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금융사 보유 금지‧CVC 규제도 투자활성화 저해 주장
[한스경제=조나리 기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동일인 지정제도, 지주사의 금융사 보유 금지와 같은 기업들의 규제 사항 20건에 대한 개선을 정부에 건의했다. 한경협은 “그간 공정거래법은 경제촉진보다 대기업 규제에 치중한 면이 있다”면서 “40년이 돼가는 대기업집단 규제를 현 경영환경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38년 된 ‘동일인 지정제도’ 도입 취지 상실”
한경협은 6일 회원사의 의견을 수렴해 ‘2024년 공정거래 분야 20대 정책과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건의했다. 특히 한경협은 기업들이 가장 크게 애로를 호소하는 ‘동일인 지정제도’와 관련, 이미 도입 취지를 상실한 ‘낡은 규제’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법 ‘동일인 지정제도’는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회사 또는 총수(자연인)를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동일인 지정제도란 기업집단의 총수를 정부가 지정하는 제도다. 동일인을 중심으로 대기업 집단이 지정되고, 계열사 현황, 내부거래 내역, 의무공시, 일감몰아주기, 각종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를 받게 된다.
한경협은 “동일인 지정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도입시기인 1986년과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지금의 경영환경을 고려한다면 이미 도입 취지를 상실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동일인 지정제도는 당시 고도 성장정책에 따른 경제력 집중과 이로 인한 시장경쟁 저해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특히 한경협은 ‘동일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은 매년 계열사의 주식소유현황, 재무상황, 기업결합 등을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 자료 누락이나 오기만으로도 동일인(자연인 한정)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에 한경협은 자연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지주사와 같은 기업집단의 핵심기업을 동일인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한경협은 또한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를 금지한 규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고객 자금으로 대주주의 지배력을 확장할 수 없도록 금융회사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 자금을 수신하지 않는 여신금융사(카드사, 캐피탈 등)도 보유 금지 대상에 포함해 규제 목적에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달리 지주사가 모든 형태의 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국가도 있다. 일본의 유통 지주회사 ‘세븐&아이(SEVEN&i)홀딩스’의 경우 지주사들이 여신금융사뿐만 아니라 은행까지 보유해 사업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경협은 “단기적으로는 지주사가 여신금융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금융사 보유 금지 규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스타트업 투자활성화 위해 지주사 CVC 풀어야”
‘지주회사 등이 아닌 계열사(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 투자 제한’도 기업들이 개선을 원하는 규제 중 하나다. 공정거래법 제18조 제7항에서 규정하는 ‘지주회사등’이란 자회사·손자회사·증손회사다. 현행법은 일반지주회사의 기업주도형 벤처 캐피탈(CVC) 투자조합이 투자한 벤처회사의 주식·채권을 ‘지주회사등이 아닌 계열사’가 취득·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기업주도형 벤처 캐피탈은 회사 법인이 대주주인 벤처투자 전문회사로, 통상 CVC는 동일 그룹 내 계열사와 그룹 외부출자자의 펀딩을 받아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
때문에 ‘지주회사등이 아닌 계열사’는 시업시너지가 예상되는 벤처기업이 있더라도 추후 주식·채권을 인수할 수 없어 CVC에 출자를 꺼린다는 지적이다. 한경협은 “이는 대기업 자금을 벤처업계로 유도하기 위한 제도 취지에 맞는 않는 것”라며 “대기업 계열사의 투자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지주회사등이 아닌 계열사도 CVC가 투자한 벤처기업의 인수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경협은 기업집단 소속 금융사 및 공익법인에 대한 의결권 제한도 지적했다. 현행법은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가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기업집단 소속 금융사들은 핀테크 회사를 인수해도 의결권 행사가 불가해 핀테크 회사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공익법인도 국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원칙적으로 행사할 수 없다. 이는 대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저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게 한경협 측의 설명이다. 공익법인을 통해 대주주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공익법인 이사회 구성원 중 특수관계인과 공익법인과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번 규제 사항 건의에 대해 한경협 관계자는 “매년 정부에 규제개혁 종합건의를 하고 있고 그중 공정거래 분야가 있었다”면서 “각 정부 부처에서 정책 방향 수립을 하는 때인만큼 기업들의 애로사항이 가장 많은 공정위법 규제 사항을 모아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조나리 기자 hansjo@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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