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장 인터뷰
조정안 수용해야 기업리스크 줄이고 피해자 일상회복 가능
반도체 백혈병 합의가 좋은 사례...“설득 계속 할 것”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장./사진=김근현 기자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장./사진=김근현 기자

[한스경제=양세훈 기자] “조정안이 좌초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달 안까지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는 통큰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설득하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장(전 헌법재판관)을 만난 건 지난 6일. 조정위 사무실이 위치한 광화문 교보빌딩에서다. 

이날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애경산업(애경)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후 11년 만에 나온 피해 구제 조정안을 받아들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조정안이 무산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안타까웠습니다. 처음에는 10년 이상 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줄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조정위는 지난해 10월 출범했다. 앞서 그해 8월, 이 사건이 알려진 지 만 10년이 됐을 당시 옥시와 SK케미칼 등에서 사적합의로 조정하자는 제안을 해옴에 따라 조정위 구성이 급물살을 탔다. 10년 넘은 난제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출범후 6개월간 피해자측과 기업측 의견 수렴과 자료 분석 등 집중적인 활동이 이어졌다. 여기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활동 보고서도 참고했다.

이렇게 지난달 말 나온 조정안에는 피해자 유족에 2억~4억원, 최중증(초고도) 피해자들은 연령에 따라 최대 5억여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까지 조정 대상자가 7000여 명에 피해자 단체도 30곳에 달한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이 최대 9240억원 수준이다.

“순수하게 피해자 구제지원이라는 입장에서 이번 조정안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업들과 일부 조정이 필요하지만, 이번 안이 무산될 위기에 저희(조정위)도 곤혹스럽지만, 피해자들은 더 큰 충격이지요.”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 등 7개 업체는 조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용불가 입장은 앞서 말한 가습기살균제 판매율이 가장 높아 분담금 역시 가장 높은 옥시와 경영난을 이유로 든 애경이다.  

옥시의 경우 이번 조정안에 필요한 재원 중 절반 이상을, 애경도 수백억원을 분담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옥시는 외국계 기업이라 영국 본사와도 이중 채널을 가동해 협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특히 옥시는 그동안 피해자 400여 명에게 개별 보상과 특별법에 따른 구제기금 등으로 3600억원 가량의 배상금을 지급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조정안 분담금 가운데 절반 이상(57%)을 차지하는 옥시는 절반 수준(27%)만 분담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입장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옥시 요구대로라면 분담금이 너무 적어집니다. 자기 몫은 반드시 분담해야겠으나, 관련 기업들이 사회적 연대책임과 비슷하게 가야 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문제지요.”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장이 강창현 국장과 대담 중이다./김근현 기자
김이수 가습기살균제 조정위원장이 강창현 국장과 대담 중이다./김근현 기자

또 다른 쟁점은 종국성이다. 이번 조정안을 끝으로 더는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자는 것으로, 이는 기업과 피해자측이 모두 요구하는 사항이라고 한다. 향후 진행 중인 민사소송을 다 취하하고 소(訴) 제기 또한 못하도록 담보하는 것은 물론 조정안 이후의 추가금 역시 걷지 말아 달라는 요구다.  

“기업측은 남아있는 민사문제를 해결하고 또 경영 리스크에서 벗어나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지요. 피해자들도 일상생활로 돌아가려면 이번에 끝을 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정부도 이 부분에 있어서 역할이 필요합니다.” 즉 이번 조정안이 받아들여지고 해결된 이후, 새롭게 신청하는 피해자는 정부가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정위의 시선은 지금 ‘반도체 백혈병’ 사태로 향한다.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등 질병에 걸린 피해자들에게 기업이 2018년에 공식 사과와 함께 보상절차를 시작한 것으로 당시에도 무려 11년 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반도체 사태도 처음에는 조정에 실패했으나 다시 중재형태로 결국은 성공했지요. 가습기 사건도 이번 조정위가 만든 안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형태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초석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제 남은 건 설득과 결단이다. 김 위원장의 마지막 당부가 어쩌면 이번 사태의 핵심이자 해결 방안의 실타래가 될 전망이다.

“이 문제가 법적인 책임을 따져서 하는 게 아닌 사적 조정이다보니 기업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조정위도 딱히 해결방안이 없습니다. 이 사태의 대부분 기업들이 사회적책임이행과 ESG경영 차원에서 동의한 만큼 옥시와 애경도 이런 관점에서 매듭을 풀었으면 합니다.”

조정위는 오늘(11일) 공개 간담회를 열고 그간의 경과와 함께 향후 계획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재판관 시절 ‘미스터 소수의견’으로 불렸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등 굵직한 사건에 참여했다.
<대담 : 강창현 편집국장/ 정리 : 양세훈 기자>

양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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