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건설사, 분양 연기·축소…선별수주 기조 강화
중견사 줄도산 위기에 공급 공백 현실화 우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 연합뉴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 연합뉴스

[한스경제=한나연 기자] 21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주택 공급 공약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면서, 시장에 조용한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명확한 정책 방향성이 부재한 가운데, 건설사들은 분양 일정을 연기하거나 공급 물량을 줄이며 보수적 경영 기조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특히 중견 건설사들이 잇따라 법정관리에 돌입하고, 대형사들마저 선별 수주 전략을 강화하면서 공급 공백 우려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15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한 최근 건설경기 진단과 대응 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치권 혼란과 올 상반기 탄핵 정국이 정부의 예산 집행과 사업 결정에 차질을 주면서 공공 발주가 지연·보류되는 사례가 급증했다.

게다가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있음에도 정치권에서는 구체적인 주택 공급 계획이나 실행 방안을 담은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청년주택이나 재건축 규제 완화 같은 원론적 방향은 제시됐지만, 공급 목표와 시기, 대상지 등 핵심 정보가 빠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정책 공백 속에서 건설사들은 공급 전략을 신중히 조정하고 있다. 분양 일정을 연기하거나 공급 물량을 축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대선을 앞두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업장에 한해서만 '밀어내기' 분양에 나서는 모습이다. 즉 원자재 가격 상승, 미분양 리스크 등의 요인도 있지만, 정치권과 정부당국의 정책 부재가 '보수적 경영'을 유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 결과 공급 시계도 점차 느려지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5년 수도권 아파트 공급 예정 물량은 14만897가구로, 전년(17만1809가구) 대비 약 18.2%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수도권의 아파트 단지 전경. / 연합뉴스 
비수도권의 아파트 단지 전경. / 연합뉴스 

대형사들의 실적도 마냥 밝지만은 않다. 특히 1분기 주택건축 부문의 부진이 매출 하락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상장 건설사 6곳의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들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경우 1분기 매출이 3조6200억원으로 35% 감소했고, 현대건설은 8조5453억원으로 12.8%, 대우건설은 2조4873억원으로 16.5% 감소했다. DL이앤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은 각각 1조8950억원, 9057억원으로 4.4%, 5.2% 감소했다. GS건설은 3조629억원을 기록해 0.26% 감소했다.

업계는 공사 자재비·인건비 상승, 착공 지연 등 주택 부문 부진을 매출 하락의 주 요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수익성 저하로 인해 건설사들이 선별 수주 등 보수적인 사업 운영에 나서고 있어 실적 악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평가다.

중견사들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올해 초 신동아건설(58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삼부토건(71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2023년 기준) ▲대흥건설(96위) ▲대저건설(103위) ▲삼정기업(114위) ▲벽산엔지니어링(180위) 등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안팎의 업체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흐름이 전체 공급 체계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견사는 수도권 외곽과 지방 중소형 단지 공급을 주도해 온 만큼, 이들의 공급 중단은 해당 지역의 주택 수급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예산 집행과 사업 결정 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 수익성 악화로 오히려 더 큰 손실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엔 무리한 수주보단 내실 관리에 무게를 둔다"고 전했다.

이지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수주와 착공의 감소는 주택공급 부족으로 이어지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도심 재정비 사업을 활성화해 주택 공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규제의 합리적 완화와 인허가 절차의 개선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경기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선 먼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건설 현장의 자금 흐름을 회복하기 위한 신속한 경기부양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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