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e스포츠 종주국 한국…인터넷‧PC 보급과 ‘스타크래프트’ 등장으로 토대 마련
임요한, 홍진호 등 스타 배출하며 인기 이어가…승부 조작 등 위기 맞아 폐지
e스포츠의 시작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 사진=OGN

[한스경제=김재훈 기자]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e스포츠는 MZ세대(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는 물론 다양한 연령층의 관심을 받는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e스포츠는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시범종목을 시작으로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정식 종목으로 지정됐다.

한국은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e스포츠는 90년대 후반부터 PC방 중심으로 개최되던 중소규모 대회가 플레이어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성장했다. 이후 본격적인 팀 단위의 리그 개념이 도입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세기말 새로운 문화 PC방과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으로 시작된 e스포츠

e스포츠는 PC 및 네트워크, 기타 영상 장비 등을 이용해 게임을 통해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지적 능력 및 신체적 능력이 필요한 경기이다. 한국에서 시작된 e스포츠는 약 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스포츠의 탄생은 90년대 말 한국에 급속도로 보급된 인터넷과 PC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존 당구장 등에서 모임을 하던 젊은이들의 발걸음은 PC방으로 향했고 게임은 그들의 새로운 문화가 됐다.

그러던 중 1998년 ‘스타크래프트:오리지널’의 등장은 e스포츠 탄생의 큰 밑거름이 됐다. 전국적으로 증가하던 PC방을 중심으로 대회가 시작됐고 케이블 방송에서 시합을 중계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

e스포츠가 점차 성장하자 SK텔레콤, 팬택, KTF(현 KT), 삼성전자, STX 등 대기업들도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e스포츠 대회 후원은 물론 프로게임단 스폰서십 및 창단을 통해 본격적인 프로리그 출범에 나섰다. 

스타플레이어 중심의 개인 대회 위주였던 e스포츠가 대기업 후원을 받으면서 팀대팀 형식의 리그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고 2001년 한국 e스포츠 협회 설립 이후 2003년 모든 대회를 통합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프로리그)’가 탄생했다.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으면 탄탄한 성장을 이룬 프로리그는 2:2 팀플레이, 에이스 결정전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프로리그가 가장 큰 인기를 끌었을 당시 리그에서 활동하는 팀은 12개에 달한 적도 있었다.

프로리그의 인기가 증가하면서 연봉이나 연습 환경과 같은 선수들의 처우 역시 개선되기 시작했다. 또한 선수와 팀을 이끄는 감독 외에도 코치 사무국, 운영팀 등 관련 직종도 늘어나면서 전통 프로 스포츠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e스포츠 명예의 전당 개관식. /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임요환, 홍진호 등 스타 선수 등장…광안리 10만 관중 기록 등 최전성기

프로리그는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하며 최전성기를 이어갔다. 선수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끌며 프로리그는 물론 e스포츠가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로리그 초창기 인기를 견인했던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임요환과 홍진호가 있다.

스타크래프트 종족 중 ‘테란’을 다뤘던 임요환과 ‘저그’를 다룬 홍진호는 종족뿐만 아니라 SKT와 KTF 등 소속팀까지 대척점에 서며 라이벌 관계를 이어갔다. 두 선수의 경기는 ‘통신사 더비’, ‘임진록’ 등으로 불리며 경기마다 큰 관심을 모았다.

‘테란의 황제’, ‘e스포츠 선구자’라 불리는 임요환은 그동안 비주류로 평가받은 테란으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준수한 외모와 게임 실력까지 갖춘 그는 남자 팬들뿐만 아니라 여자 팬들도 e스포츠 경기장으로 불러들였다.

임요환의 기발한 전략과 뛰어난 유닛 컨트롤은 당시 프로선수 중에서도 독보적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전략이 가장 두드러지진 경기는 현재까지도 ‘3연벙’이라 불리는 ‘에버 스타리그 2004’ 4강전이다.

당시 임요환은 라이벌 홍진호와의 대결에서 3대0으로 완승을 거뒀는데, 충격적인 건 경기 결과보다 임요환이 보여준 전략에 있었다. 임요환은 내내 경기 초반 소수의 마린과 SCV를 활용해 벙커를 짓고 빠르게 승부수를 거는 '벙커링'으로 홍진호를 제압했다. 초반 벙커링 전략에 홍진호는 3경기 내내 대처하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3세트까지 경기 시간이 ‘22분 42초’밖에 걸리지 않아 지금까지도 프로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경기로 남아있다. e스포츠 관계자는 “당시 게임이 너무 빨리 끝나 당황스러웠다”며 “팬들 사이에서도 ‘치킨 배달보다 빨리 끝난 경기’, ‘광고 시간이 더 길었다’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쏟아진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윤열, 강민, 박정석, 서지훈 등 1세대 프로리그 선수들도 큰 인기를 끌며 팬들에게 큰 재미를 줬다. 이후 ‘택뱅리쌍’으로 불리는 김택용, 송병구, 이영호, 이제동을 중심으로 2세대 선수들도 큰 인기를 끌며 프로리그는 최전성기를 달렸다.

프로리그의 최전성기의 인기를 보여주는 가장 큰 사건은 ‘광안리 대첩’이다. 2004년 ‘SKY 프로리그 결승전’은 최초로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진행됐다. 주최 측은 지방에서 경기를 진행하면 관중 동원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결승전이 진행된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 약 10만 명의 관중이 몰리며 큰 성공을 이뤘다. 같은 날 부산사직구장에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관중 1만5000명을 훨씬 압도하면서 e스포츠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날 이후 부산의 광안리는 e스포츠의 성지로 자리 잡았으며 중요한 경기나 결승전은 광안리에서 진행됐다. 훗날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런칭 이벤트를 광안리에서 진행하며 e스포츠의 성지로 인정하기도 했다.

e스포츠 관계자는 “솔직히 우려가 가장 컸던 경기다. 팬들의 관심이 그 정도일 줄 몰랐다”며“광안리 대첩으로 e스포츠가 더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e스포츠 역사에 남을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프로리그 마지막 우승 팀 '진에어' / 사진=한국e스포츠협회

최악의 승부 조작과 IP 분쟁으로 존폐 위기…2016년 마지막 결승 후 역사 속으로

최고 인기를 이어가던 프로리그는 2010년 ‘승부 조작’이라는 큰 위기를 맞이한다. 프로리그의 간판선수였던 ‘마재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하면서 팬들은 물론 e스포츠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사회 전반으로까지 문제가 알려지며 프로리그는 물론 e스포츠 시장까지 존폐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한국e스포츠협회와 블리자드 간 프로리그 지적재산권(IP) 분쟁이 거세지고, 후원사였던 신한은행이 철수에 나서며 대내외적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다. 2011년 SK플래닛이 후원에 나서며 우여곡절 끝에 리그를 개최했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2011년 OGN과 함께 프로리그 중계를 담당한 MBC게임이 폐지됐고, 2013년에는 ‘STX 소울’과 ‘웅진 스타즈’와 같이 대기업이 후원하던 팀이 해체했다. 팀 해체와 후원사 철수는 계속해서 발생했고 2014년에는 프로리그를 만들었던 OGN마저 프로리그를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 또다시 승부 조작 사건이 발생하며 프로리그는 폐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비 협회팀 ‘프라임’을 이끌던 박외식 전 감독이 승부 조작으로 구속되고 국내 리그에서 얼마 남지 않은 간판선수 이승현마저 승부 조작으로 실형을 받았다.

결국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프로리그는 2016년 ‘진에어’와 ‘KT 롤스터’의 결승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승전에서 진에어는 KT 롤스터를 4대0으로 승리하며 창단 첫 통합 우승과 마지막 프로리그 우승자로 남게 됐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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