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생산 등 공급망 다변화...‘반도체법’불발, 위기 고조
[한스경제=김태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와 반도체․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관세는 최소 25%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관세를 어느 정도로 부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4월 2일 이야기할텐데 25% 정도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에 대한 질문에는 "25% 그 이상이 될 것이며 관세는 1년에 걸쳐 더 인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하지만 우리는 기업들에 미국에 투자하러 올 시간을 주고 싶다. 그들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관세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약간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는 관세를 4월 2일 발표 시점 이후 곧바로 부과하기 보다는 관세 발효시까지 일정 시간을 두고 기업들이 생산거점을 미국으로 옮길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단계별로 관세를 올려 기업들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가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과 관련된 기업들이 앞으로 수주 내로 미국 투자와 관련된 발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대상 기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었다. 그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상당수 품목이 무관세 혜택을 받아왔던 우리 기업도 수출 경쟁력 약화 등이 불가피해졌다. 무관세 할당제(쿼터제)가 폐기됐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으로 수출되는 반도체도 무관세다. 25% 또는 그 이상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K-반도체 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가 언급한 반도체와 자동차의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품목 1위, 2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의 관세는 우리에게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나라 수출품에 높은 관세가 부과 되면 가격 상승에 따른 수요 위축, 수익성 악화, 마진감소,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또 수출 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다. 반도체, 자동차 등의 제조업에서 원자재 및 중간재를 다량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관세가 부과되면 철강, 석유화학, 희토류 등 주요 원자재 비용이 상승해 제조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수출시장에서 힘이 약해질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반도체 총 수출액은 1419억달러로, 이는 역대 최대 수출액이다. 이는 지난 2022년 1292억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전년 대비 43.9% 증가했고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했다. 작년 10월 기준 대미 수출은 역대 10월 중 최대 실적인 104억달러를 기록했다
또 작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대 들어 가장 높은 35.7%였다. 미국의 상호관세가 적용되면 반도체,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주요 산업의 수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작년 자동차 수출액은 707억8900만달러로, 이중 대미 수출액은 347억4400만달러로 비중이 50%에 이른다.
지난 달 산업통상자원부의 ‘2024년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출액은 전년보다 8.2% 증가한 6838억 달러였다. 기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이던 2022년의 6836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대비 약 44% 증가한 덕분이다.
미국 이번 관세부과 조치는 원산지 기준으로 부과된다.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에도 중국산으로 판단하고 관세부과 대상이 된다.
한국 자본의 기업이라도 중국 내 공장에서 제조한 제품이면 중국산으로 인정되면서 관세부과 대상에서 제외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도 미중 관세 전쟁의 영향권에 들기 때문에 충분한 대비와 전략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공급망의 다변화다. 중국을 대미 수출 전략기지로 활용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또는 미국 현지로 생산 거점을 옮겨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여야는 1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반도체 특별법 제정안을 심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반도체 특별법 처리가 또 무산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여야는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 여부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이 법은 반도체 산업 직접 보조금, 대통령 직속 위원회 및 지원 조직 설치,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용수 관련 인허가 최소화, 인력 양성 지원 등을 골자로 한다. 업계는 특혜가 아니라 해외 기업과 경쟁할 수 있도록 같은 수준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인데 허탈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인텔 분할 매각설이 제기되는 등 세계 반도체 업계 판도 변화가 크게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정부와 정치권이 반도체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이 이대로 간다면 우리나라 경제의 기반이 되었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약화돼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와 기업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 부과를 완화하거나 예외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통해 관세 부과를 피하고 현지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tadkim@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