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호먼 "불법 입국하거나 불법 체류자 고용은 범죄"
美 대형 투자 잇달아…추가 리스크 관리 전략 긴요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 단속 강화 기조를 다시금 전면에 내세우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는 봉합 단계로 접어들면 마무리 됐지만 향후 과제를 두고 정부와 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등 미래 산업 핵심 생산기지를 미국 현지에 건설 중인 삼성과 SK 같은 대규모 제조 기업은 불법고용 단속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용 부담은 물론, 공사 지연에 따른 기회 손실이 현실화할 경우 막대한 투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 “이제 시작일 뿐”…대규모 단속 경고장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차르' 톰 호먼 안보 총괄 책임자는 최근 조지아주의 한국 기업 건설 현장에 대한 대규모 압수수색 및 체포와 같은 단속을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호먼은 7일(현지시간)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이민 단속 문제와 관련해 "간단히 대답하자면 그렇다(The short answer is yes)"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노동 현장에 대한 단속 활동을 늘릴 것"이라며 "이 나라에 불법으로 입국하는 것은 범죄이고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도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불법체류자를 저임금으로 고용하는 행위는 부당한 비용 절감 방식이며, 이는 건전한 경쟁을 해친다”며 단속 의지를 강조했다.
기업들이 낮은 금액으로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게 되면 미국 시민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도 낮춘다는 주장이다. 호먼이 '직장 단속'에 단호한 목소리를 내자 일각에서는 향후 유사한 사례가 더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불법 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추방 건수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추방 건수는 하루 1500명 이상으로 지금까지 30만명 이상의 불법 체류자를 쫓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뉴욕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태로 인해 한·미 관계가 긴장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지금 이 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인력이 없다면, 우리가 그들을 도와 일부 인력을 (미국에) 불러들여 우리 인력이 배터리 제조든 컴퓨터 제조든 선박 건조이든 복잡한 작업을 하도록 훈련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단속 이후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국경 단속 프레임이 특정 기업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고 강력히 작동할 것이라는 신호”라며 “외국계 대규모 투자 기업에 ‘준법 경영’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미측과 협상한 끝에 전세기를 이용해 현재 구금시설에 있는 한국인 근로자를 귀국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 리스크에 노출된 삼성·SK…트럼프의 ‘숨은 비용’ 찾기 전략
현재 미국 전역에는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굵직한 대형 제조시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며 삼성SDI는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에 대응해 합작 형태의 배터리 생산라인을 추진하고 있다. SK온 역시 포드와 손잡고 조지아주와 켄터키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들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수천명 규모의 현장 근로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지 노동시장이 이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합법적 노동력만으로 파견·고용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조건은 자연스럽게 이민 신분 검증, 고용 서류 확인 강화 등 ‘보이지 않는 관리 비용’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한번의 불법고용 적발은 곧바로 프로젝트 전체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금융 조달 비용 상승과 함께 납품 지연에 따른 기회 손실로 연결돼 피해액이 수천억 원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안은 외교 현안으로까지 비화할 조짐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오후 곧바로 워싱턴DC로 출국해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접촉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단속이 한국 기업만을 겨냥한 것이라는 오해가 불거지지 않도록 적극 소통할 방침”이라며 “동시에 우리 기업들의 합법적 투자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적 협력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발성이 아닌 장기적 국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국경·이민정책 기조가 이어진다면 한국 기업뿐 아니라 대규모 외국인 투자 기업 전반이 동일한 리스크에 노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의 제조업 리쇼어링 정책과 맞물려 대규모 현지 투자를 추진하는 해외 기업들에게 이민 단속은 새로운 ‘투자 비용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 SK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현지에서 미래 사업 육성을 위한 설비를 짓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에 던진 메시지는 “‘합법적 고용’이라는 잣대 앞에서 예외는 없으며 이를 준수하는 비용은 오롯이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추가 리스크를 관리하고 새로운 국면에 대응하는 전략을 내놓지 못한다면 ‘K-기업’의 미국행은 지금보다 더 큰 먹구름에 가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성 자체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불법 고용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비용투자도 필수로 염두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사실상 보이지 않는 ‘이민 규제 세금’이 발생한 셈”이라고 말했다.
고예인 기자 yi411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