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원 베팅, 인텔 품은 엔비디아의 전략적 동맹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엔비디아와 인텔이 ‘깜짝 동맹’을 발표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 19일 엔비디아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7조 원)를 투자하고 차세대 PC·데이터센터용 반도체 공동 개발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협력에는 AI용 GPU와 CPU의 융합, 인텔 파운드리 활용 방안까지 포함돼 있어 업계 전반에 ‘지각변동’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의 절대 강자로 떠올라 있지만 CPU 분야에서는 인텔과 AMD에 의존해온 구조였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AI GPU + 범용 CPU 통합 솔루션’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인텔의 서버 및 PC용 CPU 기술과 생산 능력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인텔로서도 파운드리 전환을 가속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절호의 기회다. 파운드리 수주에서 삼성전자와 TSMC에 밀려온 인텔이 엔비디아라는 초대형 고객까지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번 협력은 파운드리 산업뿐 아니라 시스템 및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인텔 CPU의 매우 큰 고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단순 협력을 넘어선 긴밀한 파트너십을 알렸다.
양사의 전략적 협력이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미칠 직·간접적 영향 또한 주목되고 있다.
◆ 한국 기업에 파운드리 경쟁 압박...메모리 경쟁력도 '흔들'
중장기적 측면에서 엔비디아와 인텔의 협력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득과 실을 동시에 안긴다. 먼저 가장 큰 실은 파운드리 경쟁 압박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TSMC와 글로벌 파운드리 양강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인텔이 엔비디아라는 초대형 고객을 품으면서 파운드리 경쟁 구도가 ‘삼파전’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엔비디아가 차세대 GPU 일부 물량을 인텔에 맡기면 삼성전자가 확보할 수 있는 첨단 공정 수요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메모리 중심 경쟁력에도 흔들림이 예상된다. 엔비디아는 HBM3·HBM3E 등 고대역폭 메모리를 주력 제품군에 활용하고 있으며 현재 대부분은 SK하이닉스가 공급 중이다. 그러나 인텔이 자체 메모리·패키징 기술을 앞세워 공동 설계에 개입할 경우 엔비디아의 구매 전략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인텔이 패키징에서 강점을 확보하게 된다면 HBM 공급이 단순 납품에서 벗어나 인텔 주도의 ‘통합 플랫폼’ 속 일부로 한정될 우려도 제기된다.
◆ 메모리 수요 확대는 ‘기회 요인’ 작용...물량 확대 가능성
위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 수요 확대라는 기회 역시 도래할 수 있다. 엔비디아와 인텔이 공동 개발하는 AI·데이터센터용 플랫폼은 고속 HBM, DDR6, 고용량 SSD 등 메모리 사용량 증가를 전제로 한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메모리 공급에서 장기적 물량 확대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인텔이 파운드리 고객으로 엔비디아를 확보하더라도 전 세계 차세대 AI GPU 생산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경우 삼성전자 역시 ‘세컨드 벤더’로서 일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공급망 안정성을 중시해 TSMC·삼성·SK하이닉스 등 다수의 협력사를 동시에 운용해왔다. 인텔이 그 대열에 합류한다고 해서 한국 기업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엔비디아·인텔 협력이 단순한 양사 전략을 넘어 AI 시대의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사업 확대와 AI 상용화 속도 가속을 고려하면 이러한 동맹은 점차 확대될 공산이 크다.
엔비디아와 인텔의 협력은 AI, 데이터센터, PC 반도체 전 영역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 성격을 가진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파운드리와 시스템 경쟁에서 불리한 국면에 놓일 수 있지만 동시에 메모리 수요 확대라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기술 초격차 유지와 공급망 다변화 역량이다.
한국 기업이 취해야 할 대응 전략은 명확하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미세공정 및 신뢰성 강화로 인텔·TSMC와의 ‘삼자 게임’에 대응해야 하고, 차세대 후공정 패키징에서 차별화 성과를 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 강자로 자리잡은 만큼 엔비디아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인텔의 패키징·메모리 기술과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의 반도체 전쟁은 이제 ‘엔비디아-인텔 대 삼성-TSMC-하이닉스’라는 새로운 구도로 진입하고 있다”며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가장 큰 위기이자 동시에 또 한 번 초격차를 입증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예인 기자 yi411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