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정현 기자] "AI 교과서(AIDT)를 선택해 놓친 기회비용, 교육자료 격하 움직임에 줄어든 기대수익,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생기는 막막함... "
세계 최초로 도입하려는 AIDT가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재의 요구에 의해 교과서 지위를 가까스로 유지하게 되자 기자와 만난 한 에듀테크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AI 기술로 학생들의 능력과 수준을 분석해 맞춤학습을 지원한다는 'AIDT'는 2023년 2월 교육부의 지휘 아래 2년간 정부와 민간 사업자가 함께 준비해왔다. 개발기간은 18개월인 서책형에 비해 12개월로 짧았다. 가이드라인도 10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렵게 준비한 AIDT지만 지속가능 여부는 위태하다. 신학기를 1달 남겨뒀는데도 사용할지를 두고 현장에서의 논의가 뜨겁다. AIDT 정책 공표 당시부터 '사고를 편하게 해주는게 교육인가'라는 교육계의 원론적인 질문 등이 끝없이 나왔는데 교육부가 이를 설득하지 못하면서 결국 AIDT가 정쟁으로까지 비화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AIDT가 종이교과서와 함께 자율적으로 사용되지만 국회의 재표결 여부에 따라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교육자료로 지위가 격하돼 학교 재량에 따라 보조자료로만 사용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침체되는 교과서·에듀테크 시장의 탈출구를 AIDT에서 찾은 수십개의 교과서 발행사와 에듀테크 업체들은 곤란해졌다. 최소 수십억에서 최대 수백억을 투자한 AIDT 관계사들은 기대수익을 회수하기 어려울 뿐더러 향후 사업방향에도 난항이 생긴다. 특히 학생들은 교과서 업체의 문제집을 선호하는 형상이 짙어, 교과서 발행사들의 경우 뛰어들지 않으면 학습지 부문 매출의 손실도 예고되는 상황이었다.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다.
AI가 가져다줄 거라고 예상했던 혁신적이고 놀라운 기능들과 교육의 자유도는 여론의 반대를 의식하며 가이드라인을 촘촘히 쌓는 것으로 제한되다가, AIDT를 기존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 완성되게 했다. '2024 대한민국 교육박람회'에서 첫 AIDT 실물이 공개됐지만 기존 교육 애플리케이션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수적 기능이 주됐다. 교육부가 보안 정책상 챗GPT 같은 외산 AI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은데다 빼곡한 가이드라인을 모두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3800억원의 예산을 들였지만 누구도 승자는 없다. 교육부가 애초 원하던 방향성도 잃었고, 정책을 믿고 뛰어든 AIDT 관계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해외 선진국들의 디지털 제한 기조를 역행하면서까지 AIDT를 완성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AIDT 관계사들이 입을 피해와 교육 현장의 혼란만 우려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DT에 AI 기술이 많이 들어가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아니다. 기능을 더 넣을 수 있었지만 첫 시도임이 감안됐다"라며 "지금 AIDT가 AI라는 단어에 너무 매몰됐는데 본질은 디지털 기술이 환경에서 교육의 질을 높여주는 도구로 잘 활용되는지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비상교육 양태회 대표도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아날로그 교육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가져오는 편익과 효율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데, 기능적인 것으로만 분석되고 있다. AI 디지털교과서로 이름을 정하니 사람들이 AI가 있냐 없냐 여기에 집착한다"라고 말했다.
관계사들이 AIDT를 두고 공통되게 'AI'라는 표피적인 논의에서 벗어나기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들은 교육현장에서의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이득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실제로 수업에서의 디지털화는 세대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프로젝터나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태블릿이 이제는 학습 도구의 필수요소로 자리했다. 현장에서 요구해 도입되는 기술은 분명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마련이다. 다만 가장 숙고해 추진해야 할 '교과서'가 충분한 검토와 시범 사업 없이 'AI'라는 단어를 차용했다. 정책 혼란으로 기업과 학생들, 교육현장 모두가 피해를 봤다.
교육부는 21일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지난 2년간 정부와 민간 등에서 많은 준비를 진행해 온 가운데 갑작스럽게 법적지위가 변동되면 학교 현장 등에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것이 우려된다"라며 국회에 다시 한번 논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학교 현장 등에 가져올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선 교육부부터 AIDT의 목적과 활용방침에 대해 기조를 확실히 해야 한다. 신학기가 코앞이다.
박정현 기자 awldp219@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