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 기술 협력...수출 시장·신사업 확대 ‘마중물’
中 국방비 증가율 연평균 7%...AI·로봇 무기체계 급성장
“K-방산 고유 AI 플랫폼 구축·민군 기술협력 강화해야”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국내 4대 방산기업의 2분기 영업이익 합계가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K-방산이 해외 선진 기업들과 손을 맞잡고 미래 전장의 핵심인 인공지능(AI) 기반 무기체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중심의 방산·AI(민수 분야) 기업과의 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유·무인 복합체계 개발과 AI 기반 방공망 구축을 추진하는 등 수출 시장과 신사업 확대의 포석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K-방산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중국 방산업계와의 경쟁을 고려하더라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이 향후 글로벌 방위산업 4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함은 물론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라도 무기체계의 고도화는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주요 방산기업들 사이에서 유·무인 복합체계 개발과 AI 기반 방공망 구축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럽과 중동지역의 전쟁을 통해 AI 탑재 드론·무기 등 첨단 무기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촘촘한 방공망이 초반 승기를 좌우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해외 실전 사례는 차치하더라도 국내 방산업계는 수출 포트폴리오의 고도화가 경쟁력 확보의 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다.
HD현대중공업은 무인수상정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4월 미국 방산 AI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안두릴과는 AI 함정 자율화 기술을, 팔란티어와는 AI 기반 임무 자율화가 가능한 무인수상정을 개발한다.
LIG넥스원도 5월 AI 기반 자율운항 테크기업인 미국 쉴드AI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화시스템은 정찰과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성 데이터를 AI와 머신러닝으로 분석하는 복합센서 위성망을 영국 BAE 시스템스와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미국 노스롭그루먼과는 육·해·공의 다양한 레이더와 요격 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중에서 공격해 오는 적을 막아내는 체계를 개발 중이다.
무인수상정 개발에 있어 HD현대중공업은 안두릴, 팔란티어 등 미국 방산기업과의 협업 체계 구축은 물론 국내 주요 방산기업과도 손을 맞잡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LIG넥스원은 최근 유·무인 해양 무기체계와 함정 스텔스 기능 연구센터의 공동 운영에도 착수한 상태다.
해외 기업과의 기술 협력은 수출 시장과 신사업 확대의 마중물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KAI는 지난달 프랑스 파리 에어쇼에 참가해 미국 록히드마틴과 신기술 협력을 확대하고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기로 뜻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KAI가 겨냥하는 것은 미 해군의 고등훈련기 교체 사업”이라며 “록히드마틴과의 협업은 자사 훈련기를 미국에 공급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한화오션은 폴란드 WB그룹, CAE를 포함한 캐나다 업체 5곳과 잇달아 업무협약을 맺고 해외 잠수함 수주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캐나다는 3000톤급 잠수함 8~12척을 도입하는 최대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 사업을 추진 중인 만큼 한화오션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현재 국내 무기체계 획득 방식(제도·절차·관련 규정)에는 AI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틀을 갖추지 못했다”며 “최근 방산기업에서 기술개발 차원의 AI는 많이 연구하고 있지만 AI가 방산기업 혼자서 노력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군에서도 관련 데이터의 공유 및 학습, 피드백 구축 등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방산기업이 해외 기업에 의존하는 방식의 기술 협력 역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안두릴, 팔란티어 등과의 소스 코드, 소프트웨어(SW) 협업 체계 구축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AI나 SW를 사용할 수 있게 돼도 매번 해외 기업에 천문학적인 기술료를 지불해야 한다”며 “방산 분야 소버린(주권) AI 개념으로 네이버 등 민간 AI 전문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협업을 통해 우리 주도로 원하는 AI 무기체계를 개발해야 한다. 소버린 AI 구축 없이는 해외 기업의 종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K-방산 고유의 AI 플랫폼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중국의 방위산업은 AI와 로봇, 드론 등 미래전 무기체계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중국 방산은 군용기를 중심으로 제3세계 시장에서 국내 방산업계와 제한적인 경쟁을 하고 있지만 향후 경쟁의 범위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업계의 중론이다.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발표한 '중국 방위산업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국방 예산을 전년 대비 7.2% 증가한 1조7847억위안(약 358억원)으로 책정했다. 한국의 국방 예산 증가율(3.6%·61조5878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중국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7%의 국방비 증가율을 보이고 있으며 2028년에는 우리 국방 예산의 방위력 개선비에 해당하는 ‘장비비’의 비중이 50% 수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말 개최된 주하이(珠海)에어쇼에서 중국 방산기업들은 AI 기반의 무인 무기체계를 대거 공개했다. 자율 지휘·타격이 가능한 AI 로봇 병기 '로봇 늑대'와 군집 드론 시스템 '벌떼 드론', 무인 수상정 '범고래호' 등을 선보인 것이다. 이들의 합동 운용을 통해 중국의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 실현 가능성이 부각됐다.
보고서는 이러한 기술들이 단순한 시연 수준을 넘어 실제 작전 환경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수년간 파키스탄, 태국, 알제리 등에 꾸준히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 20대 주요 방산기업 중 중국 기업 6곳이 포함됐다"며 "중국이 첨단 무기 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어 글로벌 4대 방산 수출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이 먼저 민간 산업을 육성한 뒤 방산 분야에 적용시키는 구조를 정부 주도로 유도하는 반면 한국은 우수한 민간 첨단기술을 보유하고도 방산 분야에 접목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저자인 박혜지 KIET 연구원은 “민간 기술의 현황을 파악한 후 민군 기술협력사업과 신속시범획득사업 등을 통해 해당 기술이 신속히 전력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효과적인 전력화를 위해 민간 기술 부처와 국방부 간의 정보 공유와 유기적인 정책 연계가 필요하다”며 “민간 기업의 방위산업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국방 분야의 시장 접근성을 개선하고 진입 절차 및 관련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등의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