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상고심서 최종 무죄 판결
반도체 부진·글로벌 불확실성 증대 등 총체적 위기
신사업 발굴·대규모 투자 광폭행보 이어질 듯
17일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연합
17일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 연합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면서 10년 가까이 옭아맸던 사법리스크의 족쇄를 끊어내게 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반도체 기술 경쟁력 약화로 그룹 전체가 위기 상황에 놓인 가운데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 해소는 한 기업인의 재판 종결을 넘어 한국 재계의 상징적 사건이자 ‘뉴 삼성’의 미래 청사진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전환점이 됐다.

◆10년 족쇄 벗은 이재용 회장, ‘뉴삼성’ 본격 시동

대법원 3부는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으로 기소돼 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 회장에 최종 무죄를 확정지었다. 앞서1·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만큼 대법원의 판결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대법원은 “부당합병·회계부정 등 혐의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2020년 9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 약 4년 10개월 만이자 2심 판결 이후 5개월여 만이다.

이에 대해 삼성 변호인 측은 “오늘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 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밝혔다.

◆삼성의 '오너 리스크' 사업 전략에 차질

부당합병·회계부정 등 총수 경영에 발목을 잡았던 긴 법정 싸움이 마무리되면서 이제 삼성은 '뉴삼성'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체질 혁신과 미래전략 행보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이 회장 앞에는 당면한 그룹의 위기와 불투명한 글로벌 경제 환경 대응, 기술 리더십 회복, 신사업 R&D 사업 가속화, 조직 구조 개편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 회장의 구속과 실형, 해외 출장 제한 등은 그간 글로벌 경영 활동에 큰 제약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의 '오너 리스크'는 글로벌 투자자와 시장 내에서 불안 요소로 지적돼 왔으며 과감한 경영 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지난 10년간 삼성의 경영 시계는 사실상 멈춰 있었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묶여 있는 동안 삼성전자는 ‘1등 기업’이란 위상이 무색할 만큼 반도체, 가전 등 주력 사업에서 부진을 겪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30년간 유지해온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게 내줘야 했으며,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설계) 부문은 조 단위 적자가 이어졌다. 특히 AI 반도체 시장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며 경쟁업체를 뒤쫓는 총체적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다.

여기에 미·중 기술패권 경쟁,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등으로 대내외 경제 환경이 어느 때보다 불투명해졌다. 국내에서도 상법 개정으로 대표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정책의 부작용으로 경영권 위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의 ‘잃어버린 10년’…AI·초격차로 미래 그린다

삼성은 그간 미뤄졌던 대규모 투자와 M&A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이 밖에 메모리·AI반도체 ‘초격차’ 재정비 및 신사업 R&D 사업 가속화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글로벌 빅딜은 한동안 멈췄고 전장·바이오·AI 등 신성장 분야의 공격적인 행보 역시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2심 무죄 판결 이후 삼성은 미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4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마시모(Masimo)의 오디오 사업부를, 5월에는 독일의 플랙트(공조업체)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 등 굵직한 인수를 체결하했다.

이 회장 역시 지난 2월 샘 올트먼 오픈AI CEO,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3자 회동을 열고 AI 분야에 대한 협력을 논의했다. 바로 다음 달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글로벌 기업 CEO 30여명과 만남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샤오미, 비야디(BYD) 등 현지 전기차 업체와도 전장 분야에서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에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 리조트에서 열린 선밸리 컨퍼런스에 참석한 바 있다.

그룹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반도체와 AI, 바이오 등 미래 신성장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결정이 이뤄질지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이재용 회장은 ‘제2의 반도체’로 점찍은 바이오를 비롯해 6세대(6G) 이동통신, AI 등 미래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전폭 확대하고 있다. 삼성은 2022년 5월 발표대로 5년간 450조 원(국내 360조 원 포함)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미래사업기획단의 기능 역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어떤 청사진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 쏠린다. 실적 개선을 위한 삼성전자의 시급한 과제는 HBM3E(5세대) 개선제품과 HBM4(6세대)의 엔비디아 공급망 합류다.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퀄(품질) 테스트는 현재 1년 가까이 소식이 없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 사업 적자가 누적되면서 반도체 사업 전반에 위기감이 커졌다. 구원투수로 전영현 부회장이 나서고 있지만 더욱 치열해진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HBM3E 제품의 공급 확대를 가속하기 위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만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회장은 지난 2023년 방미 일정 중 황 CEO와 현지 초밥집에서 회동한 바 있다.

평소 기술과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만큼 HBM 관련 기술과 인력 확보에도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다시 가동되며 경제 전반에 긍정적 파급 효과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해당 기업의 경영 리스크 해소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도 "대법원이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것을 환영한다"며 "삼성그룹이 첨단기술 혁신에 집중하고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예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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