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트럼프의 '반도체 자국주의' 파고 높아...공급망 다변화 필요
‘전략산업=국가자산’ 트럼프식 논리의 귀환...중국 견제 수단
소프트뱅크그룹, 인텔에 20억달러 투자...국내 기업 악영향
인텔 로고./연합뉴스
인텔 로고./연합뉴스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향 반도체 수출을 조건부 허용하면서 엔비디아와 AMD 매출의 15%를 정부가 회수하는 ‘수익 공유형 수출’을 추진한데 이어 인텔의 지분 10%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자국 반도체 산업의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하면서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 전반으로 정부의 개입이 확산된다는 분석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수입 반도체 업체의 관세 면제를 위해서 미국 내 공장을 건설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인텔 지분 인수에도 직접 나서면서 노골적인 자국 반도체 기업 챙기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단순한 기업 지원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산업을 ‘안보 자산’으로 규정했던 트럼프 특유의 자국주의 정책이 힘을 얻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이미 수백억달러 규모로 미국 현지에 투자 결정을 내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에게 큰 불확실성으로 작용용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내 공장 건설과 고용 창출을 통해 우호적 대우를 기대했던 한국 반도체 기업 입장에선 정치적 변수에 의해 글로벌 경쟁 구도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인텔에 지분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과 백악관에서 면담을 가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면담 이후 미국 정부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인텔을 지원하기 위해 인텔의 지분을 10% 취득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소식통은 연방 정부가 반도체법에 따라 인텔에 제공된 보조금의 일부나 전부를 지분 투자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실행되면 미 정부는 인텔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지분 규모나 행정부가 실제로 계획을 추진할지 여부는 아직 유동적이라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그간 미국 정부의 인텔 지원 가능성에 대해선 종종 언급됐지만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기금 활용 등 구체적인 방안이 거론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 美 정치적 변수에 삼성·SK의 미국 투자 ‘흔들’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이미 미국의 압박과 요청에 따라 대규모 현지 투자를 단행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시에 170억달러 규모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결정했고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패키징 및 R&D 센터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이러한 투자는 미국 정부와의 신뢰 구축, 그리고 보조금·세제 혜택 확보를 동시에 고려한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식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된다면 한국 기업들은 정책적 ‘우호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인 인텔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정책을 감내해야 하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수십억 달러 투자에도 불구하고도 시장 점유율·정책 환경에서 역차별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중 패권 경쟁 속 반도체는 군사·경제 패권을 가르는 핵심 자산이다. 트럼프의 인텔 인수 검토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도 풀이된다. “최첨단 반도체 기술은 절대 중국의 손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트럼프식 강경론이 더욱 강화될 경우 한국 기업들은 미·중 틈새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다.

업계에선 한국 반도체 업계가 미·중 패권 프레임에 완전히 예속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현지 투자로 신뢰를 쌓되 지나치게 미국 정책 변화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다.

트럼프의 인텔 구원 드라이브는 단순한 기업 차원의 문제를 넘어 ‘보호주의의 귀환’이라는 국제통상 질서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글로벌 공급망 협력이라는 명분 아래 수십조 원을 쏟아부은 한국 반도체 업계 입장에선 ‘믿었던 동맹국이 최대 변수’로 돌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한국 기업들이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기술 경쟁력과 시장 다변화를 통해 생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트럼프발 반도체 보호주의가 한국 반도체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시장뿐 아니라 유럽·동남아 등 다양하게 공급망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정치 불확실성이 심화될수록 ‘이중 안전판’을 마련하는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한편 이날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인텔에 20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인텔은 신주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소프트뱅크는 주당 23달러에 매입해 지분 2%를 확보했다. 이는 직전 종가(23.66달러)보다 소폭 낮은 수준이다. 

손 회장은 "이번 전략적 투자로 인텔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선진 반도체 제조와 공급이 미국 내에서 더 발전해 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첨단기술과 혁신 분야를 선도해 온 소프트뱅크그룹과 관계를 더욱 강화하게 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경영난에 빠진 인텔이 대규모 투자를 발판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면서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에 악재가 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고예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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