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확실성 일시적 해소…"이제라도 정상화 다행" 경기회복 기대
초당적 민생 안정·경제 회복, 최우선 해결 과제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일시적으로 해소돼 내수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조기대선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여전한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헌법재판소는 4일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불확실성 해소’에 소비심리 살아날까...조기대선은 변수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전격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헌정 위기가 이어지면서 국내 소비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었다. 정치적 혼란 속에 연말 특수가 실종되자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경제적 직격탄을 맞았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00여명 규모 관공서 단체 예약이 한 번에 취소됐다”, “대기업 명의로 예약한 건들도 예외 없이 취소됐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주요 상권 곳곳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고 불이 꺼진 점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면서 장기화된 불황으로 자영업자들도 고통받고 경기 침체에 소비 심리도 위축되면서 건물 전체가 공실이거나 운영 중인 가게도 힘겹게 버티는 상황이 이어졌다.
지역 상권도 직격탄을 맞았다. 광주 지역의 올해 1월 자영업자 수는 14만3000명으로 한 달 새 1000명, 두 달 새 4000명 줄어들었다. 한 식당 업주는 “월세를 못 낼 정도로 매출이 많이 감소돼 많이 힘든 상황”이라며 “대출로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팬데믹 충격에서 채 회복되기도 전에 계엄 후폭풍까지 더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깊어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2월 국내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며 경기 침체와 정치 혼란이 겹친 내수 부진을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은 내수 침체 회복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포착된다. 지난해 계엄 선언 이후 팽배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탄핵 정국 내내 불안에 떨었던 소상공인들은 이제서야 혼란한 정국이 안정돼 소비 심리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울 명동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이제라도 나라가 정상화돼 다행”이라며 “손님들 마음도 좀 풀리고 경기가 살아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간 국정 공백과 사회 혼란으로 연일 이어지던 내수 침체가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함께 진정 국면에 들어설지 주목된다.
그러나 윤 대통령 파면 직후 곧바로 조기 대선 국면에 돌입한 점은 또 다른 변수다. 헌정 공백을 메울 차기 대통령 선거가 60일 이내에 치러져야 해 당장 여야는 대선 체제에 돌입했다. 일각에선 새 지도부 출현에 대한 기대가 있으나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정책 공백이 길어지고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되면 정국 불확실성이 오히려 연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소상공인단체 관계자는 “탄핵 심판으로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두 달 후까지 계속 정권이 공석인 셈”이라며 “대선 레이스로 민생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민생 안정’과 ‘정치 일정보다 경제 회복 우선’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영업자 역대 최저 수준...비용 급등에 정치적 혼란 겹쳐
경기 한파 속에 자영업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월 국내 자영업자는 550만명으로 집계됐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해 11월 약 570만명이었던 것에 비해 20만명 이상 급감한 수치다. 코로나19 엔데믹 직전이던 2023년 1월 549만명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사실상 팬데믹 당시 수준까지 후퇴했다.
주목되는 것은 자영업자 규모가 외환위기 때보다도 작아졌다는 점이다. 1997년 IMF 위기 당시 약 590만명에 달했던 자영업자 수가 올해 들어 그보다 40만명이나 적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던 2008년 600만명을 넘기도 했던 자영업자 수는 2009년부터 500만명대로 내려앉았고, 이후 560만~570만 명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사태로 한때 550만명 선까지 감소했고 엔데믹 이후 조금씩 회복되던 추세가 이번 탄핵 정국을 겪으며 다시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 같은 역대 최저 수준의 자영업자 감소는 다양한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우선 장기간 지속된 내수 부진으로 가게 매출이 줄고 영업환경이 악화된 영향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증가율은 2.5%에 그쳐 202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2022년 대비 소매판매액지수도 2.2% 감소하며 소비 위축이 현실화됐다.
가파른 고금리 기조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 점도 자영업자들에게 치명타가 됐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유한 자영업자 335만8956명이 금융권에서 빌린 대출 총액은 1122조7919억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자영업자가 15만5060명으로 전년보다 4만여명 급증했고 연체된 부채 규모만 30조7248억원에 이르러 1년 새 7조원 넘게 불어났다. 빚내서 버티던 장사마저 한계에 봉착한 셈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임대료 등 비용 급등이 겹치며 자영업자의 채산성을 더욱 악화시켰다. 먹거리 원부자재 가격 상승률은 지난해 내내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 서울 중구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밀가루, 식용유 가격이 뛰고 인건비까지 올라 남는 게 없다”며 “손님은 줄었는데 재료비는 안 내려서 가게 문을 계속 열어놔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종업원을 모두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꾸리는 ‘나홀로 자영업자’도 늘었다. 통계청 자료에서도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줄고 혼자 영업하는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가 확인된다.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경영비용 부담 순위를 보면 원자재·재료비 상승(22.2%), 인건비 부담(21.2%), 임차료 인상(18.7%),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14.2%)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결국 매출 부진과 비용 상승, 금융 부담의 삼중고 속에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10명 중 4명은 폐업 고민...“상황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영세 자영업자들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상태다.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가 경영 악화를 호소하며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음식·숙박, 도소매, 서비스업 등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인 72.6%는 2024년 매출이 전년보다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순이익이 줄었다는 응답도 72.0%에 달했으며 평균 감소 폭은 매출 –12.8%, 순이익 –13.3%로 집계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전망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응답자의 61.2%는 2025년 매출이 작년보다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고 62.2%는 순이익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예상되는 올해 매출·순이익 감소 폭은 각각 –6.5%, –7.2%다. 경제 전반의 저성장 기조와 내수 한파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KDI도 최근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6%로 하향 조정하며, 자영업 경영 환경의 험난한 앞날을 경고했다.
극심한 불황 속에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들도 상당수다. 한경협 설문에서 응답자의 43.6%는 “향후 3년 내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10명 중 4명 이상이 사실상 사업 포기를 심각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폐업을 고민하는 주된 이유로는 영업실적 지속 악화(28.2%)와 경기회복 전망 불투명(18.1%)이 가장 많이 꼽혔다. 자금 사정 악화 및 대출 상환 부담(18.1%), 임차료·인건비 상승(11.9%), 원자재 가격 상승(11.9%)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신생 자영업자 10곳이 문을 여는 사이 8곳이 문을 닫았다는 통계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가 이 정도로 많다는 건 내수 경제 기반이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의미”라며 “생계형 사업자들이 무너지면 고용과 소비 위축으로 악순환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자영업자들은 경기가 언제쯤 나아질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긴 시간의 보릿고개를 예상했다. 앞서 설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50.2%는 경기 회복 시기를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로 점쳤다. “2027년 이후”를 꼽은 응답자도 24.8%에 달해 상당수가 향후 2년 이상은 경영 여건이 나아지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 사이에 폐업 대란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단기적 지원과 구조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질적 지원 정책 시급...자금 압박 덜어 연쇄 부도 막아야”
이처럼 벼랑 끝에 몰린 소상공인들은 정부와 정치권에 절박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단순 구호성 메시지가 아니라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원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관련 단체들은 탄핵 정국 동안 줄곧 정부에 민생대책을 촉구해왔다.
가장 시급한 것은 자금 압박을 덜어주는 일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이 정부에 바라는 지원책 1순위는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 등 금융지원 확대(22.1%)였다. 코로나 시기 시행됐던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조치 등을 재도입해 한계 자영업자들의 연쇄 도산을 막아달라는 요구다.
지난 2월 말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를 통해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한 식당 주인은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한숨 돌릴 것”이라면서도 “문턱 높은 은행보다도 2금융권에 빚진 영세업자가 많다 보니 현실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소비를 녹일 내수 진작 대책(20.9%)도 소상공인들의 요구사항 중 하나다. 지역사랑상품권 추가 발행이나 전국민 소비쿠폰 지급 등 직접적으로 지갑을 열게 할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정치 혼란으로 소비 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던 만큼 정부가 나서서 안정감을 주고 소비 촉진 캠페인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박근혜 탄핵 당시 정부는 2017년 3월 임시 공휴일 지정, 코리아세일페스타 개최 등 소비 진작 방안을 시행해 일정 효과를 본 바 있다. 이번에도 특단의 소비 활성화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물가 안정과 고정비 경감도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설문에 따르면 소상공인들은 원부자재 가격 등 물가 안정(14.0%), 임대료 지원 강화(11.7%), 공공요금 인상 억제 또는 인하(10.5%) 등을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잇따른 전기·가스요금 인상으로 부담이 가중된 만큼 공공요금 동결이나 세제 지원으로 운영비용을 낮춰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 연장, 카드 수수료 인하, 사회보험료 경감 등 여러 간접 지원책을 시행 중이지만 현장 체감도는 낮다는 평이 나온다. 소상공인들은 보다 직접적이고 현금 흐름을 개선할 수 있는 지원을 원하고 있다. “임대료 몇 달 치라도 정부가 직접 지원해주는 방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인건비 보조금이나 사회보험료 깎아주는 지원이 실질적인 도움” 등의 요구가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소상공인연합회 등은 정치권에 초당적 민생 입법을 요청하고 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임대차 분쟁이나 폐업 관련 법률 지원, 재기 지원 등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야가 정쟁을 떠나 소상공인 보호 입법과 예산 지원에 힘을 모아달라는 주문이다.
결국 ‘탄핵 정국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을 구제하는 일이 향후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상 두 번째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정치권은 바로 조기 대선을 준비하게 된다.
이 기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민생 경제의 안정을 강조한다. 탄핵 국면을 거치며 한계 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서민 경제 전반이 무너지는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이에 신속하고 과감한 민생대책이 요구된다. 당장 올해 소상공인 지원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5조9000억원이 책정돼 있으나 예산 집행의 속도와 효과가 관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상흔을 지워내기 위해서라도 여야와 정부 모두 정쟁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탄핵 정국을 겪으며 심화된 내수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는 민생 안정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사회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종효 기자 sound@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