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패턴 ‘급변’...습한 기후에 자라난 식물, 건조해지면서 땔감 역할
여의도 면적의 약 25배 불타...조 바이든 대통령, 대규모 재난지역 선포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미 서부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 해안가에서 시작된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첫 산불이 돌풍을 타고 번지고 있고, 추가로 크고 작은 다른 산불들이 이어지며 ‘통제 불능’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빈번하고 파괴적인 산불은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미 ABC 방송 등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인간이 계속해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에서 대규모 산불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산불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산불 10건은 모두 지난 20년 사이에 발생했다. 이 중 5건은 2020년 한 해 동안 발생할 정도로 서부 지역의 산불은 빈번해지고 대형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또 캘리포니아주 산불 피해 지역은 1970년 이후 2021년까지 172% 증가했는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피해 면적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연방정부가 2023년 11월 발표한 제5차 국가기후평가에 따르면, 미 서부 산불은 급속한 도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규모가 커지고 강렬해졌으며, 파괴력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기후변화와 도시화는 불이 잘 붙을 수 있는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조성했고, 산림의 고사를 촉진해 지표 연료의 축적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서부의 극심한 더위와 장기 가뭄은 산불의 땔감이 되는 건조한 식물의 양을 늘려 파괴적인 산불 발생을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산불도 건조함의 영향이 컸다. LA 지역은 2022년과 2023년 겨울에 폭우가 내리면서 지역 전체에 초목이 자랐는데, 이번 겨울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나무와 풀이 대부분 바짝 말랐다.
캘리포니아대학 LA캠퍼스(UCLA)의 기후학자 다니엘 스웨인 역시 최근 날씨 패턴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산불을 촉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스웨인은 “지난해 겨울은 극도로 습해 풀과 관목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이러한 생태계는 화재에 많은 땔감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고온 건조한 기후가 이번 LA 산불을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기온이 따뜻해질수록 강수량이 적어지며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전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는 지난 여름 기록적인 폭염 이후 최근 몇 달간 비가 내리지 않아 강수량이 부족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내린 비는 0.4cm에 불과했다.
이러한 환경에 더해 매년 이맘때 발생하는 산타 아나(Santa Ana) 바람이 결합해 대형 산불로 번졌다. 산타 아나 바람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내륙 사막에서 태평양으로 부는 바람이다. ‘악마의 바람’으로 불리는 이 바람은 건조하고 빠르며 매우 뜨겁다는 특성으로 인해 작은 불씨를 걷잡을 수 없는 대형 화재로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 환경보호청도 따뜻한 봄, 길어진 여름 건기, 건조한 초목으로 인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산불 발생 기간이 길어지고, 시작 시기도 앞당겨졌다고 평가했다.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인 건조함과 습한 상태의 반복적인 변화, 이른바 ‘날씨 급변(Weather Wiplash)' 현상은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더 빈번해지고 있다. 날씨 급변은 산불이나 갑작스러운 홍수 같은 재난의 강도와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겨울비가 늦어질수록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캘리포니아주 일대는 대형 산불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의 산불 시즌은 전통적으로 폭염으로 마른 풀과 관목이 산타 아나 강풍과 맞물리는 10월에 절정을 이뤘고, 이후 겨울비가 내리면서 안정되는 패턴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번 LA 산불은 ‘산불 시즌’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다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번 산불의 원인이 산타 아나 강풍뿐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콜로라도주 국립 기상청 소속 기상학자 폴 슐래터는 이번 산불이 콜로라도강 계곡 하류에 불어닥친 ‘산악파(Mountain Wave)'로 인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산악파는 공기의 흐름이 산맥을 지나갈 때 생기는 파동형 난기류다.
슐래터는 "바람의 강도와 강해진 산악파가 실제로 이런 화재를 촉진하는 요인“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지금까지 산불로 인해 최소 5명이 사망하고 약 15만 명의 주민들이 대피했다. 화마는 여의도 면적(4.5㎢)의 25배 가까운 110㎢를 집어삼켰고,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7건의 산불 중 리디아 산불만 30%의 진화율을 기록했고, 나머지 산불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개빈 뉴셤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소방 인력을 지원하기 위해 주 방위군을 투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마지막 순방을 취소하고, 캘리포니아주를 대규모 재난지역으로 선포, 연방 차원의 복구 지원을 명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재난관리청(FEMA) 재난 지원금 지급을 승인했으며, 현재 연방 소방 장비와 인력이 LA 일대 화재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신연수 기자 yshin@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