 역사 그 자체”라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했다. 논란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친일론 공격을 당한 여당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반격 시나리오를 들고 나왔다. 바로 ‘종북론’이다. 색깔론을 색깔론으로 반격을 한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하는 것을 보면 역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외신 평가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며 “민주당이 대한민국 정당인지 북한 노동당의 이중대 정당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역시 “반일 감정을 조장해 자유민주주의 국가 연대를 깨뜨리려는 묻지마식 친북 행위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날을 세웠고,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한반도에 인공기는 걸려도 되는 것이냐.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극단적인 친일이 아니라 극단적인 친북”이라고 성토했다.
14일에도 색깔론이 뜨겁게 타올랐다.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당시 핵심 안보라인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왜곡한 것으로 판단하고 관련자들을 검찰로 넘긴 것이 화두였다.
국민의힘은 종북론에 힘을 싣기 위해 맹공을 퍼부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자진 월북이라는 이미 정해진 각본을 위해 결론에 맞지 않은 사실은 분석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고, 해경은 월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실험 결과를 왜곡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 우려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할 감사원이 결국 윤석열 대통령실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헌법을 유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반발했다.
이런 색깔론이 이어지고, 색깔론 충돌이 이슈의 중심으로 들어서자 국감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떨어지는 효과가 났다. 그러자 일부 상임위원회는 시류에 편승하고자 국감장에 색깔론을 끼워 넣었다. 국감 내용과 큰 상관이 없었지만 이슈를 일으킬 수 있다면 못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 11일 정무위원회 독립기념관 국감에서 야당은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에게 “조선이 왜 망했나”라고 물었다. 또 독립기념관에서 일제 침략이라는 용어를 써왔던 자료, 조선이 스스로 멸망한 것에 관련된 자료 등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야당은 박민식 보훈처장에게도 “조선이 일본제국주의와 싸운 적이 없느냐”라고 질문하는 등 색깔론을 앞세웠다.
교육위원회 충남대 국정감사에서는 교내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충남대가 철거를 요구한 것과 관련한 정쟁이 펼쳐졌다. 야당은 “그러니까 정부 여당 위원장의 망언이 나오는 것”이라며 “소녀상 설치와 관련해 정부의 입김이 있었나”라고 질의하기도 했다.
행정안정위원회에서 진행된 서울시 국감에서는 광화문광장 일장기 그림 전시, 일왕·순사 복장 대여 등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야당은 정 위원장의 식민사관 논란을 언급하며 친일공세를 펼쳤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김일성주의자’라고 한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치열한 색깔론 정쟁이 남긴 건 고소‧고발 남발이다. 민주당은 정 위원장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다. 또 국감장에서 막말을 한 권성동 의원에 대해서도 징계를 요청했다. 더불어 ‘김일성주의자’ 발언을 한 김 위원장은 국회 모욕죄, 위증죄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국민의힘도 고발로 맞섰다. 이 대표가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방산업체 주식을 대량 보유한 것을 문제 삼으며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감에서 막말 논란을 일으킨 김교흥, 주철현 민주당 의원을 각각 제소했다.
정치실종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철 지난 이념논쟁에 경제 위기와 민생 불안이 묻히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도 시대착오전인 색깔론 정쟁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는 “양당이 지금 우리나라 역사를 8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으로도 색깔론을 앞세워 여야는 계속 꼬리잡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국감에 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유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게 될 수밖에 없다.
최용재 기자 dragonj@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