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2019년 밀양역 사고 이후 열차 선상 상례작업 중단"
정부, 중대재해처벌법·특별감독 착수…안전 체계 전면 점검
|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이후 기업 현장에는 구조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안전관리는 단순한 규정 준수가 아니라 기업 생존과 직결된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기획에서는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추진 중인 리스크 관리 체계, 스마트 안전시스템 도입 사례, 내부 조직문화 변화 등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개선 시도와 그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산재 사망 근절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 산업 현장의 실태와 변화과정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편집자주] |
| 한스경제=박정현 기자 |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또 다시 인명사고가 발생해 산업안전에 여전히 구멍이 나 있음이 드러났다. 이번 사고는 코레일의 안전불감증과 상례작업이 주 원인으로 지적된다.
19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 경부선 남성현∼청도 구간에서 안전점검을 위해 이동하던 작업자 7명이 무궁화호 열차(제1903호)와 충돌해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폭우로 인한 비탈면 구조물을 확인하기 위해 선로 주변을 걷던 작업자들이 뒤에서 다가온 무궁화호의 접근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참사가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는 열차 운행을 멈추지 않고 진행하는 ‘상례작업’ 중 발생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작업 구간은 위험지역 2m 바깥의 상례작업 구역으로 열차 차단 없이 진행이 가능했고 작업자들이 법정 구역을 벗어나지 않아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관제와의 조율 과정에 대해서는 “선로 옆 노반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남성현역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코레일 측의 설명에 철도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노조 측은 “지난 2019년 밀양역 사고 이후 열차 선상 상례작업은 중단됐지만 선로변 작업은 여전히 열차 차단 없이 진행돼왔다”며 노동자 참여 기반의 안전 체계 마련을 촉구했다.
최근 1년 새 코레일에서만 유사 사고는 세 차례 발생했다. 지난해 8월 구로역에서는 직원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으며 올해 2월 강원 삼척 동해선 근덕역에서는 협력업체 직원 1명이 모터카에 끼여 사망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0~2024년 전체 공공기관 산업재해 사망자는 155명으로 이 가운데 코레일에서만 10명이 숨졌다. 이 중 청도 사고와 구로역 사고는 모두 상례작업 문제에서 비롯됐다.
곽상록 한국교통대 철도운전시스템학과 교수는 “청도 사고는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과거부터 되풀이된 익숙한 유형”이라며 “열차가 작업자를 발견하고 제동을 걸더라도 일반 열차는 6~700m, 고속열차는 3km 이상 달려야 멈출 수 있어 작업자가 선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생명이 위태롭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은 제도적으로 안전성을 담보하고 있다. 일본 JR은 선로 점검 시 열차 차단을 원칙으로 하며 영국은 1990년대 잇따른 사고 이후 야간이나 운행 중단 시간에만 점검을 허용한다. 위반 시 운영사와 하청업체 모두 거액의 벌금을 부과받는다. 독일 역시 사전에 차단된 구간에서 점검을 진행하고 긴급 상황에서는 디지털 관제 시스템을 통해 작업자 위치와 열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상례작업을 허용한다. SR 역시 고속열차 운행에서 코레일 관제 명령을 따르며 선로 유지보수 역시 코레일에 위탁하는 구조다. 해외에서는 점검 시 열차 운행을 중단하거나 버스를 투입해 승객을 우회 수송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국내는 철도 수요가 높고 운행 시간이 길며 국토가 좁아 우회 선로 확보가 쉽지 않아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작업자 투입이 계속되며 위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코레일의 ‘시설유지보수 선진화를 위한 개선방안’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국토 면적은 10만㎢에 불과하지만 선로 길이는 3399㎞에 그친다. 일본(2만50㎞), 독일(3만3897㎞), 프랑스(2만9488㎞) 등 주요국에 비해 현저히 짧아 사고나 점검 시 우회 선로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간 여객 수송 규모는 9억명에 달해 선로당 수송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Km당 직원 수도 9.9명으로 해외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곽상록 교수는 “선로나 선로 주변 작업시 첫차와 막차 시간을 조정해 점검 시간을 확보하는 등 제도적 해법이 시급하다”며 “처벌 강화나 대책 마련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여객 수요와 정시율을 모두 유지하면서 상례작업을 없애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한쪽의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코레일은 상례작업 전면 금지를 포함한 대책을 검토 중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자체 조사 후 상례작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포함, 다각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복적 산업재해를 막으려면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포함한 수사에 착수했다. 특별근로감독도 병행한다. 국토교통부 역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합동조사단을 꾸려 국가 철도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정현 기자 awldp219@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