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조립·패키징 '숨은 강자'… 인력·정치적 문제는 리스크
[한스경제=김정연 기자] 반도체를 둘러싸고 미·중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피해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신설하거나 투자하고 있다.
5일 미국 방송사 CNBC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간 기술 전쟁으로 IT 기업들이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면서 말레이시아가 AI 기술 및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말레이시아에 칩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70억달러(9조4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이라고 지난 2021년 12월 밝혔으며, 올해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인텔은 1972년 말레이시아 북부 페낭주에 160만달러(21억6000억원)를 투자해 처음으로 해외 조립공장을 설립했다. 인텔은 이후 말레이시아에 테스트 시설과 개발 및 디자인센터를 추가로 설립했다.
미국의 또 다른 반도체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도 지난해 9월 페낭에 중앙통제센터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 생산공장 운영을 위한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마이크론도 지난해 페낭에 두 번째 조립·테스트 공장을 건설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도 말레이시아에 31억달러(4조원)를 투자했다.
독일 최고의 반도체 회사인 인피니언도 2022년 말레이시아 쿨림에 세 번째 웨이퍼 제조 공장을 건설했다. 이후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 공장 확장을 위해 54억달러(7조3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주요 협력업체인 ‘뉴웨이즈’도 지난달 클랑에 새로운 생산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로 생산지를 옮기는 배경에는 미·중 반도체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다. 영국 언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을 대체할 공급원을 찾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모색하면서 말레이시아는 놀라운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1970년대 외국 반도체기업 유치로 '동양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기도 했던 말레이시아는 지금도 반도체 패키징, 조립, 테스트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13%를 점유하며 세계 6위의 반도체 수출국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숨은 강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싱가포르 벤처캐피털 인시그니아 벤처스 파트너스의 잉란 탄 파운딩 매니징 파트너는 “말레이시아의 장점은 포장, 조립, 테스트 분야의 숙련된 노동력과 상대적으로 낮은 운영비용”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 외국 기업들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도 미국의 제재를 피해 말레이시아로 생산지를 옮기고 있다. 말레이시아 반도체산업 협회는 “많은 중국 기업이 말레이시아를 중국의 ‘플러스 원’으로 칭하며 생산시설 일부를 이주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전문기업 인베스트페낭에 따르면 현재 페낭에는 55개 중국 기업이 반도체 관련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세리 웡 시우 하이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 협회 회장은 “최종 조립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진행하면 원산지가 말레이시아로 바뀌면 일부 제품의 경우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업체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만 엔지니어링 인력이 부족한 점은 한계로 꼽힌다. 다수의 말레이시아 반도체 관련 기술 및 지능 인력들은 급여의 불만으로 인해 인접국인 싱가포르로 이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말레이시아의 제조업체 평균 급여는 500달러로 전제 평균 급여보다 낮은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정치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FT는 “말레이시아 외국인직접투자(FDI)의 가장 큰 기여자인 미국이 중국 기술에 대해 단속할 수도 있다”며 “일부 분석가와 업계는 말레이시아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장비가 제한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연 기자 straight30@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