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중·러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장착 스마트카 판매 금지
상무부 “국가 안보 및 개인정보 보호 목적”
전날엔 AI 반도체 수출 규제 발표...中 “강력히 반대”
빅테크 기업들도 성장 둔화 우려하며 공개적 반발
미국이 대중 AI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산 소프트웨어·하드웨어가 장착된 스마트카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확정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대중 AI 반도체 수출 규제 강화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산 소프트웨어·하드웨어가 장착된 스마트카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확정했다. /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미국이 국가 안보 우려를 이유로 AI 반도체 수출 규제에 이어 중국과 러시아가 커넥티드 차량을 판매하는 것을 차단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상무부는 적대 세력이 민감한 개인 정보를 탈취하거나 차량을 원격으로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업계는 이 같은 규제들이 오히려 중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른 나라들이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스마트카에 중·러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사용 금지

미 상무부는 14일(현지시간) 자동차의 자율주행이나 통신 기능에 중국·러시아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는 규제를 공개했다고 ABC방송 등 다수의 외신이 보도했다.

커넥티드카는 무선 네트워크로 주변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내비게이션, 자율주행,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카’로,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 중 이런 기능을 탑재하지 않은 차량은 사실상 없다.

이 규제는 차량연결시스템(VCS)이나 자율주행시스템(ADS)에 중국이나 러시아와 ‘밀접하게’ 연관된 개인 또는 단체에 의해 설계·개발·제조되거나 공급된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커넥티드 차량의 수입이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들 차량의 구성 부품을 별도로 판매하는 것도 금지했으며, 러시아나 중국과 연계된 제조업체가 미국 내에서 미국산 차량을 판매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초안은 지난해 9월 공개됐으며, 상무부는 초안 내용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업체의 의견을 일부 반영해 최종안을 확정했다.

상무부는 이번 규제가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의 기술을 탑재한 차량의 미국 판매가 늘어나 안보에 위험이 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장착된 자동차는 컴퓨터와 유사하며, 중국·러시아산일 경우 차량 소유자의 개인 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고 봤다. 즉 외국 적대 세력이 원격으로 자동차를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규제를 통해 상무부는 외국 적대 세력이 이러한 기술을 악용해 민감한 정보나 개인 정보를 탈취하지 못하도록 해 국가 안보를 보호하고 국민의 개인정보를 지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는 대체로 이에 공감하면서도 일부는 동맹국에 소재한 기업은 규제 적용을 일부 면제하거나 우대해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상무부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동맹국에 소재한 기업을 통제하거나 해당 기업이 금지 품목을 두 나라에서 조달할 수도 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규제는 소프트웨어는 2027년형 차량부터, 하드웨어는 2030년형 차량부터 적용된다. 상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 규정을 만들어 발표할 계획이다.

미국 행정부는 대중 AI 반도체 수출 규제도 강화했다. / 사진=프리픽
미국 행정부는 대중 AI 반도체 수출 규제도 강화했다. / 사진=프리픽

◆ 對中 AI 반도체 수출 강화..."AI 반도체 중국 우회 수출 원천 차단"

아울러 미국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중·러의 AI 반도체 접근을 원천 차단함과 동시에 미국의 AI 주도권을 견고히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업계는 이 규제로 인해 다른 나라들이 오히려 중국과 기술 협력을 늘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규제는 GPU로 알려진 고성능 AI 반도체 판매에 대해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쿼터가 부과된다. 이는 지난 2년간 시행된 기존 규제를 우회하려는 중국의 시도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또한 챗GPT와 같은 도구를 뒷받침하는 첨단 AI 모델 기술의 세부 정보를 미국의 소수 핵심 동맹국 외에는 공유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아울러 전 세계 국가를 세 등급으로 나눴다. 1등급 국가는 미국의 우방국으로 ▲한국 ▲호주 ▲벨기에 ▲캐나다 ▲영국 등 18개국이 포함됐다. 이들은 규제 ‘면제’ 국가로, 현재와 동일하게 반도체 수출 통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2등급 국가는 ▲인도 ▲브라질 ▲싱가포르 등 120여 개 국가로, 이들은 매년 1700개 이상의 첨단 GPU를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수입할 수 없고, 보안 심사를 거쳐야만 수입할 수 있다. 이러한 제한은 대부분의 AI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하면서도, 미국의 허가 없이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GPU 기반 데이터센터 구축을 방지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3등급 국가는 ▲러시아 ▲중국 ▲이란 ▲쿠바 ▲북한 등 미국이 무기 수출을 금지한 국가로 지정한 22개국이다. 이들 국가에 AI 반도체를 수출하려면 현재와 동일하게 미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 신청 시 거부 추정 원칙으로 심사된다.

더불어 데이터센터용 검증된 최종 사용자 제도(Validated End User, VEU)를 개정해 한국을 포함한 18개국 기업·기관에 대해서는 미국 상무부의 VEU 승인을 받을 경우 전 세계에 추가적인 수출 허가 없이 데이터센터를 설치 및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미국은 AI 반도체를 활용해 훈련된 첨단 AI 모델을 수출 통제 대상 기술로 추가했다. 첨단 AI 모델은 1경 번 이상의 계산 동작을 통해 훈련되는 AI 모델이다. 핵심 동맹 및 파트너 18개국으로의 기술 수출은 면제되며, 일반에 공개된 오픈 모델, 가장 첨단 공개 모델보다 성능이 낮은 구형 모델은 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강화된 AI 반도체 추가 수출 규제는 인공지능 반도체 및 모델이 제3국을 통해서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러몬도 장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정책은 세계를 AI 혁신으로부터 단절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첨단 AI 기술의 해외 개발만 제한하도록 설계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반도체 수출 규제는 120일 동안의 의견 수렴을 거쳐 차기 행정부에서 최종 시행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산업 성장 둔화를 우려하며 정부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 사진=엔비디아 홈페이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산업 성장 둔화를 우려하며 정부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 사진=엔비디아 홈페이지

◆ 미국의 세계적 경쟁력 약화·혁신 훼손 우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빅테크 업계는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오라클의 켈 글루크 수석 부사장은 이 규제를 “디스토피아적”이라고 표현하며 수출규제로 인해 미국 기업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에서 세계 선두 자리를 잃을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에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제한하려는 행정부의 목표는 아주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규제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규제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엔비디아의 네드 핀클 대관 담당 부사장은 성명에서 “이번 조치는 시장 결과를 조작하고 경쟁을 억압해 미국이 힘들게 얻은 기술적 이점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며 “미국은 혁신과 경쟁, 전 세계와 기술을 공유하며 승리하는 것이지, 정부의 과잉 개입이라는 ‘벽’으로 후퇴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핀클 부사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전례 없는 잘못된 AI 정책으로 주요 클라우드 컴퓨팅 산업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적으로 혁신과 경제 성장을 막을 위험이 있다”며 “임기 마지막 날 적절한 입법 검토 없이 공개된 200페이지가 넘는 규제 혼란으로 미국의 리더십을 훼손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중국 조치라는 위장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규칙은 미국의 안보 강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미 널리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포함해 전 세계의 기술을 통제하는 새로운 정책은 위협을 완화하는 대신 미국의 세계적 경쟁력을 약화하고, 미국을 앞서게 한 혁신을 훼손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 반도체 수출규제가 발표된 직후 매출 타격을 우려해 중국을 직접 방문했다. 황 CEO는 현지에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도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13일 “바이든 행정부의 AI 반도체 수출규제는 중국과 제3자간 정상적인 무역 행위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간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대변인은 “바이든 정부가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성급하게 발표한 것은 국가 안보 개념을 확대하고 수출 통제를 남용한 사례”라며 “이는 국제 다자간 무역 규칙의 명백한 위반 행위로, 중국은 이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정부는 수출 규제 조치를 남용함으로써 여러 국가의 정상 교역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시장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과학 기술 혁신,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기업에 심각한 손해를 끼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국의 정당한 권익을 단호히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는 K-반도체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장 관련 기업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겠지만, 결국 전체 시장 파이가 줄어들어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중국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AI 반도체를 제작하며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 정부도 “미국의 이번 조치가 우리 기업에 당장 미치는 영향은 없다”면서도, “업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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