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시하 기자] BMW코리아가 운영하는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는 BMW 고성능 차량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여 일반 도로에서 느낄 수 없는 주행 성능을 경험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드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끝까지 밟아 긴급 제동하는 방법, 젖은 노면에서 차량을 일부러 미끄러뜨린 후 카운터 스티어링을 통해 정상 주행으로 돌아오는 방법, U자 형태의 헤어핀 구간에서 차량을 최대한 트랙에 붙여 주행하는 방법 등 액션 영화에서 볼 법한 상황이 연출된다.
참가자들이 실제로 주행하기 전에 전문 강사로부터 충분히 설명을 듣고 데모 주행으로 사전 연습도 하지만, 대부분 각각의 미션을 성공하지는 못했다. 젖은 노면에서 드리프트를 시도하다가 차량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직선주로에서 악셀레이터를 너무 세게 밟아 속도를 줄이려다 스티어링 휠과 차량이 흔들리는 아찔한 경험도 할 수 있다. 신기한 건 이러다 사고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강사의 지시에 따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량이 극한 상황에서 성능을 내고 운전자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타이어가 꼽힌다. 눈길처럼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제때 멈출 수 있는 제동력과 직선주로와 곡선주로를 빠르게 달려도 차량이 노면과 밀착되는 접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차량에는 한국타이어가 장착돼 있었다. BMW 드라이빙 센터가 기술력을 인정해 10년째 고수하고 있다는 한국타이어의 기술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16일과 17일에 걸쳐 테크노플렉스, 한국테크노돔, 한국테크노링을 방문했다.
◆ 한국타이어 비전과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컨트롤타워, 테크노플렉스
가장 먼저 50여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괄하고 있는 경기도 판교 ‘테크노플렉스’를 찾았다. 이곳은 4개의 글로벌 지역본부와 30여 개의 해외 지사, 8개의 생산시설과 5개의 연구개발 센터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건물 외관을 보는 순간 ‘힙(HIP)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힙하다는 말은 개성과 감각이 있고 최신 유행을 선도한다는 뜻을 가진 신조어인 동시에 한국타이어의 기술 철학이기도 하다. ‘Hankook Innovative Performance(HIP)’를 기반으로 타이어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를 향해 수준 높은 기술력을 추구하는 한국타이어의 비전이 건물 외관에서부터 느껴졌다.
내부로 들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한 공간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무실과 전체가 유리로 이뤄져 개방감을 느낄 수 있는 회의실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타이어 전문 기업이자 8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기업이라기보다 소위 MZ세대 느낌이 물씬 났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직원들은 언제든지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으며 열린 공간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혁신을 지향하는 공간이 글로벌 타이어 시장을 선도하는 차별화된 제품과 전략을 만들어 내는 비결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글로벌 타이어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7위를 차지해 국내 타이어 업체 중 유일하게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이탈리아 타이어 업체 피렐리와 6위 자리를 두고 순위를 다투고 있지만 전기차 타이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업계에서는 곧 5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타이어는 몇 년 사이에 급속하게 성장한 전기차 타이어 시장을 예측하고 관련 제품을 빠르게 출시한 결과 시장 주도권을 잡았다. 지난 2022년에는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온’을 선보인 데 이어 세계 최초로 전기차 전용 타이어 풀 라인업을 갖췄다. 아이온 제품에는 전기차 타이어와 관련된 58개 특허 기술이 적용돼 전기차의 특징과 성능을 배가시킨다.
그 결과 한국타이어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6, 포르쉐 타이칸, 테슬라 모델Y, BMW i4, 아우디 Q4 e-트론 등 전 세계 주요 완성차 브랜드의 여러 전기차에 신차용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 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 전기차 레이싱 대회 ‘ABB FIA 포뮬러 E 월드 챔피언십’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공급 첫해부터 탁월한 접지력과 핸들링 성능으로 차량 성능을 완벽하게 뒷받침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는 성과를 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타이어 EV마케팅팀 김승현 팀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에서 테스트한 결과 아이온 에보 제품이 전기차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현재 시판 중인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성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한국 시장에서 메인으로 판매되고 있는 아이온 에보 AS 제품 역시 비교군 평균치 대비 최대 25% 이상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주행 안정성에서 20% 이상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 제품 혁신과 원천기술 개발의 산실, 한국테크노돔
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테크노돔은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국가에 있는 연구개발 센터를 이끌고 있는 곳이다. 건물 외부가 마치 물 위에 우주선이 내려앉은 것처럼 범상치 않았는데 내부 역시 영화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사무실처럼 미래 지향적인 모습이었다. 이곳에서는 기초·응용 연구를 통한 원천기술 확보와 미래 신기술 연구가 이뤄지고 80여 개의 실험실이 유리로 이뤄져 외부에서도 어떤 실험을 진행하는지 볼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타이어 재료 시험실이었다. NMR 시험실에서는 강한 자성을 이용해서 타이어 원소들의 화학적인 구조를 분석하는 곳으로, 사람이 병원에서 MRI를 찍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또 재료 시험실에서는 많은 전자현미경을 배치해 타이어 재료에서 필요한 원소를 찾기도 하고, 공급한 이후에 문제가 발생한 타이어를 살펴보면서 공정 과정 중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주행 중에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타이어 소음을 연구하기 위한 시험실도 갖추고 있었다. 벽면과 천장은 삼각뿔 모양의 스펀지로 둘러싸여 있었고 차체는 움직이지 않고 바퀴만 돌아가도록 하는 장치인 섀시 다이너모미터가 설치돼 있었다. 최대 직경 3m의 거대한 드럼은 시험 규정 노면, 거친 아스팔트 노면, 부드러운 아스팔트 노면 3가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한국타이어의 레이싱 타이어 설계·개발 과정도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모형 레이싱 차와 실제 레이싱 경기에 출전했던 차량 2대가 준비돼 있었다. 차량과 연결된 컴퓨터에 타이어, 차량, 운전자, 서킷 등 총 4가지의 정보를 입력한 후 가장 짧은 랩 타임이 나오는 최적의 조건을 찾는다. 실제 서킷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면 한 번에 비용이 8억에서 10억원 가량 드는데 이곳에서 먼저 충분한 테스트를 하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혁신 제품을 완성하는 테스트베드, 한국테크노링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충남 태안에 위치한 ‘한국테크노링’이다. 이곳은 슈퍼카부터 트럭이나 버스까지 모든 종류의 차량을 통해 타이어를 테스트할 수 있는 곳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이자 세계에서 3번째 규모를 자랑한다. 축구장 약 125개 크기에 총 13개의 다양한 트랙을 갖춰 한국타이어의 혁신 인프라를 완성하는 최종 테스트베드라고 불린다. 한국테크노링 관계자는 운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한 드라이빙을 느끼게 하겠다는 목표로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주행시험장은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곳이다. 한국타이어는 전 세계에 10곳의 주행시험장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한국테크노링뿐 아니라 겨울철 평창 지역에서 임시 주행시험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약 62대의 다양한 차량을 보유하고 일반 승용차를 포함해 트럭, 버스 등도 테스트할 수 있다. 현재는 공기를 주입하지 않는 ‘에어 리스 타이어’와 타이어 내에 복합 센서를 장착한 ‘인텔리전트 아이 솔루션 타이어’를 테스트하고 있다. 에어 리스 타이어는 2단계 시제품을 생산해 현대 로템에 공급한 상태다.
이날은 사이클 경기장처럼 38도 기울어진 뱅크부에서 포르쉐 타이칸 차량을 시승하며 타이어의 성능을 느껴볼 수 있었다. 시속 200km/h가 넘는 속도에도 차량이 흔들리지 않았고, 곡선주로에서도 차량이 바깥쪽으로 밀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 특히 38도로 기울어진 뱅크부에서는 기울어진 각도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차량이 노면과 밀착되서 달리는 경험을 했다.
동승자들은 "이런 주행로에서 이런 속도로 달렸는데 어떻게 차량이 안 밀릴 수 있냐"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운전을 담당한 전문 드라이버가 일부러 차량을 미끄러뜨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타이어의 뛰어난 접지력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타이어 측은 여러 주행 환경과 노면에서 테스트를 반복하며 데이터를 축적하고 반복재현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시하 기자 seeh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