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방위 파트너십 체결 한국 공동구매 참여 원칙적 가능
양자협정 체결 요건 복잡…현지 공장 없이 참여 불가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한국이 1500억유로(약 245조원) 규모의 유럽연합(EU)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시장을 겨냥해 현지 공장 설립 등 ‘현지화 전략’을 내세운 국내 주요 방위산업 업체에는 분명 호재지만 K-방산 전체가 얻을 수 있는 수혜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16일 EU·정부 당국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최근 EU 집행위원회에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 '세이프'(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참여를 희망한다는 공식 의향서(formal request)를 제출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9일 무기 공동구매 대출제도인 세이프(SAFE) 예산 1500억유로의 회원국별 배분 계획을 발표했다. EU 회원국 중 한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인 폴란드가 437억3400만유로(약 71조원)로 가장 많은 대출금을 지원받게 된다.
이어 루마니아가 166억8000만유로(약 27조원), 프랑스와 헝가리가 162억1600만유로(약 26조원)씩 각각 지원을 받으며 그 뒤를 이었다. EU 집행위는 각국의 신청 금액을 기준으로 집행(지원) 금액을 나눴고 11월 각국이 제출하는 세부 계획을 토대로 최종 지원액을 확정한 뒤 내년 초부터 대출을 집행할 예정이다.
세이프는 지난 3월 집행위가 내놓은 국방비 자금조달 정책인 일명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공동구매를 추진하는 회원국에 EU 예산을 담보로 대출금을 저리로 제공하고 최장 45년 이내에 갚도록 했다.
이와 함께 상환 유예 기간 10년을 부여했다. 이 제도는 EU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 유럽자유무역연합체(EFTA) 국가에도 동일한 참여 자격을 줌으로써 우크라이나 방위산업을 우회 지원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세이프 규정에 따르면 일본, 영국, 캐나다 등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국가도 원칙적으로는 무기 공동구매에 참여할 수 있다. 한국도 지난해 11월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EU 우주·방위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우리가 마련한 방위 (지원)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개방적인 제도"라고 말했다.
세이프는 원칙적으로 대출금으로 구매하는 무기의 제3국산 부품 비율이 35%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단 예외 규정이 있다. 한국처럼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맺었거나 EU 가입 후보국인 제3국의 경우 집행위와 별도로 양자 협정을 체결하면 35%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EU 회원국들의 공동구매 시 한국 방산업체의 수혜 가능성이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정부가 참여 의향서를 낸 것도 이런 배경으로 풀이된다. 집행위는 한국의 의향서를 검토한 뒤 한국과 양자 협정 협상 개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다만 양자 협정 체결 요건이 다소 까다로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등 제3국 방산업체 중에서도 유럽 내에 생산시설을 둔 경우로 제한되며 참여하는 국가의 재정 기여 등 조건이 붙는다.
아울러 제3국이 참여하려면 EU 및 유럽경제지역(EEA), EFTA 권역 국가 혹은 우크라이나 중 최소 2개 국가와 함께 '공동구매 팀'을 반드시 구성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조건 등을 모두 고려할 때 한국과 이미 대규모 방산 계약을 체결했고 EU 세이프 대출금을 신청한 후 1, 2위의 높은 지원금을 받게 될 폴란드, 루마니아 등과의 협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3국 중 한국보다 먼저 참여 의향을 밝힌 나라는 영국, 캐나다인 것으로 알려졌다. EU 집행위는 조만간 영국, 캐나다와도 양자 협정 협상을 개시할 예정이다.
국내 방산기업들은 이러한 EU의 방침을 지속적이고도 면밀하게 모니터링한다는 입장이다.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에 공장 설립을 추진한 방산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수익 확보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달 폴란드 WB그룹과 합작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폴란드형 천무인 '호마르-K'에 탑재되는 사거리 80㎞급 유도탄(CGR-080)을 생산할 예정이다. 현대로템도 올해 폴란드와의 2차 계약 물량은 180대로 정한 바 있다. 이 중 일부는 현대로템의 기술이전을 받은 폴란드 국영방산기업 PGZ가 주도해 현지에서 K2PL 버전으로 생산할 계획이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이들 두 회사가 현지 공장을 보유하게 되지만 아직 완공 시점은 남아 있고 공장이 있어도 협력업체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수익을 올리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EU 회원국별 세이프 예산의 유동성도 크기 때문에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도 "이번 세이프 예산이 단기적인지, 장기적인 계획인지도 파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U 역내에 공장이 없는 다른 방산기업들은 유럽 무기 시장의 진입 문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EU가 국방 지출의 65%를 유럽산 부품 사용으로 충당한다는 기조를 수정하지 않는 한 이들 방산기업이 직접 계약을 따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한 방산 전문가는 ”유럽 최대 방산기업인 독일의 라인메탈이 최근 기존 지상군 장비 위주에서 벗어나 해양·항공·우주 분야까지 포트폴리오 확장·강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비록 현재 유럽의 방산이 과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지만 산업의 기초 체력과 저력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EU의 세이프 기금 지원 대상을 부품 65% 이상을 회원국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한정하는 등 '바이 유러피언' 기조가 강해지고 있고 현지 방산기업도 역량 강화를 선언한 만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국내 방산기업은 가격, 납기 등 기존의 경쟁 우위요소에 더해 기술 고도화 등을 병행하는 보다 진일보한 현지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