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회사 차리고 ‘정기예금 들라’며 투자금 유치
6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 불구속재판에 집행유예 선고
재판 중 투자금 유치해 돌려막기... 피해금액 1조원대로 늘어
투자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전통적인 다단계 금융사기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주식·코인 사기도 부쩍 늘었다. 재벌 3세를 사칭하며 유명인과의 혼인을 미끼로 투자사기를 일으킨 인물마저 등장한 판국. 국내 투자사기 사건 중에는 ‘조희팔 사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수조원대 사기를 저질렀음에도 해외로 도주, 이후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범의 처벌과 피해자 구제 또한 멈춰섰다. 그래서일까, 피해자들의 눈물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2의 조희팔 사건’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이들 사건 역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피해 규모 대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잊어서는 안 될, 재발되어선 더더욱 안 될 ‘제2의 조희팔 사건’들을 조명하는 이유다. <편집자주>
2016년 6월 28일. 검찰이 희대의 사기사건 ‘조희팔 사건’의 재수사를 마무리했다. 2012년 5월, 경찰이 조희팔의 사망 사실을 발표한 지 4년만이다. 조희팔은 2004년 10월부터 2008년 10월 사이 의료기기 대여업을 앞세워 7만여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5조715억원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조희팔이 해외로 도주 중 사망하면서 피해자들의 희망도 함께 사라졌다.
경찰의 조희팔 사망 발표 전, 혹은 발표 직후 비슷한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IDS홀딩스와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사건은 2011년부터, MBI 사건은 2012년 말부터 투자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시기상으로 조희팔이 해외로 도주 행각을 벌일 당시 범행을 위한 설계를 짰을 것으로 보인다. 즉, 후기 사건 주범들에게 조희팔은 1순위 ‘롤모델’이었다.
◆ 제2의 조희팔이 떴다… IDS홀딩스 김성훈은 누구?
IDS홀딩스 사건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외환거래를 통한 고수익을 미끼로 1만2000여명의 피해자들을 속여 1조960억원의 투자금을 거둬들였다. 조희팔 사건 이후 첫 조 단위 사기사건이다.
IDS홀딩스 김성훈 대표는 2008년 IDS홀딩스의 전신인 ‘IDS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는 ISD아카데미 설립 전 ‘마케팅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며 다단계 업체들의 수익 프로그램을 설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IDS아카데미에서 금융선물 파생상품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2009년부터는 NH선물을 통해 FX마진거래를, 2010년엔 홍콩에서 수수료 사업을 벌였다.
그는 홍콩 경제 잡지 커버를 장식하면서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투자설명회에서 “돈은 제가 벌어 드리겠다. 믿고 따라 오면 부자를 만들어주겠다”는 말로 피해자들을 꼬드겼다.
IDS홀딩스 모집책들은 투자금에 대해 ‘정기예금’이라고 강조했다. 수익률도 허황되지 않았다. 은행이자보다 조금 더 준다는 것. 다금융사들이 몰려있는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연예인들과 정치인들, 검경 관계자들의 축사와 화환이 신뢰감을 불어줬다. 피해자들 중에는 대출을 받아서 투자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계산상 은행에 지급할 이자보다 투자로 거두는 수익이 더 컸던 탓이다.
IDS홀딩스 피해자 A씨는 “본사도 가보니 그럴싸하고, 그 비싼 빌딩을 사무실로 쓰고 있더라”며 “더구나 금융회사라는데, 금융회사는 마음대로 차릴 수도 없고 법적으로 설립이 까다롭지 않나. 사기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IDS홀딩스 사건과 조희팔 사건의 사기금액은 4조원 가량 차이가 나지만 범죄수익만 보면 내용이 달라진다. 범죄수익이란 사기로 편취한 돈에서 피해자들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돌려준 돈을 차감한 것으로, 조희팔 사건의 범죄수익은 약 2900억원이지만 IDS홀딩스는 약 6000억원이다.
원금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모든 피해액을 합산한 순수피해액도 두 사건이 비슷하다. 조희팔 사건의 순수피해액은 약 8400억원, IDS홀딩스 사건은 약 7900억원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고합932 사건 판결문) IDS홀딩스 사건이 피해자들의 분노를 산점은 비난 돈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IDS홀딩스 사건이 처음 문제가 됐을 당시 피해액은 600억원대였다. 그렇다면 어쩌다 600억원의 피해액이 1조원대로 불어났을까?
◆ 672억 사기에 집행유예… 재판 중에도 투자금 돌려막기
2014년 김성훈은 결국 사기 행각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그해 8월 법원은 김성훈의 구속영장신청을 기각했다. 무려 672억원의 사기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속재판을 받게된 그는 2015년 6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600만원도, 6000만원도 아닌 672억원의 사기 행각에 대한 법원의 처분이다.
다음해 열린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더 줄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것. 같은 해 8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서 김성훈은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다. 김성훈 대표가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때도, IDS홀딩스의 사기 행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김성훈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무죄라도 받은 듯 투자설명회를 열며 적극적으로 투자를 권유했다.
A씨 역시 김성훈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난 뒤 투자를 했다가 피해를 입었다.
A씨는 “재판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면서 “집행유예를 받거나 불구속 결정이 나오는 것에 대해 마치 죄가 되지 않는 것처럼 투자자들을 회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IDS홀딩스 고문 변호사도 투자자들을 모아 ‘이런 결론(집행유예)은 무죄나 마찬가지다’라고 하더라”며 “일반 사람들은 사건번호도 모르니까 모집책들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시 법원은 왜 이 같은 선고를 내렸을까? 법원은 피해 금액 대부분을 피해자 측에 반환했다는 김성훈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반환된 피해 금액은 또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끌어 모은 투자금이었다. 돌려막기로 사기 행각을 벌여 재판을 받으면서 또 다시 돌려막기로 피해 규모를 키운 셈이다.
결국 김성훈이 대법원까지 재판을 받는 도중 IDS홀딩스 사건 피해 금액은 672억원에서 무려 1조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금융피해자연대 이민석 고문변호사는 “다단계사기 주범이 재판 중 피해 금액을 변제했다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마련했는지 조사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면서 “결국 법원과 수사 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피해 규모를 1조원으로 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태가 커지가 검찰은 김성훈을 다시 기소했다. 그나마 이번엔 구속 결정이 떨어졌다. 김성훈이 첫 번째 사기 사건 재판에서 집행유예 확정을 받은 지 한 달 만이었다. 김성훈은 2017년 2월 1심에서 12년을 선고 받았고, 9월에 열린 2심 선고에서 15년으로 형량이 늘었다. 같은 해 12월 대법원은 김성훈의 15년형을 확정했다.
지금도 IDS홀딩스 피해자 중에는 피해구제를 위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나마도 여력이 없는 피해자들은 여전히 힘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A씨는 검찰과 법원에 분통을 터뜨렸다.
“많은 피해자들이 죽었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보도는 나온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사건이 아니었는데, 검찰과 법원이 잘못해서 더 커진 것 아니겠냐. 처음 600억원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실형이 선고됐다면 피해가 더 커지진 않았을 거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
조나리 기자 hansjo@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