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은 계열사와 우호세력 동원한 방어
호반의 경영 능력과 평판은 또 다른 변수
[한스경제=류승협 기자] 재계 35위 호반그룹이 한진칼, LS, HMM 등 대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주체로 부각되고 있다.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호반그룹은 지난달 12일 1.02%의 추가 지분 매입을 공시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가시화했다. 아직 지분 취득 목적을 ‘단순투자’로 공시하고 있어 직접적으로 경영권 취득 의지를 드러내지는 않고 있으나, 강력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어 시장에서는 적대적 M&A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반그룹 자금력은 5조원...현금만 2조7천억원 보유
호반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호반건설, 호반산업, 호반프라퍼티 등이다. 이들은 각각 김상열 회장의 3자녀가 최대주주다.
장남 김대헌 사장이 최대주주인 호반건설의 주요 연결 종속회사에는 호반호텔앤리조트·호반자산개발·호반·서울미디어홀딩스·호반서서울 등이 포함된다. 차남 김민성 전무가 최대주주인 호반산업은 대한전선·티에스리빙·호반티비엠 등을, 장녀 김윤혜 부사장이 최대주주인 호반프라퍼티는 대아청과·삼성금거래소 등을 거느리고 있다.
그룹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4조975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현금성자산 2조7424억원과 채무증권 등 현금화가 용이한 자산 1조580억원, 유형자산을 담보로 한 추가 차입여력 약 1조1746억원 등이다.
그룹의 합산 부채비율은 59.8%로 재무구조는 우수한 편이다. 자본은 8조3946억원에 이르며, 연간 4000억원대의 순이익을 내는 수익구조를 고려하면 5조원 수준의 자금은 충분히 활용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재무적 투자자(FI)를 유치할 경우 총 10조원 이상도 가능할 수 있다.
◆조원태 회장의 방어...자금력 열세에 계열사 등 동원
자금력에서 한진칼 조 회장 측은 상대적으로 열세다. 조 회장은 보유 주식 약 386만 주 중 207만 주를 담보로 705억원을 차입하고 있으며, 상속세 담보로도 74만 주를 제공한 상태다. 조 회장 개인 자금력이 크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신 조 회장 측은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최근 한진그룹은 LS그룹과 '동반 성장·주주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사업 협력과 협업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맺어 사실상 우군을 확보했다. 이어 지난 2일 한진칼의 자회사인 대한항공은 LS가 보유한 자사주 1.2%와 교환할 수 있는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취득했다. 호반그룹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LS그룹과 손을 잡은 것이다.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도 시도 중이다. 지난달 15일 한진칼은 자사주 44만44주(0.66%)를 사내복지기금에 증여하기로 이사회 결의했다. 664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직원 25명의 복지 차원에서 증여한다는 무리한 명분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증여 시점은 5월에서 8월까지로 예정돼 있다.
또한 지난 2일에는 한진칼이 자회사인 정석기업의 외부 지분 전부(12.22%)를 매입한다고 공시했다. ‘계열회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밝혔으며 100% 지분을 그룹에서 확보하게 되었다. 향후 활용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조원태 회장 측 36.31%+α vs 호반그룹 18.46%...추가 지분 매입에 최소 2조 필요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자사주 포함)의 한진칼 지분 20.75%,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 14.90%, 사내복지기금으로 증여 결정한 0.66%를 합한 36.31%가 확실한 현재의 경영권 지분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호반그룹은 18.46%로 양측 간 격차는 17.85%p다.
나머지 주요 지분은 기존 조 회장측 우호 지분으로 꼽혔던 산업은행 10.58%와 2022년 결성된 대신자산운용의 사모펀드 4.9%, 유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4.1%, LX판토스 3.83% 등이다. 이 사모펀드의 출자자는 이마트·SK에너지·현대차·HD현대오일뱅크·기아·삼구아이앤씨·유진한일합섬 등이며 펀드의 만기는 오는 8월 말이다.
사모펀드 보유분 9%는 펀드 결성 당시 조 회장 측의 우호 지분으로 알려졌지만 주가가 두 배 이상 오르며 펀드 평가액이 8000억원대에 이르렀고, 3년이 지난 지금 출자자들의 입장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은행은 2020년 11월 체결한 투자합의에 따라 유상증자된 해당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합의 이행과 손해배상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조 회장의 지분을 담보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조 회장에 대해 어떠한 의결권 공동행사 의무도 부담하지 않는다.
게다가 정권 교체와 예정된 산업은행 경영진 교체로 산업은행의 표심이 바뀔 여지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정한 지배구조’를 반영하면 산업은행은 경영권 분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방향이다.
산업은행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호반그룹이 경영권을 가지려면 적어도 17.85%의 지분을 추가 취득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지분을 제외한 시장 유통 지분은 21.82%이고 그나마도 국민연금 등 기관 물량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전부 취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또한 조 회장측은 LS그룹과 전략적 MOU를 통해 적어도 0.7%의 지분 확보는 가능해 보이고, LX판토스 지분 3.83%까지 우군으로 확보한다면 호반이 확보해야 할 지분 취득 부담은 22.38%로 늘어난다.
한진칼 지분 22.38% 매입에 필요한 자금은 13일 종가를 기준으로 2조1025억원에 달한다. 본격적인 매입이 시작되면 주가는 더욱 상승해서 실제 필요한 자금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관건은 사모펀드 만기에 해당 지분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는가이다.
◆항공업 경험 없는 호반의 경영능력, 평판도 변수
호반의 경영 능력과 평판도 향후 M&A에 중요한 변수이다. 호반은 건설업에 주력해 온 그룹으로 항공업에 대한 경험이 없고 대규모의 서비스업 운영 경험도 부족하다. 호텔, 리조트, 골프장 사업을 영위하고는 있으나 아직 규모는 크지 않다.
평판도 중요하다. 편법 승계 의혹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 김대헌 사장이 최대주주였던 호반을 호반건설에 합병시키면서 호반건설의 최대주주가 김대헌 사장으로 변경되었다. 합병 전 호반그룹의 내부거래가 문제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공택지 전매 행위, 입찰 신청금 무상 대여 행위, 계열사 대상 공공택지 사업 PF 2조 6393억원 무상 지급보증, 건설공사 936억원 이관 행위 등을 2세 승계 목적으로 의심했다.
지난 3월 27일 고등법원 판결도 공정위가 일부 패소했지만 일부에 대해서는 호반건설과 김상열 회장, 김대헌 사장 관계가 비정상이었다고 보고 과징금을 유지했다. 양측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로 향후 판결은 지켜보아야 한다.
2022년에는 대기업집단 지정자료 신고에 친인척 명의 회사 13곳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김상열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회장은 1심에서 벌금 1억5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주가에는 이미 M&A 기대감 반영...투자자 주의도 필요
한진칼의 주가는 이미 적대적 M&A 가능성이 상당히 반영되고 있다. 고려아연의 사례를 보면, 지난해 8월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기 이전 고려아연의 주가는 50만원 수준이었다. 영풍과 고려아연 양측의 연이은 공개매수로 주가는 240만원까지 치솟았다. 아직 분쟁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13일 주가는 분쟁 전 수준으로 거의 회귀된 78만8000원이다.
호반건설이 한진칼 지분 추가 매입을 공시한 지난달 12일 이전에 8만원 수준이던 주가는 이후 수직 상승하여 15만원 내외에서 등락하고 있다. 한진칼 주식을 6~7만원대에 매입한 호반은 대규모 투자수익을 이미 확보했지만, 적대적 M&A가 본격화하지 않으면 일반 투자자는 주가 하락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9%의 한진칼 사모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8월 말이 투자자와 경영권 분쟁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류승협 기자 rewsh@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