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죄, 형사 공판 부동의 1위… 솜방망이 처벌 원인 거론
피해자들 고통 여전, 커지는 제도 개선 목소리
투자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전통적인 다단계 금융사기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주식·코인 사기도 부쩍 늘었다. 재벌 3세를 사칭하며 유명인과의 혼인을 미끼로 투자사기를 일으킨 인물마저 등장한 판국. 국내 투자사기 사건 중에는 ‘조희팔 사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수조원대 사기를 저질렀음에도 해외로 도주, 이후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범의 처벌과 피해자 구제 또한 멈춰섰다. 그래서일까, 피해자들의 눈물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2의 조희팔 사건’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이들 사건 역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피해 규모 대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잊어서는 안 될, 재발되어선 더더욱 안 될 ‘제2의 조희팔 사건’들을 조명하는 이유다. <편집자주>
[한스경제=조나리 기자] ‘고수익 보장’, ‘원금 보장’, ‘전문가 사칭’, ‘환전 투자’, ‘허위 사이트 유인’… 포털사이트에 ‘투자사기’ 검색 시 주로 나오는 키워드들이다. 전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 씨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지만, 투자사기 사건은 이 사건 전에도, 지금도 하루에 수십 건씩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내 사기 사건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월간 고소·고발 건이 5만건을 육박, 현재까지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개인간 사건 외에도 불특정 집단을 상대로 대규모 사기를 저지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로 투자를 미끼로 한 범죄인데, 피해액은 물론 피해자 수도 적지 않아 경제적, 사회적 파장도 막대하다. 피해자들은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의 경우, 수사도,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일상으로 스며든 투자사기 위험
은행법 등에 따라 허가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유사수신 사건이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신고센터에 접수된 유사수신 신고 중 혐의가 구체적인 사건은 65건으로, 전년 대비 6.6% 증가했다.
유사수신업자는 주식·가상자산 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안전한 투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악용한다. 일부는 금감원, 특허청, 서울보증보험과 협약이 체결돼 원금이 보장된다는 허위광고로 투자자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또한 아트테크, NFT(대체불가토큰)과 같은 신종 분야 투자사기도 적발되고 있다. 아트테크의 경우 업자들이 인맥을 이용해 부유층을 상대로 프라이빗뱅커(PB) 영업을 가장하거나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를 권유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투자’를 빙자한 수법은 2021년 31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감소했지만, 부동산을 비롯한 일반사업 투자를 빙자한 수법은 같은 기간 10건에서 24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유사수신 사건 중에는 ‘안전자산 투자’를 앞세워 투자를 부추기는 수법이 가장 많다. 특히 이 같은 유혹이 유튜브 콘텐츠 등 일상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유튜브에서 금 거래를 통해 하루 최소 2% 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를 보고 업체에 연락했다. 업체 관계자는 금 거래소의 국가별 가격차를 이용한 차익거래 방식으로 매일 수익이 발생한다고 안내했다. A씨는 1500만원을 송금했지만 업체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 같은 환전 수법은 유사수신 사기의 대표적인 먹거리 아이템이다. ‘수개월 내 수익금 지급’, ‘원금보장’과 같은 문구나 고령층과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부업투자’, ‘용돈벌이’, ‘노후보장’ 등의 키워드는 유사수신 사기 위험성이 높다. 금감원은 투자설명회를 통해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하며 투자금을 모집할 경우 신속히 신고나 제보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 “일단 한탕하자”… ‘가성비 甲’ 사기범죄
사기 범죄는 국내 대표적인 형사 사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원인 중에는 솜방망이 처벌도 꼽히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9년 형사공판 34만여건 중 가장 많은 사건 죄명은 6만2854건(18.3%)을 기록한 사기·공갈죄였다. 2021년에도 사기·공갈죄로 인한 형사 재판은 총 4만4949건으로, 전체 재판 사건 23만3490건 중 19.2%를 차지,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는 어땠을까? 전국 법원에 접수된 형사사건 151만7547건 중 가장 많은 죄명은 역시나 사기·공갈죄(4만796건)가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같은해 무죄 선고 7016명을 제외하고 1심에서 선고된 형량은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 25명 △징역 또는 금고 10년 이상 625명 △5년 이상 2814명 △3년 이상 7698명 △1년 이상 3만4206명 △1년 미만 1만9349명 △집행유예 7만4777명 △부정기형 621명으로, 집행유예가 압도적으로 많다.
피해자들은 사기 범죄가 피해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2019년 12월 발간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및 기업공시 판례 분석’에 따르면 61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운용한 A씨는 시세 조종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대법원이 불공정거래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한 비율은 61.5%로, 피고인 5명 중 2명은 실형을 면했다.
처벌자 색출도 어려움을 겪도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 피해자들은 통상 ‘모집책’들을 통해 투자를 했지만, 대부분의 모집책들은 실형을 면하거나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기소가 되더라도 사기죄가 아닌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기소, 형벌이 더욱 낮은 실정이다.
투자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대규모 사기 사건의 경우, 경찰과 검찰이 별건 수사가 아닌 전국단위통합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피고인들 역시 일반 사기죄나 방판법 위반 혐의가 아닌, 범죄단체조직죄 등의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스경제>는 기획 ‘투사사기 공화국 대한민국’을 통해 국내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대규모 투자사기 사건을 차례로 조명하고, 투자사기 범죄의 실체와 피해자들의 고통,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을 조명한다.
조나리 기자 hansjo@sporbiz.co.kr



