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우리나라 전체 법인 수 98%, 전체 고용 규모의 6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다. 재무적 요인에 기인한 어려움이지만 인력난과 경영관리 역량 부족 등, 비재무적 요인도 상당하다.
이에 금융권, 특히 규모 면에서 여유가 있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중소기업의 경영관리 역량 강화 등, 비재무적 체질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우리은행이 선보인 '원비즈플라자'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는 다양한 경영지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공급망 금융 플랫폼이다.
국내 금융권 최초로 2022년 9월 출시한 원비즈플라자는 고객들이 구매관리와 부가기능 서비스 전반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망 관리 필요성이 높아졌으나, 거액의 시스템 구축 비용 부담 등으로 도입에 난항을 겪을 중소기업에 단물과 같다. 출시 이후 지난 3월까지 회원사가 1만곳까지 늘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이 보다 효율적으로 투명한 구매관리 가능 △전용 보증서 상품을 통해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쉽고 빠른 금융지원 △신규 공급사 탐색·MRO몰 연계 등으로 판로확대와 생산단가 절감 △납품대금연동제·중대재해처벌법 등 정책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중대 리스크 대비 가능 △세무·법률·교육 등 전문업체의 다양한 제휴 서비스 제공 등을 강점으로 꼽고 있다.
전담 정책금융기관인 IBK기업은행도 중소기업의 기계·설비매매 탐색 비용을 절감하고, 사업 편의성 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기계거래BOX' 플랫폼을 지난 3월 출시해 운영하고 있다. 기존 거래가 없어도 개인이나 기업 모두 간편하게 매물 검색이 가능하다. 향후 단순 중개를 넘어 대출신청과 안심결제 등 금융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은행은 이미 지난 2019년 생산·자금·인력·재무·마케팅 등 중소기업 경영관리 전반을 지원하기 위한 디지털 플랫폼 'IBK BOX'를 출시한 바 있다. 앞서 언급한 기계거래 BOX와 같은 달 선보인 '대출통로 BOX'는 이러한 플랫폼의 전문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추가로 업그레이드한 모듈서비스라고 보면 된다.
신한은행은 2022년 경영지원 플랫폼 '신한 BizMate'를 선보였다. 이 역시 중소기업의 인사관리, 거래처 등의 신용등급 조회, ESG 자가진단 및 컨설팅 신청 등을 지원하기 위한 디지털 플랫폼이다.
특히 분야별 전문기업 컨설턴트와 영업점 담당자가 가업승계나 서무·회계관리, 창업지원, 경영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이 같은 은행권 서비스의 타깃인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다. 국내외 경기부진으로 중소기업의 매출증가율은 2023년 이후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물가와 금리 상승으로 인한 비용증가로 순이익은 감소하고 연체율은 상승 중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2022년 1월 말 0.29%를 기록한 이후 점점 높아져 2024년 1월 말에는 0.60%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중소기업 경영난은 주로 금융 및 재무적 요인에 기인한다. 2023년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따르면, 인력난 심화와 같은 비재무적 요인 역시 경영애로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응답으로 경영난의 주요 요인은 수요위축(47.4%)·인건비 상승(31.7%)·금리 인상(30.9%) 등을 꼽았으나, 인력난 심화(22.5%) 등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주성철 수석연구원과 안소영 선임연구원은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금융회사의 비재무적 노력' 보고서에서 "재무적 요인에 따른 중소기업 경영난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프로그램은 중진공의 중소기업 정책자금 등 다수 존재하나, 디지털 전환 지연이나 인력부족에 따른 경영관리 업무 부담과 같은 비재무적 요인으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중소기업 대상 비재무적 서비스 지원 사례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가령 영국의 로이즈 은행은 중소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AI 기반 회계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매출분석이나 송장관리, 현금흐름 예측, 세금관리 등의 기능이 탑재된 '비즈니스 파이낸스 어시스턴트'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는 것이다.
일본 SMFG는 DX컨설팅·캐시리스·업무효율화·페이퍼리스 등에 대해 그룹 시너지로 중소기업 고객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원스톱 솔루션 오브 DX'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양한 니즈에 대응해 그룹 차원에서 '그룹솔루션추진실'을 신설하고, 고객 상담에서 나온 내용을 그룹사 서비스를 토대로 맞춤형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이다. 가령 자회사인 SMBC컨설팅이 디지털전환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 주고, SMFG카드가 캐시리스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는 그룹사간에 시너지를 창출하며 공동영업의 기회도 발굴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일본 MUFG와 SMFG는 비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한 자체 플랫폼을 개설하기도 했다. MUFG의 AI 비즈니스 매칭 플랫폼인 '비즈리'는 마치 우리은행의 공급망 플랫폼 원비즈플라자를 연상케 한다.
SMFG는 사업승계 목적이나 우수 인재 및 기술력 확보를 위한 '얼라이언스 리서치' 플랫폼을 운영한다. 사업 매각·매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기업간 접촉이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인데, 계약체결시 사업 매수 기업으로부터 3% 수수료를 수취한다.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면,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일부 대형은행에서 자체적으로 중소기업 지원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서비스 존재 여부를 모르거나, 금융권과 관계가 약한 기업의 경우 이용이 제한적인 한계점이 존재한다"라고 미진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시장 구조가 분절된 탓에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는 데 대해서 시장 참여자들의 지속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공공기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과의 연계, 적극적인 홍보 등 지원 서비스에 대한 중소기업의 접근성을 제고해 '회색지대'를 좁혀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아울러 경영지원 서비스는 이뤄지고 있으나,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더 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진단했다. 금융회사가 보유한 IT 전문인력을 활용해 중소기업을 위한 디지털 솔루션 도입 및 환경 구축을 지원한느 컨설팅 프로그램 운영을 검토해 볼만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은행의 경우 현행법상 금융업무와 관련 없는 회사의 소유는 불가능하며, 수행 가능한 비금융 부수업무도 데이터분석·판매 서비스, 정책자금 추천 및 공급망 관리 플랫폼 서비스 등으로 한정되는 등 규제 벽이 높다. 규제가 완화된다면 다양한 비금융기업과 합작설립이나 M&A 등을 통해 관련 지원 역량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의 실제 니즈에 부합하는 서비스 개발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유기적인 지원체계 구축이 단순히 시혜적이라든가, 대상인 중소기업에게만 득이 되는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 또한 기업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신규 영업기회의 포착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