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사고 피해액 최대 30억달러...선주·선박관리사, ‘타이타닉호’법 근거로 면책 요청
“보증 끝난 선박 관리주체는 기본적으로 선주...지리멸렬한 분쟁 시작될 것”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컨테이너선 충돌로 붕괴한 교량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옆에서 크레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컨테이너선 충돌로 붕괴한 교량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옆에서 크레인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공

[한스경제=김우정 기자] 지난달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에서 대형 컨테이너선 ‘달리(Dali)호’가 프란시스 스콧 키(Francis Scott Key Bridge) 교량과 충돌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천문학적인 보상금액과 수리기간이 최소 5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사고 책임 대상에 대한 분쟁이 시작됐다.

현지 당국은 사고의 주원인으로 전력 계통문제를 지목했다. 싱가포르 해양항만청에 사고 직전 동력을 상실했다는 보고가 접수됐고 이후 선박이 방향을 유지하지 못해 교량과 충돌했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사고 직후 볼티모어항 관계자는 “달리호가 출항 전 이틀 동안 심각한 전력 문제를 겪었다”고 말했다.

사고 선박인 달리호는 HD현대중공업이 울산조선소에서 건조해 2015년 인도한 선박이다. 선박의 주 엔진은 독일의 선박 에너지설계 업체 만(MAN)의 라이선스로 HD현대중공업이 제작한 B&W 95950ME-C9 디젤엔진이며 발전용 보조엔진은 HD현대중공업의 자체 브랜드인 힘센 엔진 9H32/40이다. HD현대에서는 해당 선박이 인도된 지 9년이 넘은 선박이고 그간 문제가 없었던 만큼 선박 자체 결함은 없다고 밝혔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통상 선박과 엔진의 보증기간은 인도 후 1년”이라며 “보증기간 이후의 선박의 주요 부품이나 장비의 경우 선주가 직접 장비회사를 통해 관리하고 선체에 대한 수리나 관리도 수리조선소를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증이 끝난 선박의 관리 주체는 기본적으로 선주이며 운항을 요구한 용선주, 검사기관인 선급, 항만청 등 다양한 기관의 관리책임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지리멸렬한 분쟁이 시작될 여지가 더 높다”고 정리했다.

달리호의 선주는 싱가포르의 ‘그레이스 오션(Grace Ocean PTE)’이며 선박관리사 또한 싱가포르의 ‘시너지마린(Synergy Marine PTE)’이다.

이번 사고에 청구될 금액은 역대 최대 해상보험액수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인 모닝스타(Morningstar DBRS)는 보고서를 통해 이번 붕괴사고는 지난 2012년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Costa Concordia)’호의 난파사고로 부과된 약 15억달러를 넘어선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보험 손실액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금융서비스기업 바클리즈(Barclays)는 이번 붕괴사고로 잠재적인 보험청구액이 10억~30억달러(약 1조3475억~4조425억원)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 “교량 손상에 대한 청구액만 12억달러에 이를 수 있으며 사망책임은 총 3억5000만~7만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일부 비즈니스 중단 청구도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달리호의 선주와 선박관리사는 미국 지방법원에 사건과 관련된 면책이나 책임 제한을 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청원서에는 “해당 사고는 청원인(선주와 선박관리사)이 책임질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의 과실, 태만 또는 관리 부족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며 “모든 책임은 선박 가치와 화물 소유자가 지불해야 하는 화물의 가치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타이타닉(Titanic)호’법으로 알려진 ‘책임제한법(Limit of Liability Act)’에 근거한다. 책임제한법은 선주는 자신의 선박이 사고에 연루된 경우 지불해야 하는 금액을 선박 가치로 제한할 수 있다. 선주가 보고한 선박가치는 4367만달러(약 585억5405만원)이다.

한편 책임제한법은 정기적으로 거론되지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다. 타이타닉호는 이 법으로 총 1600만달러에 달하던 손해배상금을 66만4000달러로 합의한 바 있다.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달리호가 2020년 중국 조선소에서 개조한 뒤 무리한 운항일정을 수행했고 파나마운하 등을 지날 때 저가의 선박유를 사용해 기자재가 손상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달리호의 용선사는 덴마크 선사 머스크(Maersk)이며 지난 2020년 중국 수리조선소인 이우롄 조선사(Yiu Lian Dockyard)에서 진행됐다.

글로벌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Clarksons)에 보고된 사고선박의 운항기록을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사고 선박은 무리한 운항일정을 소화했다. 최근 3년간 평균 운항거리는 10만5637nm로, 평균 대비 19.8%가 많으며 기항 1회당 운항거리는 48.1%가 길다.

변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운항 기간이나 거리가 길다고 문제가 생긴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리한 일정상 수리나 관리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일각에서는 오염 연료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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