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2022년 기준금리가 급격히 인상된 데 이어 올 한해는 이와 같은 고금리 상황이 시차를 두고 가계대출 금리에 반영되고 있다. 이처럼 고금리로 이자부담이 늘어난 탓에 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이래저래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 위기의 뇌관처럼 여겨지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이후 2023년 들어 잔액 기준 코픽스 금리는 연 3.5%를 초과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코픽스는 농협·신한·우리·SC제일·하나·기업·국민·씨티 등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다.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 은행채 등 수신상품 금리가 인상 또는 인하될 때 이를 반영해 상승 또는 하락한다.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잔액 기준 연 5.%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시차를 두고 반영된 결과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2021년 8월 26일 기존 0.50%에서 0.75%로 기준금리를 25bp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2023년 1월 13일 3.50%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내내 기준금리 인상 랠리를 이어갔다. 올해 들어 연속 동결 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당분간 고금리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예금은행 가계대출의 변동금리 비중은 지난 9월 잔액 기준으로 70.3%에 달한다. 변동금리 대출상품의 금리 조정 주기는 3개월~1년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반영되기까지 그만큼 시차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지난해 연속 기준금리 인상 행보가 멈춘 이후 올해 1분기와 2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가구당 평균 이자비용 지출이 지난해 1분기와 2분기에 비해 각각 36%와 38%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지금과 같은 고금리 상황은 차주의 부채상환여력을 악화시키고, 연체나 부실위험이 높은 한계차주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와 올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분포를 비교해 보면, 전반적으로 분포가 우향이동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즉 DSR 20% 이상인 차주 비율이 43%에서 48%로 늘어났고, 40% 이상인 차주 비율도 18%에서 22%로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DSR과 부실 가능성은 서로 상관관계가 깊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DSR 분포가 우향이동했다는 것은 한계차주의 비율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현열 연구위원은 30일 이상 연체 경험이 있는 차주의 소비 경로를 살펴보고, 연체를 경험할 정도로 이자상환부담이 극심하게 가중된 차주의 소비는 큰 폭으로 감소할 수 있으며, 그 기간도 1년 이상 지속된다고 밝혔다.
30일 이상 연체를 경험한 차주의 비율은 지난해 말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2분기엔 1.8% 수준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수치가 지금 당장 위급한 정도라고 보긴 어렵다. 과거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이 수치는 평균 3% 가량이었던 적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준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정도이다.
30일 가량의 비교적 단기간이나마 연체를 겪었다는 것은 해당 차주가 대출 상환에 어려움이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2분기 기준으로 과거 18분기 중 한 번이라도 30일 이상 연체를 경험한 차주는 연체가 없는 차주에 비해 평균적으로 소득 수준은 낮으며 DSR은 매우 높다.
연체 경험이 있는 차주의 소비수준은 연체 발생 후 해소된 직후 1분기 동안 평균 대비 26%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4분기가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평균에 비해 18%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곧 한번 연체에 진입하게 되면 연체 해소 이후에도 장기간 소비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석이다.
김 연구위원은 “고금리로 인한 한계차주의 소비부진이 1년 이상 장기화될 위험을 시사하므로, 향후 차주 단위의 지속적인 부채 수준 관리를 독려하고 한계차주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금리와 물가에 대한 전망 등과도 맞물리는 주장이다. 고금리 상황이 언제 해소될 것이며, 시장금리에 반영되기까지 시차도 감안해야 하고, 결국 고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며 물가는 물가대로 여전히 높은 가운데 이는 다시 실질소득 증가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악순환은 이자상환여력은 물론, 소비여력도 제약하는 요인이다.
방지책 마련을 위해선 차주 단위에서의 부채 수준 조정 및 미래 소득흐름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필요하다. 향후 경기둔화가 예상보다 더욱 심화한다면, 한계차주 중 상환능력이 한시적으로 떨어진 이들에 한해 원리금의 일부 상환유예 등으로 부실을 막고 소비여건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지원책에 대해 일각에서 반론의 여지가 있다는 점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단지 형평성 문제만 제기되는 차원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대출상환 지원은 장기적으로 가계대출 시장의 자생적인 조정기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소비위축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단지 우리나라 경제만의 상황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최대의 소비주간을 맞아 다양한 분석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추수감사절 이후 다음 주 월요일 사이먼데이까지 5일, 특히 블랙프라이데이와 사이먼데이가 미국 소비시장에서 가장 큰 매출이 기록되는 날이다.
실제로 양일 온라인 소비는 사상 최대 규모로 폭발했다. 블랙프라이데이 온라인 매출은 98억달러로 전년대비 7.5%가, 사이먼데이 매출은 7% 늘어 124억달러를 기록했던 것이다. 미국 인터넷 소매업체 85% 이상이 온라인쇼핑 서비스 제공을 위해 사용하는 플랫폼 ‘어도비 익스피리언스 클라우드’의 분석업체인 ‘어도비 애널리틱스'가 예상한 매출액은 각각 96억달러와 120억달러였다. 이를 상회하는 결과를 낸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4분기 들어 소비가 되살아난 게 확인된 결과라는 낙관론이 대두하고 있다. 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보다 더 가파른 금리인상 행보를 보였던 미국이기에 경기 연착륙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물가상승률 둔화가 확인되고, 소득증가율이 물가상승률을 앞지르며 이에 따라 가계의 구매력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거론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US BEA)이 집계하는 미국 주간 신용카드 매출액을 보면 블랙프라이데이를 앞두고 급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2020년 3월을 기준으로 10월 마지막 주는 +8.6%였는데, 11월 첫째 주와 둘째 주는 각각 -12.7%, -8.1%를 기록했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블랙프라이데이 직전 2주는 할인을 기다리는 대기수요로 인해 소비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그 낙폭이 -5%p 수준에서 -20%p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메리츠증권 황수욱 애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10월부터 소매판매 데이터가 감소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소비 사정이 추세적으로 둔화되고 있거나 △할인 소비를 불태우기 위해 직전까지 더 강하게 소비를 제약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양쪽 어느 얘기든 미국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해석도 곁들이고 있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