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국내 모호한 규제, 국내 기업 해외 탈출 기회 주는 격
블록체인 다른 시장과 달리 아직 기회가 열려 있어
다만, 1~2년 안에 승부수를 걸어야 할 때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국내는 여전히 불명확한 규제로 인해 관련 산업 발전이 지체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최근 비트코인 ETF를 승인하고 각국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며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국내의 모호한 규제 기조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블록체인 업계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주)한국디지털에셋(KODA, 이하 코다) 본사에서 만난 조진석 대표의 첫마디였다.

한국디지털에셋(KODA) 조진석 대표 /이미지=한국디지털에셋(KODA) 제공
한국디지털에셋(KODA) 조진석 대표 /이미지=한국디지털에셋(KODA) 제공

코다는 KB국민은행과 협력해 금융권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도 완료했다. 이를 기반으로 단순 보관 서비스를 넘어 스테이킹, 장외거래, 대출 서비스부터 블록체인 기술 개발까지 아우르고 있다. 국내 최대 블록체인 기업 코다를 이끌고 있는 그의 표정은 무거웠다. 정부의 규제 불확실성이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다만 그는 아직 기회의 창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다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 모호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다

조 대표는 현재 한국 블록체인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제도의 불명확성을 꼽았다. "규제가 불분명하니 제도권 자금이 유입되지 못하고, 전문가들의 참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이나 네이버, 삼성 같은 대기업들도 규제 리스크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와 사업 확장을 망설이고 있죠. 정부가 갑자기 '하지 마라'고 하면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와 대조적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명확한 규제와 정책으로 가상자산 생태계를 발전시키고 있어요. 심지어 미국은 작년부터 비트코인 ETF가 나오면서 시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블랙록과 같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들이 참여하면서 연기금과 국부펀드까지 간접적으로 비트코인을 매집하고 있죠. 트럼프 행정부의 가상자산 친화적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은 제도권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조진석 대표의 말이다.

조 대표는 과거 ICO(초기 코인 공개) 붐 당시 발생했던 다단계 사건들을 언급하며 "그 시절에는 방문판매법조차 적용되지 않아 피해를 막을 법적 장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용자 보호법 등 최소한의 규제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ICO란 Initial Coin offering의 약자로 초기 코인 공개라는 뜻으로 사업자가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 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은 이를 사고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ICO는 사실상 금지되어 있어 국내 기업들이 해외 법인을 설립해야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국내에서 금지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블록체인 시장 분야에 있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해외로의 이탈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조 대표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두바이나 싱가포르 등으로 법인을 옮기고 있다. 아직 개발인력만큼은 국내에 남아있지만, 이 인재들마저 해외로 빠져나가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영원히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인재 유출은 곧 산업 경쟁력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국내 코인의 가격 상승이나 거래량 증가는 거의 없었으며, 유통량 부족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프로젝트가 많다”라고 언급했다.

◆ 중소기업의 기술 특화 전략이 핵심이다

이어 조 대표는 현재 상황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블록체인 산업의 특성상 반드시 수백 명의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4~5명의 핵심 개발자들이 특화된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영지식 증명, 토큰 검증 기술, 수수료 최적화 등 틈새 기술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화 기술은 향후 대기업과의 협업이나 인수합병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전략적 협업 모델을 강조했다. "대기업이 처음부터 블록체인 사업을 직접 시작하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가 따릅니다. 기존 생태계 참여자들과 협업하면서 단계적으로 진입하는 게 현명한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STO(증권형 토큰) 발행 시 기존 거래소의 인프라를 활용하거나, 웹3 서비스 개발 시 블록체인 전문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STO란 Security Token Offering의 약자로 모든 형태의 실물 자산에 안전하게 투자를 가능하게 해주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증권 발행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STO는 마치 디지털 장난감 가게의 '장난감 교환권'과 비슷하다. 실제 장난감을 직접 들고 다니는 대신, 장난감을 살 수 있는 교환권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이 교환권은 블록체인이라는 특별한 기술로 만들어져 있어 누구도 위조할 수 없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결국 STO는 건물, 미술품, 회사 등 다양한 가치 있는 것들을 디지털 교환권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고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는 투자자 보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현재 거래소들은 더 적극적으로 투자자 보호에 나서야 합니다. 비정상적인 거래나 사기성 프로젝트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투자자 교육도 확대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윤리적 책임을 넘어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끝으로 조 대표는 한국이 블록체인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이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블록체인은 다른 IT 산업과 달리 아직 기회의 창이 열려있는 분야이에요.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고 불렸던 것은 단순히 인터넷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솔루션이나 원천 기술면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죠.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따라잡을 기회가 있는 몇 안 되는 분야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명확한 규제 체계를 마련하지 않고,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후발주자로 남을 수밖에 없겠죠.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조 대표의 마지막 말이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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