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자원·에너지·수산·위성 산업 동반 진출
"부산항 거점항만·산업 집적화→2극체제 전환"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海氷)의 급속한 감소는 북극항로에서의 상업적 운항 현실화 시점을 점점 앞당기고 있다.
25일 업계와 해양 연구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북극항로는 기후변화에 따라 점차 운항 가능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2050년이 돼야 열릴 것으로 예상되던 북극해의 ‘얼음 없는 여름’이 2030년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북극해가 단순히 환경적 상징을 넘어 산업적, 지정학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북극연구소(The Arctic Institute)는 북극항로를 통한 글로벌 해상 운송 비중이 2030년 전체의 2%, 2050년까지 5%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 보고서를 제시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PwC는 북극항로 중 러시아 북쪽을 경유하는 북동항로의 화물 운송량이 2018년 약 2000만톤에서 2030년 약 6700만톤으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주요 국가들은 북극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북극항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는 2035 북극개발 전략과 북극항로 개발 전략을 수립하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쇄빙선 기반 물류망과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하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극항로를 국제 물류망의 핵심 축으로 육성하기 위해 외국 자본 유치를 포함한 합작 투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부펀드인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는 북극항로와 관련 인프라에 대한 투자 유치를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사우스 등 외국 자본과의 협력 가능성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극항로를 단순히 러시아 자국만의 항로가 아닌 국제적인 물류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북극항로 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극지 인프라 건설 일정도 제시했다. 일정에는 내년까지 2척의 신규 원자력 쇄빙선 건조에 착수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현재 러시아는 5척의 핵추진 쇄빙선을 포함해 약 40척 이상의 관련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핀란드는 세계적 수준의 쇄빙 기술을 보유한 아커 아틱(Aker Arctic)사를 통해 액화천연가스(LNG), 암모니아, 수소 추진 차세대 친환경 쇄빙선 개발에 착수했다. 노르웨이는 북극해에서의 ‘그린 해운 회랑’ 구축을 국가 북극 전략의 핵심 과제로 표방하고 있다. 덴마크도 그린란드를 전략 거점으로 활용하며 지속가능한 해양산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18년 북극 백서를 통해 자국을 ‘근(近)북극국가’로 규정하고 일대일로 구상의 연장선으로 폴라 실크로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도 러시아 ‘Arctic LNG-2’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북극 지속가능성 챌린지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 주도로 정책·산업·과학을 세 축으로 하는 북극 역량 확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쇄빙선, 항만 인프라(대형 LNG 터미널 등)가 러시아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지만 알래스카 및 북극권 군사 기지 재정비에 착수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극항로의 상업 운항 시점의 도래는 한국 해운산업에 있어 경제성과 효율성이 충분한, 매력적인 존재다. 북극항로는 부산항을 출항해 베링해협과 러시아 연안의 북극해를 통과한 뒤 유럽으로 향하는 북동항로와 캐나다, 미국으로 들어가는 북서항로로 나뉜다.
기존 항로인 부산항에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가는 거리가 약 2만2000㎞다. 같은 노선(부산~로테르담)을 북극항로를 이용해 항해하면 거리는 1만3000~1만5000㎞로 30~40%가량 단축된다. 운항 거리의 단축은 시간·연료비의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선박 회전율 증가로 연결되며 해운산업의 효율성 제고와도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물론 북극항로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와 미국·나토의 대립, 중국의 북극 진출까지 가세한 지정학적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북극 해역은 여전히 선박 항행에 불리한 자연조건을 갖고 있다. 불규칙한 해빙 이동, 미흡한 항해도와 기상예보, 구조 체계의 미비는 선박 좌초, 사고, 해양오염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25년 5월 현재 한국이 왜 북극항로에 주목해야 하며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명제의 굴레에 둘러싸여 있는지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한국은 전체 수출입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기존 해상 운송 경로인 남중국해, 대만해협, 말라카해협, 호르무즈해협, 수에즈 운하 등은 모두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위험이 큰 ‘초크 포인트(Choke Point)’로 꼽힌다.
김민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경제전략연구본부장은 “말라카해협은 세계 해상 무역의 25%, 유류 수송의 3분의 1이 지나다니고 호르무즈해협도 석유 수송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라며 “언제 어떠한 이유로든 이 항로가 막힌다면 한국의 수출입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북극항로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 항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북극항로가 단순한 경제성을 보고 진출한 공간을 넘어 국가 생존 차원의 전략적 선택지라고 밝혔다.
북극항로가 단순히 배가 다니는 길이 아닌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연결된 공간이란 점도 부각되고 있다. 이 항로를 중심으로 조선, 해양자원, 에너지, 수산, 해양과학조사, 위성, 해저케이블 산업까지 동반 진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북극 진출은 곧 신산업 생태계 확장이자 우리나라 산업의 글로벌 무대 확장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이 친환경 선박과 혁신 기술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부분도 북극항로 이용의 또다른 명분이라는 지적이다. 김민수 본부장은 “최근 한국과 아이슬란드가 전기 소형어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며 “한국의 조선 기술과 북극권 국가들의 친환경 인프라 경험을 접목하면 전세계 친환경 선박 전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한국은 2021년 세계 최초로 남북극 활동을 포괄하는 ‘극지활동진흥법’을 제정했고 이에 기반한 ‘극지활동진흥기본계획’도 수립하는 등 북극 활동을 위한 법·제도적 준비를 이미 마쳤기 때문에 북극항로 이용과 같은 본격적인 실행만이 남아 있다는 주장이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 출간하며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특히 부산항을 북극항로의 거점 항만으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부울경 지역은 북극항로의 필수 경유지인 대한해협에 면해 있어 지리적으로 이점이 높은데 중국은 상하이·선전(深圳)·닝보저우산(寧波舟山)·톈진(天津)항 등 대등한 조건의 거대 항만을 이미 다수 보유하고 있다”며 “중국 역시 북극항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들 항만을 북극항로의 거점 항만으로 육성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부산항이 상하이항 등과의 거점 항만 경쟁에서 단독으로 승부하기는 어려운 만큼 미국과 연합해 체급을 키워야 한다”며 “북극항로 거점 항만 점유율에서 부산항은 50% 이상을 차지해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며 부울경 전체를 하나의 첨단 산업 기술 메가클러스터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이 러시아와 관계 회복을 통해 북극항로 거점도시로 부울경, 거점 항만으로 부산항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관련 기업과 산업단지가 집적화된다”며 “현행 수도권 중심의 1극체제가 인구 분산을 통해 서울, 부산 중심의 양극(2극)체제로 전환됨으로써 한국의 가장 큰 당면과제인 저출산 문제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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