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HD현대중공업 11일 부분파업...첫 쟁의행위
노조 ‘정년 65세 연장·임피 폐지’ 요구
조선업종노조연대 공동 요구안에도 포함
사측 “피크아웃·발주 감소로 고정비 증가”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임금협상 난항으로 지난 11일 울산 본사에서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임금협상 난항으로 지난 11일 울산 본사에서 부분 파업에 돌입했다./연합뉴스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3시간 부분파업을 통해 올해 첫 쟁의행위에 돌입했고 다른 주요 조선사들의 연쇄 파업도 우려되는 등 조선업계 전반에 하투(夏鬪·하계 투쟁)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조선사 노조들은 연봉 인상 같은 통상적 요구 사항에 더해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폐지 등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사항·노동 단체의 주장을 협상 테이블에 함께 올리고 사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1일 올해 첫 부분파업을 한 데 이어 오는 18일 총파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4일 파업권을 확보한 HD현대중공업 노조는 11일 울산조선소에서 오후 2시부터 3시간가량 부분파업을 한 뒤 중앙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을 가졌다.

노조는 "회사가 최근 올해 협상 관련 첫 제시안을 내놓았으나 그 내용이 민망할 정도로 부족했다"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세계 1위 조선업을 유지하는 조합원에 대한 예의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호선 노조지부장은 지난 9일부터 단식 투쟁에 돌입했고 18일 노조는 전체 조합원 7시간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5월 20일 상견례를 갖고 현재까지 12차례에 걸친 본교섭을 진행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 12만7000원 인상(호봉승급분 3만5000원 포함) ▲노사 상생 협력 격려금 250만원 ▲경영목표 달성 격려금 250만원을 제시했다. 생산기술직 신입사원 모집과 산업전환 대응을 위한 노사 공동 협의체 운영, 휴양시설 운영을 위한 경상비 20억원 출연, 우수 조합원 해외연수 등도 노조에 제안했다.

회사는 중국과의 수주 경쟁 심화, 고정비 부담 등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최선의 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올해 실적이 1분기 수준을 유지할 경우 격려금(500만원)과 성과금을 합친 변동급여 지급 총액이 조합원당 2000만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노조는 기대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거부했다. 노조는 변동급여 확대보다 ▲기본급 14만13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을 요구하며 ▲최장 65세로 정년 연장(임금피크제 폐지) ▲사내 협력사 노동자 정규직화 ▲성과급 산출 기준 변경 ▲휴양시설 확대 예산 50억원 출연 ▲설·추석 명절 연간 40만포인트 지급 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고질적 인력난을 겪는 조선업계에서 정년 연장을 통해 숙련된 인력을 확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측은 높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노사간 교섭이 진행 중인 상황임에도 파업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회사는 노사간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 교섭에 성실히 임하고 있고 원만한 합의 도출을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는 비단 HD현대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화오션 노조 역시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최장 65세)과 동일화하고 임금피크제 폐지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다른 주요 조선사들의 하투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주요 조선사 노조 연합인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는 당장 이번 주 총파업을 예고했다. 사측이 오는 17일까지 교섭안을 내놓지 않으면 18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조선노연에 따르면 5개 사업장(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 케이조선)은 이미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총 94.7%의 높은 찬성률로 파업권을 확보했다. 조선노연 측 공동 요구안에도 ‘정년 연장’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조선업계 하투가 예년과 달리 조기에 본격화한 데는 시황 피크아웃(정점 통과)과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전문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상반기 전 세계 조선소의 수주량은 1938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58만CGT 대비 54.5% 감소했다. 노조 측에서 업황이 꺾이기 전 초호황기에 거둔 성과를 배분해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저출산과 고령화 기조에 맞춰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점차 늦어지는 사회적 추세를 고려해도 조선업계의 정년 연장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전했다.

하지만 조선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선박 신조 발주량이 줄고 중국의 저가 공세 속 ‘피크 아웃’ 우려가 나오고 있어 고정비 부담으로 이어지는 정년 연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조선사들은 통상 대기업과 제조업에서 채택하는 임금체계인 호봉제를 적용 중인데 근속연수가 늘어날수록 임금이 자동으로 상승한다. 여기에 정년이 4~5년 연장되면 고연차와 고임금 근로자가 더 오래 회사에 남아 그렇지 않아도 산업계 평균치를 웃도는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같은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라는 제도가 있지만 최근 대법원에서 합리적 기준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노조의 폐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미국 관세와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에서 노사 간 기싸움까지 더 많이 벌어지면 우리 산업 경쟁력이 더 흔들릴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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