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총수일가 지분 20% 아래로…일감몰아주기 규제 벗어나
실탄 6000억 확보…정 회장 지배력 강화 나설 가능성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한스경제=김정우 기자]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화출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시각과 내부거래 규제 회피를 위한 방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5일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을 통해 각각 251만7701주(6.71%), 123만2299주(3.29%)의 지분을 칼라일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주당 매각가는 16만3000원으로 이번 딜을 통해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은 각각 4000억원, 2000억원대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됐다. 

현대차그룹 측이 내세운 이번 지분 매각 이유는 ‘주주가치 제고’다. 글로벌 사모펀드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대량 확보함으로써 주주가치를 높이고 시장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다소 다른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율을 줄임으로써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이번 블록딜로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 전량을 처분하고 정의선 회장 지분만 일부 남아 정 회장 부자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총합은 19.99% 수준으로 내려갔다. 

지난해 12월 30일 시행된 새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인 상장·비상장 회사와 이들이 지분을 50% 넘게 보유한 자회사다. 정 회장 지분이 20% 밑으로 떨어짐에 따라 현대글로비스와 자회사 지마린서비스는 규제 범위에서 벗어나게 됐다. 현대글로비스는 2020년 기준 총 매출액 중 국내외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 비중이 69.7%에 달할 정도로 내부거래 비중이 크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대주주 지분매각으로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잠재적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됐고 소액주주들이 우려했던 대주주 지분매각 관련 오버행(출회될 수 있는 과잉물량) 이슈를 완전히 해소시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정의선 회장은 지분을 매입한 칼라일그룹에 주식 동반 매각을 청구할 권리를 확보하는 등 경영권에 대한 위협도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현대차에 대한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계열사간 순환출자 고리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차는 현대모비스가 21.43%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있고 정몽구 명예회장이 5.44%, 정의선 회장은 2.62% 지분을 갖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기아가 17.33%, 정 명예회장이 7.13%, 정 회장이 0.32%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으며 기아는 다시 현대차와 정 회장이 각각 33.88%, 1.74% 지분을 들고 있는 구조다.

정 회장 부자는 이번 지분 매각으로 6000억원 이상의 현금을 손에 쥐었고 다음달 이뤄질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를 통해 최대 5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증권신고서에서 정 회장이 보유한 534만1962주와 정 명예회장의 142만주 처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예상 공모가격은 주당 최대 7만5700원이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정의선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을 추가 매입하거나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을 승계하는 등 방법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는 과제로 남아있는 순환출자 구조 단순화를 통한 지배구조 정리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를 빠르게 해소에 나서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순환출자 구조 해소에 대한 정부와 해외 투자자의 압박이 거셌지만 최근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 여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미 존재하는 순환출자는 규제 대상이 아니고 2018년과 달리 정부와 정치권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 요구도 강하지 않다”며 “산업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보다 미래 기술 투자에 자원이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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