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등 非농업 분야서 협상 카드 마련해야”
경제안보 중심 조직 개편·각료 인선 작업 진행중
“무역흑자 축소 의지·美 상응하는 행동 보장 받아야”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한미 관세 협상은 진정한 ‘2라운드’ 국면으로 전환했다. 통상당국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지금까지 진행돼 온 한미 간 관세협상 경과에 대한 보고를 완료한 상태다. 조만간 대미 관세협상 라인에 대한 본격적인 교체 인사도 단행될 전망이다.
5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날 밤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통상 협의’의 구체적 진행 경과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된 내용은 2차 한미 국장급 실무 협의와 이후 비정기적으로 협의됐던 미국 측 요구사항과 기존 대응 상황, 다른 나라와 미국 간 협상 동향 등이 골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일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무역 협상국에 4일(현지시간)까지 주요 분야별로 ‘최상의 제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며 자체 입수한 미 무역대표부(USTR) 서한 초안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요 분야에는 미국산 공업 및 농업 제품, 에너지에 대한 관세와 수입할당량(쿼터), 비관세 장벽 개선 계획이 포함됐다. 아울러 디지털 교역, 경제 안보와 관련 국가별로 구체적인 약속을 담으라고도 요구했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상호관세 부과 적용 시점인 7월 9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협상에 속도를 내기 위한 일종의 ‘압박 카드’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통상당국은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난 상황에서 ‘최상의 제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우며 데드라인을 일주일가량 연기해 줄 것을 미국 측에 전달했고 이를 이 대통령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정부 출범 전 협상에 관여했던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요구 하나하나가 전부 차기 정부 대통령실과 수뇌부에서 결정해 줘야 움직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대선이 끝난 만큼 미국 측이 무역흑자 축소, 비관세 장벽 완화 등 구체적 방안을 내놓으라고 우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규제 완화,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허용 등 비관세 장벽 해소 방안으로 거론되는 미국의 요구사항은 모두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민감한 이슈들이다.
따라서 관세 최소화를 위해 미국에 일정 부분 양보가 불가피할 경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정치적 노력 역시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미국은 30개월 이상 소고기뿐 아니라 쌀 수입 제한 등 한국의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비관세 장벽이 철폐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는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미미한 반면 에너지 등 비(非)농업 분야 수입은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에 실질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비농업 분야를 중심으로 협상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진교 GS&J인스티튜트 원장은 “농업 분야의 비관세 장벽 완화로 미국이 한국에 소고기를 조금 더 수출한다고 해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해소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에너지 등 우리가 실질적으로 수입해야 할 비농업 품목에 대한 확대, 대미 투자, 조선산업 협력 등 실질적인 교환 카드를 제시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관계 부처 장관과 경제 4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경제안보 점검회의'의 정례화 구상을 밝혔다. 이는 민간과 소통 강화를 바탕으로 폭넓은 국익을 대표하는 방향으로 경제통상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상 파고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경제안보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 조직 개편과 핵심 각료 인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후보 시절 '경제안보 총괄 조정 기능 강화를 위한 컨트롤 타워'를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이와 관련 새 정부는 경제안보 담당인 기존 국가안보실 제3차장을 장관급인 통상보좌관으로 격상시키고 통상교섭본부장(차관급)을 교체해 실무를 전담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외교·통상 책사’ 역할을 했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비중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실제 5일 기준 김 전 본부장은 이재명 정부의 초대 외교부·산업부 장관과 주미 한국대사로 하마평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리더십 교체라는 특수 상황을 내세워 대미 협의 시한을 늦추는 방향으로 우선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협의 시한 연기는 현실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영국과 첫 무역 합의 도출, 중국과의 '휴전' 등 잇따른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을 포함한 모든 협상국과 조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단호한 입장인 만큼 우리의 희망대로 시간표 조정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USTR이 모든 관세 협상국에 4일까지 주요 분야별 최상의 제안을 제출하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협의 시한 연기론’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관세조치에 정부가 실익 중심의 유연하고 현명한 협상 카드를 꺼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산업부 중심의 기존 협상팀이 축적한 대화 채널을 새 정부에서도 유효하게 활용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이 대통령이 임명할 새 협상 대표에게 전권을 줘 협상팀을 이끌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진교 원장은 “정부가 미국 측에 무역흑자 축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