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공시 의무화 진행 중...韓 여전히 미정
트럼프 재선에 'ESG 후퇴 가능성↑'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2024년은 기후공시부터 미국 대선까지 ESG(환경·사회·거버넌스)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굵직한 이슈가 많았던 해다. 메가 트렌드로 불리던 ESG가 기업 경영의 필수 요소로 자리를 잡은 가운데 올 한 해 주목받은 주요 ESG 이슈를 정리했다.
◆ "2024년, 역사상 가능 뜨거운 해"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지난 11월 지구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62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11월까지 평균 기온은 1.6도가량 상승해 종전 최고치(2023년 1.48도)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올해 지구 표면 온도는 파리기후협정의 목표치를 벗어난 첫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보다 훨씬 아래(well below)로 유지하고, 나아가 1.5도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그러나 10년 만에 그 목표 달성에 실패하게 됐다.
C3S 부소장인 서맨사 버지스는 지속적으로 올해 1.5도 제한에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는 최근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2024년이 기록상 가장 더운 해이자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선 첫 번째 달력의 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며 "파리기후협정의 위반을 의미하진 않지만 야심찬 (기후위기)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세기 말인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2050년에는 전 세계 국가의 탄소중립 달성이 필요하다는 경로를 제시했다.
◆ 美·EU, 규제 의무화 속속...국내는 여전히 불투명
지난 4월 한국에서는 국내 ESG 공시기준 초안이 공개됐다.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KSSB)가 공개한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공시' 초안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는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를 위한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주요 공시 항목은 ▲지배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 및 목표 등이다.
금융위원회는 ESG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 도입할 것이라 밝혔지만, 시기는 여전히 미정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30일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전문가 간담회'에서 "2025년 상반기 내에는 공시 기준과 로드맵 발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해외는 규제 의무화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3월 기후공시 기준 최종안을 확정했다. 지난 2022년 기후공시 초안이 공개된 후 약 2년 만이다. 다만 이슈가 됐던 스코프3(가치사슬 전반 배출량) 공시는 제외됐다.
2022년 초안에는 스코프3가 포함됐지만, 기업들의 아우성과 공화당 의원들 반발에 SEC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기업들은 비상장 계열사까지 규정 적용이 어렵다는 점과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 등을 반대 이유로 내세웠다.
아울러 EU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의 적용을 본격화하고,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을 발효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한 '그린딜 정책'의 일환이다.
이에 한국 기업도 2028년부터는 CSRD 공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 매출액의 최대 5% 벌금과 유럽 내 공공 조달 금지 등의 강력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국내 주요 기업의 30%가량은 EU에 자회사를 두고 있어 공시 의무를 직접적으로 받게 될 전망이다.
지난 7월에 발효된 공급망 실사 지침(CSDDD)은 EU 역내에서 운영 중인 기업들에 환경과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조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법안은 2027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 중에는 삼성전자 등이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변동성은 남아있다. 지난 1일 출범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2기 EU 집행부는 ESG 규제 간소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역내 기업들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CSRD와 CSDDD 등도 재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 COP29·플라스틱 협약...찜찜한 마무리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와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협상회의(INC-5)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INC-5는 부산에서 열리는 마지막 플라스틱 협약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INC-5에는 전 세계 178개국의 정부대표단과 이혜관계자 등 3000여명이 부산이 모였다. 그러나 협상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의장이 제안한 협상 텍스트인 '제3차 비문서(Non-paper 3)'의 지위와 협약 채택 시 만장일치 합의(consensus)에 이르지 못할 경우 다수결 투표로 결정한다는 규칙을 둘러싸고 의견이 나뉘면서 각 조항에 대한 실질적 협상을 진행하는 '컨택 그룹(contact group)' 회의가 지연됐다.
이후 100여 개 이상 국가가 파나마 성명을 통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며 의미 있는 행보를 보였지만 국가간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은 자발적인 국가 차원의 노력을 강조하는 반면 오염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겪고 있는 도서국은 생산 감축 목표를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지지했다.
결국 성안에 도달하지 못하고 추가 회의를 결정하면서 막을 내렸다. 환경단체들은 개최국인 한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11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COP29에서는 참여국들이 '신규 기후재원 목표 (NCQG)'를 수립했다. 2035년까지 연간 1조300억달러 규모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확인, 이중 최소 3000억달러는 선진국이 주도해 마련키로 했다. 아울러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을 통한 개도국의 자발적 기여를 장려하기로 합의했다.
한국은 유의미한 합의가 체결되던 총회 기간에 불명예스러운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했다. 2년 연속 수상으로, 지난해 3위에서 올해는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또한 국제 기후환경단체들이 매년 발표하는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도 2년 연속으로 비산유국 중 최하위에 이름을 올렸다.
◆ 트럼프 재선이 가져올 ESG 정책 변화
지난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오는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표 친환경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는 물론 파리기후협정 재탈퇴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탄소중립과 함께 ESG가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기후 위기론을 '사기'라고 줄곧 주장했다. 더구나 대선 기간 내내 미국의 석유·가스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외쳤다. 이는 점차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에너지부 장관으로 화석연료 채굴 기업인 리버티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 크리스 라이트를 지명했다. 그는 기후위기 부정론자로,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로 불리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대통령 자문위원회 정보효율부 책임자로 내정됐다. 머스크는 테슬라가 S&P500 ESG 지수에서 제외됐던 2022년부터 ESG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ESG를 '악마' '사기' 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은 최근 개최된 '지속가능금융의 전망과 과제' 정책심포지엄에서 "미국의 경우 ESG 투자나 의결권 행사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ESG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다"면서도 "지속가능성은 기업이 존속하기 위한 시대적 명제로 지속가능금융에 대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방안들이 모색돼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라진 기자 jiny341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