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수민 기자] 주말이면 이곳에서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기 위한 차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건물 주변으로도 사람들은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일에는 이곳에 들어와 있는 헬스장, 문화센터, 동물병원 등을 이용하려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건물 바로 뒤쪽으로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산책하기 좋은 조그마한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건물로 곧바로 내려올 수 있는 샛길이 나있어 산책을 하던 주민들이 물을 마시러, 간식거리를 사러 이따금씩 이곳을 들르기도 했다.
5년 전 문을 닫은 홈플러스 안산점에 대한, 30여년차 지역 주민인 기자의 기억이다.
2000년 8월 오픈한 홈플러스 안산점은 당시 안산 내 규모, 매출 1위를 기록하던 대형마트였다. 삼성과 테스코 합작으로 개설된 첫 점포이자, 수도권 지역에는 처음 진출한 홈플러스 3호점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전국 매출 5위권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던 홈플러스 안산점은 2021년 11월 돌연 폐점소식을 알렸다. 당시 홈플러스 측은 사업 유지를 위한 유동성 확보를 위해 매장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2015년 홈플러스를 약 7조 2000억원에 인수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가 이자를 갚기 위해 전국 상위 점포들을 하나씩 팔아치웠고, 여기에 안산점이 포함 됐다. 당시 이 같은 배경을 상세하게 알지 못한 지역 주민들은 '잘 나가던' 홈플러스의 폐점을 두고 늘 물음표를 띄웠다.
대형마트 한 곳이 문을 닫으면 수많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잃고, 인근 상권들은 서서히 쇠퇴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문제지만, 막상 그곳에 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마트를 기점으로 동네를 가득 채웠던 소리와 활기의 부재, 모든 색상을 잃은 듯한 풍경의 적막함이다. 그 자체로 주민들의 '소통의 장'이 되어 동네를 살아 숨 쉬게 한 동력이 거대주주의 지시로 하루아침 완전히 작동을 멈춘 것이다. 사라진 존재(공간)에 대한 상실감은 남아있는 지역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했다. 이는 일상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삶을 방해하는 요소로도 여전히 남아있다.
2025년 3월 16일 다시 찾은 홈플러스는 철제 펜스로 둘러쌓인 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주말 오후임에도 공기는 적막했다. 건물로 이어지던 크고 작은 도로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뚝 끊겼고 동네는 홈플러스의 폐점을 기점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MBK는 홈플러스 안산점의 문을 잠그면서 이 동네의 활기까지 꽁꽁 가두어버렸다. 당시 홈플러스 안산점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의 시위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홈플러스 안산점의 직원수는 전국 2위에 달하는 규모였다.
홈플러스 안산점의 주인은 2020년 부동산 개발업체 화이트코리아에 넘어갔다. 당시 매입가는 약 400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화이트코리아는 홈플러스를 주상복합건물로 재건축하겠다고 했으나, 일반상업지역 용적률 제한 등 각종 규제가 얽히면서 시간은 지체됐다. 폐점 후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거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그 사이 거대 폐건물이 된 홈플러스 안산점은 지역의 랜드마크에서 골칫거리인 흉물로 전락했다. 홈플러스와 바로 맞닿은 신우빌라 입구에는 '홈플러스재건축피해대책위원회' 라는 현수막이 간격을 두고 몇 년째 걸려있는 상황이다.
하루아침 주민들의 일거리와 쉼터와 풍경을 앗아간 MBK는 이달 초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향후 9곳의 점포를 추가로 매각할 계획이라고 한다. MBK는 점포를 팔아 또 다시 천억대의 현금을 창출할 것이고, 지역과 주민들로부터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또 다시 앗아갈 것이다. MBK는 무엇을 빼앗아 무엇을 얻고 있는 것일까.
올해 하반기에는 부천상동점점과 더불어 동대문점 등이 폐점을 앞두고 있다. 두 점포 모두 핵심상권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 매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이수민 기자 sumin@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