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택소노미 지원, '고준위 방폐장·사고저항성 핵연료' 등 조건 갖춰야
"택소노미 미준수 시, 우리나라 입지 좁아질 것"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우리나라가 24조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상업용 원자력 본산지인 유럽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유럽연합(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조건을 갖출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리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향후 수출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부는 체코 정부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내년 3월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최종적으로 수주에 성공한다. 체코 두코바니와 테믈린 부지에 대형원전 최대 4기를 건설하는 사업은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의 쾌거"라며 "상업용 원전을 최초로 건설한 유럽에 원전을 수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15년 만의 쾌거' '24조원 잭팟' 등 원전 수출에 대한 기대감은 큰 반면 EU 택소노미 기준에 대한 우려도 있다. 당초 EU 택소노미 원안에서 천연가스와 함께 원전은 제외 대상이었다. 메탄 방출과 방사능 폐기물 처리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 달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원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해 뒤늦게 포함시켰다.
원전에 대한 조건은 까다로웠다. EU는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해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확보돼야 하고, 사고 확률을 낮춘 '사고저항성 핵연료' 상용화 등 세부 조건을 추가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도 이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는 올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EU 택소노미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확보에 대한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고준위 방폐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유럽 원전 수출에 장애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체코 원전 수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를 발판 삼아 유럽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에는 충족해야 할 필수 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고준위 방폐물에 관한 법안도 없는 상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이 발의됐다. 당시 발의된 법안은 고준위 방폐장 확보 및 확대를 골자로 했다. 그러나 여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21대 국회를 계류하다 자동 폐기됐다.
22대 국회에 다시 발의가 됐다. 다만 고준위 특별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방폐장 완공까지는 최소 37년이 걸려 빠른 통과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야 대치 상태로, 22대 국회는 개원식조차 열지 못한 상황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스경제>에 "현재 상황에서는 EU 택소노미에 포함되는 지의 여부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 택소노미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준은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소노미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당장 해외 수출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대출 등 금전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우리나라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석 위원은 큰 틀에서 '유럽 국가들의 탈원전 유턴'에 대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규 원전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어도, 실현되기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석 위원은 "체코 신규 원전은 체코 정부 예산의 8%가량을 차지한다"며 "예상 건설비가 늘어날 수 있다. 유럽 수준의 규제를 적용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전 규제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공기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라진 기자 jiny341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